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수요일)
홈 >> 오피니언 > 기고/칼럼

‘곱향나무’를 아시나요 김종훈 시인·수필가

  • 입력날짜 : 2018. 12.05. 18:43
곱향나무 하면 선뜻 모르셔도 쌍향수 하면 낯익은 분들이 더러 계실줄 압니다.

직접 현지에 가셔서 실물을 보셨거나 사진으로 보신 분들도 계실줄 압니다. 곱향나무가 쌍향수(雙香樹)이고 쌍향수가 곱향나무, 즉 이명동일목입니다. 향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 교목이며 순수 우리글로 일명 곱향나무라 합니다. 나무의 몸통이나 수관(樹冠) 형태를 유심히 보면 일반 향나무(가이스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 곱향나무는 800여년 동안 한번도 옮기지 않은 채 松廣寺 天子庵 그 자리에만 심어저 있고, 양쪽 3-4m 거리에는 암자 본채의 처마끝과 부속건물에 맞닿아 있으며 이 나무의 그늘 밑에는 지하에서 용출하는 음용수대가 있습니다.

천자암은 행정구역상 순천시 松光面 이읍리 관내이고, 전남도립공원 인 조계산(해발 884m)의 서남향 6부능선(해발 550m)에 자리 잡고 있으며 松光面 신평리에 있는 松廣寺 본찰과는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입니다. 곱향나무의 수령은 800여년, 정확한 나이는 아니지만 보조국사가 중국 금나라에 유학하여 불경공부를 하던 때 그 나라 장종(章宗) 임금의 재임기간 (1190-1208)을 감안해 계산한 추정 나이라고 합니다. 나무의 높이는 12.5m, 몸통(흉고둘레)은 약 세아름드리(3.95m, 3.24m), 두 그루가 약간 굽은 듯 붙어 있으며 수관은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쌍향수라 했던 것이고, 워낙 장구한 세월 기후·환경의 변화와 풍화작용 등으로 수간(樹幹)이 빌빌꼬이고 수피의 한 면이 흉하게 벗겨지는 등 그 고통의 질곡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선을 끄는 힘은 푸르고 싱그러운 젊음의 자태에 기괴하고 신비로움까지 이 지구상에 오직 하나뿐인 노령의 거목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기특하고, 조계산의 생태역사와 함께 살아온 산증인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품격 높고 기풍이 당당한 노신사 거목은 1962년 12월3일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제88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지역의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보전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국목으로 지정 건의토록 지역민들의 뜻을 모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위치나 대중성으로 보아 그 기준에 못미칠 것 같고, 그저 오래오래 천년만년 건강하게 살아남기 만을 기원합니다.

이 곱향나무의 유래 또한 기특합니다. 옛 승주군사 천연기념물편의 자료에 의하면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중국 금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당시 그 나라 장종왕비의 불치병을 고쳐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왕자 담당(湛堂)을 제자로 삼게 되었고, 그 제자를 데리고 귀국하면서 들고 온 향나무 지팡이 두 개를 멀고 먼 비탈길 천자암에 오르면서 긴요하게 이용했고 암자에 도착해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자 뒷마당 맨 바닥에 나란히 꽂아둔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가 뻗어 쌍둥이 나무로 오늘에 이른 고목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은 고목에서도 꽃이 핀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꽝꽝 마른 지팡이에서 뿌리가 내리고 가지가 뻗어났다고 하니 이 또한 기상천외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지팡이의 끝을 마당에 꽂았을 것이므로 나무는 당연히 지면을 향해 거꾸로 자랐을 것이고, 현재의 수관 형태를 보더라도 가지들이 모두 아래쪽을 향해 있는 것을 추론해 보면 지팡이 끝 부분을 꽂았다는 전설이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곱향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었지만 사실 외롭습니다. 문화재청이 주인이고 지자체가 관리의 주체라지만 북서풍 맞이의 험준한 산악지대일 뿐만 아니라, 인기척이 드물어 전문가의 보살핌이 아쉬울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나무의 고향은 바다건너 중국이고 전생에 지팡이였다 하니 이국의 천생 고아를 우리나라에 입양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다문화 가정을 보살피고 정책적 배려의 끈을 놓지 않듯 이 노목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국민 모두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야산에 지천인 참나무 마저도 땔감 혹은 배를 짓는 목재나 표고 자목으로 이용할 뿐이지만 독일 통일의 상징인 부란덴부르크문의 참나무 사랑은 유난히 소중하고 존귀했습니다. 게르만민족이 참나무 숲을 신성시하고 제사 모실때는 젯상머리에 반드시 참나무 잎을 올려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때도 주최국 독일은 시상대에 오른 모든 우승자들에게 참나무 잎으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줬습니다.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에게도 히틀러가 직접 참나무 잎 월계관을 씌워줬고 참나무 묘목도 함께 주었다고 합니다. 이 묘목은 손 선수의 모교인 서울 만리동 양정고 교정에 심어져 크게 자랐으며 손기정의 상징목으로 후배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800여년의 만고풍상에도 꿋꿋하게 살아온 우리 조계산 천자암의 명물 곱향나무는 정녕코 번식이 안되는 것인지, 후세들에게 교훈으로 남길 정신적 지주가 될 수는 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골몰해 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