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3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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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동화 멧새의 보금자리 안영옥

  • 입력날짜 : 2019. 01.07. 18:36
바람이 도란도란 놀다가는 달래산 자락에 멧새가 날아옵니다. 멧새 두 마리는 두리번거리더니 산자락 끝까지 샅샅이 살피고 다닙니다. 이윽고 멧새 한 마리가 기분좋게 외칩니다.

“옳거니! 우리 이곳에다 둥지를 틉시다.”

알고 보니 멧새는 부부입니다. 그동안 보금자리를 찾느라 땀을 뻘뻘 흘렸나 봅니다. 서로 날개와 부리로 등을 토닥여 줍니다.

“아이 피곤해. 우선 한숨 붙이고 일을 시작해요.”

멧새 부부는 높다란 하늘을 등지고 곤히 잠이 듭니다. 지나가던 흰구름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멧새 부부를 들여다봅니다.

봄이 벌써 익어 가는지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아후! 잘 잤다.”

언제부터인가 버려져 있던 깨진 옹기 물동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기지개를 켭니다. 지난해에 큰 태풍으로 한쪽 귀퉁이까지 떨어져 나가 더욱 볼썽사납게 생긴 물동이랍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나그네 텃새들이 찾아왔으나 물동이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어, 그런데 작은 풀이 몇 포기 자라는 물동이 몸에서 예쁜 산새 손님이 쌔근쌔근 잠들고 있는 것입니다. 검은색 줄무늬 옷을 등에 걸치고 단잠을 콜콜 자고 있어요.

“어머. 요 예쁜 새들이 어디서 날아왔지?”

물동이는 행여 새들이 깰까봐 가만가만 몸을 가다듬었어요. 잠든 모습이 어찌나 깜찍한지 부리를 꽉 깨물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물동이는 여느 새들처럼 눈만 뜨면 곧 떠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 아마 얘네들도 내 본래 모습을 본다면 몹시 실망하고 말 거야. 하지만 잠시라도 내가 쉼터가 되어 주다니 기분이 좋아.”

물동이는 마치 엄마처럼 멧새 부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한편, 멧새 부부도 잠에서 깼습니다.

“치칫친. 잘 잤어요?”

멧새 부부는 조금 시원해진 햇살에 온몸이 개운했습니다.

“어머머. 우리가 정말 좋은 곳에서 잠들었었나 봐요. 안쪽에다 바로 둥지를 틀어 야겠어요. 여긴 안전할 테니까요.”

“옳아. 이렇게 좋은 보금자리가 있었다니. 횡재구려.”

멧새 부부는 금이 간 부분까지 마음에 딱 들어맞아 바로 물동이 속에다 둥지를 틀기로 했답니다.

“바람이 불어도, 눈비가 와도 끄떡없겠어요.”

“그렇소. 안성맞춤이오.”

멧새 부부는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런데 멧새 부부보다 정작 기분이 더 좋은 쪽은 깨진 물동이었지요. 멧새 부부의 말을 귀담아 듣던 물동이는 멧새 부부를 업고 들판에서 한바탕 춤이라도 추고 싶었답니다.

무엇보다도 더 놀라운 일은 새댁 멧새가 며칠 후에 알을 낳았다는 사실이지요.

“우리는 정말 큰일을 했어요.”

다정한 멧새 부부는 알을 들여다보며 정겹게 방글방글 웃습니다. 물동이는 말할 것도 없이 웃음이 절로 나왔답니다.

물동이는 우선 지나가는 바람에게 낮은 키로 조심스럽게 다닐 것을 당부했습니다. 마치 물동이 자신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벌써 따가운 빛줄기가 비추던 날, 온 세상이 유리알처럼 맑았어요.

드디어 아기멧새들이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가냘프고 조심스러운지 살결이 풀이슬처럼 맑습니다.

“찌욧 쯔, 찌욧 찌.”

아기멧새들은 아주 작고 귀여운 소리로 지저귑니다. 밥공기만한 둥지 안에서 아기멧새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몸에 털이 보송보송하게 나는가 싶더니 우는 소리까지 제법 아빠, 엄마를 닮아갑니다.

물동이는 오래전에 버려진 이후로 이렇게 가슴 뿌듯한 나날을 보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앗, 그런데 큰일입니다. 저쪽에서 큰 뱀이 아기멧새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스르륵스르륵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걸 본 순간 물동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게 물렀거라!”

그 소리는 말 할것도 없이 항아리 깨지는 소리였지요. 그러나 뱀은 순식간에 아기멧새가 있는 물동이를 향해 삼킬 듯이 덤벼들었어요.

물동이는 있는 힘을 다해 두 눈을 부릅뜨고 또 한 번 악을 씁니다.

“네 이놈, 냉큼 가지 못할까!”

물동이가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쳤어요. 들판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입니다. 그러자 뱀은 알아듣기나 한 듯이 방향을 바꾸어 물동이 옆을 살짝 비켜가고 있지 뭐예요. 알고 보니 뱀은 물동이 옆구리에 찰싹 붙어있는 개구리를 향한 몸짓이었습니다. 곧바로 뱀은 먹잇감 때문에 또 다른 목표물을 향해 몸을 밀고 지나갔습니다. 하마터면 큰 변을 당할 뻔 했습니다.

멧새 부부가 없는 동안 물동이는 아기멧새들에게 부모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물동이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습니다. 물동이는 잠잠해진 아기멧새들의 귓가에서 할머니처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워주었습니다.

“난 옛날에 물을 담는 아주 귀한 물동이었단다. 그런데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날로부터 푸대접을 받았어. 처음엔 정말 속상하고, 억울하고, 슬퍼서 견디기 힘들었단다. 그런데 볼품없는 나를 너희 가족이 보금자리로 써주다니 얼마나 요즘은 행복한지 몰라. 또다시 누가 날 찾아주기라도 한다면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지켜 줄 거야. 혹시 세상이 바뀌어 나 같은 물동이가 요긴하게 쓰여 지는 날이 온대도…”

아기멧새들은 부리를 서로 맞대고 초롱한 작은 눈망울을 깜박입니다.

낮달이 놀러 나와 있습니다. 물동이는 달님에게라도 다짐을 받고 싶었습니다.

“달님, 세상은 자꾸자꾸 변한다고 하셨지요? 사람들도 덩달아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겠죠. 언젠가는 저 같은 물동이도 몫을 톡톡히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때에 저 멀리서 멧새 부부가 빠른 날갯짓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마침 새털구름이 저만치서 모이더니 꽃구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약력>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우송문학상, 광일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수상, 광주·전남아동문학인상 수상, 저서 동화집 ‘똑똑똑 동화가 놀러왔어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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