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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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금의 역사 동화] 28,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완사천과 장화왕후

  • 입력날짜 : 2018. 12.05. 18:43
/그림:선성경
“오늘은 완사천을 한번 가보아야겠다.”

꼭 한번 와 보리라 마음먹었던 완사천이었습니다.

한참을 달려와서인지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완사천의 물로 목을 축이니 비로소 새소리가 들리고 푸른 기운이 도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산천이 아름답고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땅이로구나.”

나주라는 곳이 건강하고 풍성한 기운으로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살려온 땅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곳 나주에서 나신 장화왕후의 아드님 혜종의 후손으로부터 고려왕의 계보가 내려져왔더라면 지금처럼 나라가 어지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건의 아들 중 무예는 물론 왕재로서의 덕과 자질이 가장 출중했다는 혜종을 떠올릴 때 마다 늘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이곳 나주 출신 장화왕후의 덕행이 가장 자애롭고 어질었음을 그 아드님 혜종의 행적을 보아 알 수 있지 않은가?’

짧은 치세였지만 고려왕실에서 혜종이 가장 온전했던 왕이었고 가장 백성을 위하는 왕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지금의 부패하고 썩어빠져 기울어가는 고려 왕실을 생각 할 때마다 정도전은 다른 많은 왕비들보다 덕행이 뛰어났던 이곳 나주 출신 장화왕후를 자주 떠올렸던 것입니다.

“그래!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어. 이토록 개경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치적 세력이라고는 누구하나 의지할 이 없는 왕비셨지 않은가? 그럼에도 자신의 아들을 고려의 두 번째 왕으로 세우신 것은 다른 어떤 왕비들도 할 수 없는 일이셨지.”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운 것이 혜종의 즉위 3년 만의 죽음이었습니다.

“역사에서도 얼버무리고 있는 혜종의 죽음은 아무래도 이복 동생들의 독살이 분명해.”

‘참으로 아쉽다. 참으로 그때의 역사가….’

완사천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기던 정도전은 문득 내일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나주 선비들과 내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고 있었구나.”

정도전은 문득 정리해야 할 시와 글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1377년 내내 고려조정은 여전히 원나라와 명나라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고 원나라는 갈수록 그 힘이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최영 장군과 나주출신 정지 장군은 부여와 공주 등 고려 나라 안쪽에서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 장군은 홀로 함흥과 경상도, 양강도, 전라도를 가리지 않고 나라의 변방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왜구와 오랑캐의 잦은 침략에 고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잔불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장군께서 보낸 서찰입니다.”

불과 한 달도 못되었건만 그 사이 이 성계는 전라도 운봉 황산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왜적들을 무찌르고 함주로 올라가는 길에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장군께서 꼭 한번이라도 지나는 길에 나주 땅에 들러서 나리를 뵙고 싶어 했사온데 여기저기에서 왜구들이 출몰하는 바람에 어찌하지 못하고 올라가신다고 했습니다.”

‘때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그대는 마음을 단정히 하라. 내 반드시 이번 함주에 가기 전 개경에 들러 그대의 귀양 해제를 주청 하겠노니….’

“구구절절 이 토록 고마우신 장군의 크신 사랑을 내 어찌 할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주 만난 사이도 아니었고 긴 세월을 함께했던 사이도 아니었지만 이성계는 정도전을 이렇게 아꼈던 것입니다.

“공민왕께서 살아 계실 때 장군도 역시 친명 정책을 함께 도모했던 때문인가?”

밤이 깊도록 이성계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정도전이었지만 결론은 한때 뜻을 같이했던 정치적 이유보다도 그가 사람을 귀히 여기는 큰 그릇이라는데 있는 것만큼은 분명 했습니다.

“어서 오르시지요. 삼봉어른.”

동점문 옆에는 벌써 이삼 십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선비들이 정도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달 전의 화전놀이 때와는 달리 정갈하게 의복을 갖춰 입은 선비들이었습니다.

“하하하…, 오늘은 한 말씀 한 말씀을 저희가 모두 글로 옮겨 적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주옥같은 말씀 모두 옮겨 쓰기를 허락해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바람은 감미로웠고 시를 배우기 위해 예를 갖춘 선비들의 모습들은 단정하고도 그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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