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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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권’ 운운, 시민학살 합리화 급급
[5·18 39주년 이젠 진상 규명이다](3)최초 발포 명령자
5월19일 광주高 인근서 11공수여단 첫 발포
계엄군 진실 부인…불순세력으로 조작·은폐
전두환 진압작전 참여 확인, 39년간 침묵만

  • 입력날짜 : 2019. 04.25. 19:35
무고한 광주 시민을 무참히 학살한 ‘오월의 진실’은 39년이 지난 지금에도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5·18진상을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는 과거 3차례 이뤄져 왔지만 핵심적 사실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5·18진상규명 작업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최초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하루 빨리 밝혀내야 한다.

그동안 은폐되고 감춰졌던 암매장부터 헬기 기총소사, 가짜뉴스, 행방불명자 등까지 실마리를 풀어낼 열쇠가 될 수 있어서다. 아직까지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발포 명령자’에 대해 살펴본다.

◇최초 발포는 5월19일=최초 발포는 1980년 5월19일 오후 4시50분께 광주 동구 계림동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에서 이뤄졌다.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계엄군 장갑차가 시위 군중에 포위되자 11공수여단 63대대 작전장교 차모 대위가 M16을 발포했다. 당시 조대부고 3학년 김영찬 군이 유탄에 총상을 입었다. 전두환을 포함한 군 수뇌부에서 ‘자위권’을 발동해 21일 자행한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틀 전이다.

앞서 새벽 3시께 광주역에 도착한 11공수여단은 오전 11시30분께 시위진압에 나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인한 살육전을 벌였다. 노인과 아주머니, 여학생, 버스기사, 어린 학생들 모두가 진압 대상이었다.

동구청의 ‘5·18사태일지’를 살펴보면 “광주고에서 계림파출소 사이에서 장갑차가 고장으로 있을 때 시민에게 총 발사로 국교생(초등학생) 2명, 중학생 1명, 고교생 1명 부상, 계엄군 차량으로 후송”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계엄군은 다른 보고를 했다. 505보안부대는 “데모 진압병력에게는 실탄을 미지급하고 경계 병력만 1인당 10발씩을 분출, 장교가 통합 보관하고 있을 뿐 이었다”고 발포를 부인했다.

또한 “고교생은 특정 데모세력에 의해 무성 권총으로 사격, 계엄군이 발포한 것으로 선동키 위한 지능적 수법”이라고 보고하며 시민을 불순세력으로 조작했다.

상급부대인 31사단과 전교사의 상황일지 등에도 19일 발포에 관련된 어떤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11공수여단에서 상급부대에 보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는 5·18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자위권 발동’을 주장했던 사실을 파악했지만, 그가 발포를 최종 명령했는지는 규명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명령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두환, 계엄군작전 주도적 논의=최근에는 발포명령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며 무참히 진압했던 작전에 전두환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향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제5공화국 전사(이하 5공 전사)에 따르면 전씨는 5·18 초기부터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고, 그가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가 당시 전남도청을 무력 진압하는 작전을 사전 보고받았다. 전씨는 2개 공수여단의 광주 투입이 결정된 19일부터 군 수뇌부 회의에도 참석했다.

이와 관련, 5공 전사는 “19일부터 전례 없이 매 격일마다 국방장관을 비롯한 합참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육·해·공군참모총장, 보안사령관 등 군 수뇌부가 국방부 회의실에 모여 2군사령부와 광주의 전투교육사령부로부터 올라오는 매일의 상황보고에 따라 사태에 대한 논의·결정했다”고 기록했다.

전두환은 21일 국방부 장관실에서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회의에도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참석했다. “도청 앞 발포는 현장지휘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허위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실이 밝혀지는데도 전두환은 “나는 모른다”며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3월 23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섰지만, 5·18 당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을 전면 부인했다.

법원 출석 전 “발포명령 부인하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는 “이거 왜 이래”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광주시민과 5·18 유가족들을 분노케 했다.

이것이 하루빨리 5·18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39년 간 책임자 처벌이 완전하지 못한 탓에 그들은 유가족들의 마음에 못을 박으며, 5·18망언과 가짜뉴스로 오월의 진실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다.

‘자위권발동 지시→최초 발포→도청 앞 집단 발포’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 속에서 누가 명령자인지 이제는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최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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