2018년 12월 1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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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말레이반도의 해양 거점 ‘페낭’ (1)
동·서양 문화 공존과 융합…시간이 쌓은 도시 ‘페낭’

  • 입력날짜 : 2018. 11.13. 18:18
페낭의 야경. 한국의 기술진이 건설한 페낭대교가 눈앞에 보인다.
페낭!

동서바닷길 교역의 중심, 말레이시아의 음식수도, 동양의 진주 등으로 불렀던 곳이다. 과거 아시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 중 하나였다. 한때 ‘인도-중국 항로’ 선박들의 기항지로 번성했다.

말레이·중국·인도·미얀마·아랍·유럽인들이 몰려들었고 도시는 점점 번창했다. 시간이 쌓은 도시로 변해갔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 옛 역사 간직한 ‘조지타운’

조지타운! 페낭의 구시가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인도어가 동시에 들리는 곳이다. 때문에 그것들의 다양한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이 낯설고 볼거리도 풍부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각기 다른 향과 색을 지닌 건물들!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간판이 이채롭다. 해상실크로드의 옛 포구의 흔적을 담고 있는 도시다. 말레이, 중국,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유럽식, 중국식, 말레이식 건축과 문화가 공존하고 융합된 모습이 낯설다. 이국적인 분위기란 바로 이런 것인가?

거리가 비좁고 건물들은 낡았지만 정이 느껴진다.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 걸음을 멈추게 한다. 벽화에 그려진 자세대로 폼을 잡은 아이를 부모가 사진을 찍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다.

노점이 늘어선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동행한 말레이 친구가 안내한 맛집에서 점심을 때웠다. 맛 기행처럼 즐겁다.
서구 열강(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침입과 요새(성곽).

골목마다 옛 유적이 많다. 힌두사원이 있는가 하면 불교와 도교사원이 있고, 옆을 보면 이슬람사원이 있고, 근처에 성공회와 장로회 교회, 천주교 성당도 있다. 10여분 걷는 동안에 20여개의 사원을 본 것 같다.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중국 화교들이 남긴 유적이 월등했다.

▶ 호화롭고 화려한 ‘페라나칸 거리’

페낭은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화교)이 유달리 많은 곳이란 것을 나중에 설명듣고서야 알았다. 중국의 사원(절)만 해도 200여개에 이르고 있다고 하니 놀랍다. 무역상으로 부를 축적했던 ‘페라나칸’(중국 남자와 말레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족)들의 문화는 이 도시를 화려하게 꾸며놨다. 이들이 사는 거리는 매우 화려했으며, 고급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 중 거부들의 저택인 ‘페라나칸 맨션’은 호화스럽기 그지없었다.

여러 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맨션(저택)을 들어갔다. 보기에도 부유한 티가 난다.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집이다. 식민지 풍의 2층 건물이다. 연녹색 외관의 서양풍, 중간에 중정이 있는 중국풍, 부엌 살림살이는 말레이풍으로 혼합돼 있다.

건물 내부가 금이 덧칠해진 화려한 장식들로 치장돼 있다. 또한 내부에는 1천여 점의 골동품과 수집품들이 진열돼 있다. 동서양 희귀한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놀라왔다. 페라나칸들의 당시 부유했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유럽인의 마을.

다음으로 들어간 집은 ‘쿠콩시’(邱公司)였다. 중국 화교인 구씨 가문이 세운 사당이었다. 도저히 한 가문이 건축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1893년부터 수십 년에 거쳐 완공했다고 한다. 놀라웠다.

▶ 독특한 향·색깔의 ‘인도·아랍촌’

좁은 거리를 좀 더 걷자 인디아 촌이 나왔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리틀 인디아’라고 불렀다. 인도인의 작은 촌(거주지)란 의미였다. 거리로 풍겨 나오는 독특한 음식향이 조금은 역겹게 느껴졌다. 화려하고 독특한 인도 직물을 파는 상점, 인도음식 레스토랑, 인도음악 레코드점, 힌두사원 등이 거리를 따라 쭉 늘어서 있다. 골목 안쪽에는 그들의 거주 주택이 들어차 있다. 매년 1월 말쯤에는 ‘타이푸삼 축제’, 10월에는 ‘디파발리 축제’와 같은 힌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 때가 아닌 것이 좀 아쉽기는 했으나, 인도풍의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마을 중앙에 ‘마하마리암만 사원’이 있었다. 비문을 보니 1883년 건립됐다. 페낭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사원이라고 한다. 고푸람(대문)이 우뚝 서 있고, 내부에 화려한 조각들로 덮인 사원이 있다. 시바 신을 모시고 있다. 남인도 힌두문화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리틀 인디아에서 머지 않는 곳에 ‘아랍인 촌’이 있었다. 주로 ‘아체’에서 온 향료 상인들이 거주하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아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끝에 있는 이슬람 도시이다. 그들은 서구 유럽인들의 침략을 피해 이곳에 은거한 자들이었다. 포르투갈을 기점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인들이 차례로 침략해 오면서 이슬람 제국을 형성하고 있던 아체 왕국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안전한 여러 곳으로 흩어졌으며, 그 일부가 이곳 페낭에 정착했던 것이다. 아랍촌 중앙에는 이슬람 사원과 페낭 이슬람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고가구와 생활용품, 부두(포구) 전경을 묘사한 미니어처 등이 전시돼 있다.
인도인의 마을.

▶ 극동무역 거점다운 ‘식민지 유적’

구시가지에는 서구의 식민시대의 유적도 아주 많았다. 특히 영국 식민시절의 흔적이 많았다.

극동무역의 거점다웠다. 영국은 1786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2차대전 때까지 지배했다. 200년 가까이 지배했던 관계로, 그들은 곳곳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말라카 해협의 전략적 위치인 이곳을 마음껏 활용했던 것이다.

‘세인트 조지 교회’는 동남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다. 1817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세웠다. 현재 페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당시 영국 ‘로버트 스미스’가 그리스 양식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건물 전면에 삼각지붕과 원형기둥이 있는 현관이 있고, 건물 중간에 십자가가 달린 날카로운 첨탑을 세웠다. 내부에는 양쪽에 원형기둥이 늘어서 있고, 앞쪽에 십자가가 있는 제단이 있을 뿐 특별한 장식은 볼 수 없다. 교회 앞 원형기념물은 ‘프란시스 라이트’ 선장을 기리기 위한 것이고 교회 주위로 넓은 잔디 정원이 있어 쾌적해 보인다.
중국인의 마을.

▶ 낮·밤 다른 여행자의 천국

옛 해상실크로드 유적이 많아, 동서 문화의 체험이 동시에 가능한 페낭은 현재 인기 있는 관광지다. 때문에 호화로운 호텔과 리조트들이 가득하다. 시정부도 옛 모습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건축을 엄격이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자를 위해 자동차 경적소리도 억제하고 있다.

그리고 밤에는 황홀한 불빛과 함께 환락가로 변한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도시다. 페낭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란 말이 실감난다. 페낭의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감성의 도시다.

일반적인 ‘관광 코스’와 주요 유적은 다음과 같다.

이슬람박물관→ 쑨얏센박물관 → 얍콩시(葉公司)→ 쿠콩시(邱公司)→모스크→ 마하마리암만 사원→ 리틀인디아→페라나칸 맨션→ 콴인텡(觀音寺)→ 세인트조지 교회→ 페낭 박물관&갤러리→ 콘월리스 요새→켁록시(極樂寺)→시계탑→페낭힐(전망대) 순이다.

구시가지인 조지타운을 아침부터 하루 종일 쉬엄쉬엄 돌았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해가 지니 무더위가 가시고, 하늘과 석양이 무척 아름답다. 한국의 그리움과 말레이의 편안함이 공존했다.

말레이에 있으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멀리 현대건설이 만든 페낭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로 이름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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