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0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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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박대우
지역발전정책연구원장

  • 입력날짜 : 2019. 03.14. 18:49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왕과 세자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아들인 세자를 질책하듯 던지는 한마디이다. 아버지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아들이 생각대로 결정하면 그걸 왜 마음대로 결정하느냐고 면박을 주고, 아버지인 왕에게 어떻게 결정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것 하나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망신을 준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달고 이들이 왕과 세자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없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의 평범한 연을 잇지 못하고 끝내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결정하는 정치적 함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3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가장 큰 폭의 개각을 단행했다. 이번 개각은 지난해 8월 5개 부처 장관을 바꾼 뒤 불과 7개월 만에 이뤄진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절반을 지나가는 중요한 시점이고,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측면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7개 부처를 책임지게 될 내정자들을 살펴보면 행정안전부 장관에는 4선 중진인 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토교통부 장관에는 최정호 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는 조동호 카이스트 교수, 통일부 장관에는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차관을 지낸 박양우 중앙대 교수, 해양수산부 장관에는 문성혁 세계해사대 교수가 각각 발탁됐다.

각각의 부처와 장관 내정자의 이름, 직함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거명하는 것은 그만큼 그 자리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이 맡게 될 장관의 직위가 국민의 생활과 행복에 가장 직접적이고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고, 국무위원으로서 국정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을 통해서 살아온 삶과 업무능력에 대해 철저한 검증의 절차를 거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과 상황을 살피기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통령과 청와대 역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선택하는 것으로 일단의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정의 큰 틀에서의 협의와 협력은 필요하겠지만 그 이상의 과도한 간섭과 월권을 지양해야 한다. 장관이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공무원 역시 스스로의 결정과 책임감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늘 국민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도 청와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우려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불과 넉 달 전에 물러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경우 친여권 인사들의 채용비리 의혹으로 검찰에 불려 다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언론사 취재기자를 뿌리치는 전직 장관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방송되었다. 얼마 전까지 부처를 책임지던 장관이 언론의 눈을 피해 계단을 뛰어가고,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답변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지시에 따르고, 그를 모셨던 공무원들이 느끼는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방송을 통해 지켜보는 국민들의 실망감은 또 얼마나 컸겠는가. 언론을 피해, 국민을 피해 계단을 뛰어오르는 전직 장관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다. 그 장관을 임명했던 대통령과 청와대 역시도 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번 개각에 대해 여권에서는 균형과 전문성을 우선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소위 ‘비문’으로 분류되는 진영 의원과 박영선 의원을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점과 교수 출신과 전문가를 선택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물론 야당에서야 야박한 평가를 내놓고, 내정자들의 흠결을 얘기하고 있지만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따져보면 될 일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정책능력과 그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확실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국민의 편에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장관으로서의 소임이 끝난 후에는 업무에 대한 평가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일까. 2019년 3월의 봄날, 260여년 전 정조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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