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6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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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배는 어디에 있는가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4.17. 19:22
필자는 2015년 4월1일 갑자기 신문사 사장이 되었다. 전혀 예상치못한 사건이었다. 처음엔 막막하고 두려웠다.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지만 경영은 너무 생소했다. 그때, 평소 존경하는 지인이 책 한 권을 주었다. ‘기업인의 롤모델 김재철의 삶과 경영철학 동원그룹이야기’(일곡문화재단, 공병호지음)였다. 이 책을 읽고나서 한 번 해보자는 각오를 하게 됐다. 가장 영혼을 흔드는 말은 이것이었다.

‘경영이란 항해의 연장이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장이 가장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지금 내 배가 어디에 있는가?이다. 배의 위치를 아는 것이다. 그래야만 목적지를 향한 정확한 코스를 결정할 수 있다.~기업경영은 인류와 국가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자를 내는 기업은 죄악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신문사는 절대 흑자를 낼 수 없다는 비아냥이 주류였지만, 흑자경영을 목표로 뛴 결과 광주매일신문은 흑자회사가 되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말, ‘바다는 변명을 들어주지 않는다. 항해나 경영이나 약하면 죽는다. 약한 기업을 억지로 살려놓아도 결국 망하는 기업이 된다’는 말을 새겼다. 체질이 강한 기업, 체질이 강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다보니 결과가 나왔다.

필자가 경영의 롤모델로 생각한 김 회장은 2017년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이 주는 ‘대한민국을 빛낸 호남인상’을 받았다. 강진군 병영이 고향인 김회장은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한 이후 원양어업의 신어법개발과 신어장개척에 힘써 외화획득과 국민생활 증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았다. 투철한 정도경영, 준법경영, 윤리경영 등 경영이념과 철학을 실천해 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 회장 집무실에는 ‘거꾸로 세계지도’가 걸려있다. 이 지도는 얼마전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부처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도 배포됐다. 당시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은 거꾸로 세계지도에 대해 “북반구를 밑으로, 남반구를 위로 제작한 것으로, 우리나라 위쪽에 넓은 바다가 펼쳐져 바다로 뻗어나가는 한반도의 진취적인 기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거꾸로 보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정말 좋다. 지금까지는 피해의 관점에서 지정학적 위치를 보았다면, 이제는 해양으로 뻗어나가면서 대륙과 해양의 다리가 되는 비전을 갖자”고 말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거꾸로 세계지도는 길광수 박사(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가 해양국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1996년 고안했다. 하지만 거꾸로 세계지도를 널리 소개한 사람은 김 회장이다.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아야 위대해진다’ 김 회장의 철학이었다. 김 회장은 “우리가 그동안 봐온 지도 속의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으로 삼고, 드넓은 태평양의 해원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는 모습”이다.

김 회장은 ‘재계의 장보고’, ‘원양업계의 대부’ 등으로 불린다. 20대 청춘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세상을 만났고 바다에서 한국의 미래를 봤다. 한국 어선이 적도를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는 1960년대, 유서 한 장을 써 놓고 맨몸으로 처음 배에 오른 마도로스의 도전은 결국 창업으로 꽃을 피웠다. 1958년 국내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실습 항해사로 참치 잡이를 시작한 뒤, 원양어선 선장과 선단장으로 남태평양과 인도양 등을 누비며 ‘캡틴 김(Captain Kim)’으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참치를 잡아 수출하며 달러를 벌어들이던 김 회장은 1969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고, 동원그룹을 일궈냈다.

김 회장이 1981년 설립한 동원식품(현 동원F&B)은 1982년 국내 첫 참치 통조림(동원참치캔)을 출시한 뒤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금융업에도 뛰어들었다. 1981년 인수한 한신증권은 한국투자증권, 한국밸류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투자금융지주로 몸집을 불렸다.

필자 생각에, 경영이란 환경도 중요하지만 경영 주체의 비전이나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작은 것을 세심하게 챙기는 김 회장의 경영습관은 20대 시절 원양어선에서 이미 형성됐다. 거대한 원양어선도 작은 나사못 하나가 잘못돼 엔진이 서버리면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

현재 동원그룹은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지주기업으로 해서 자회사 6개 기업, 손자회사 21개, 증손자회사 10개 등 40여개 기업을 거느린 종합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9월 말 기준 자산총계 3조8천678억여원을 기록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한 마디로 압축해 ‘무대 경영론’을 꼽았다. “회사를 무대에 비유해 경영자는 일종의 연출자로서 뛰어난 연출과 무대를 제공하고, 임직원과 구성원들은 일종의 배우 역할로 무대에서 성실한 연기를 통해 고객인 관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어 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김 회장을 두고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미래의 비전을 그물질하는 생명현장인 바다에서 시를 썼고 그 배위에서 어떤 연기자도 흉내 내지 못하는 드라마의 주연이 되었다”는 헌사를 보냈다.

김 회장이 그제 16일, 동원그룹 50주년 기념식장에서 회장직 퇴직 의사를 밝혔다. 그가 즐겼던 무대에서 떠났지만, 호남은 자랑할만한 좋은 기업인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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