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9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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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주둔’ 마을 전체가 트라우마
[5·18 진실 찾는 사람들]<7> 주남마을 암매장 시신 발견 임희주씨
“공청회 당시 학살 증언…보복 우려 외면받기도
진실에 더 다가가 치유·평화의 시기 찾아오길”

  • 입력날짜 : 2019. 05.16. 19:26
주남마을 암매장 시신 발견 임희주씨
“저수지에서 수영하다가 시신 냄새를 맡았었죠. 5·18 당시 우리 마을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마을에 주둔한 공수부대에 의해 침묵의 일주일을 보냈던 18살의 임희주씨는 그때를 마을의 ‘암울기’라고 표현했다.

임씨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화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주남마을에서는 끔찍한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만큼 마을 주민들의 트라우마 역시 깊었다고 소회했다.

광주 동구 주남마을은 1980년 5월21일 구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군을 향한 집단발포가 있었고, 그 이후 계엄군이 도청을 나와서 진을 쳤던 곳이다.

광주에서 화순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인 주남마을은 광주의 주요한 입구였기에 군인들이 매복하기에 좋고, 사람과 차량의 통행을 봉쇄하기 적합한 장소였다. 그 당시 주남 마을에는 공수부대가 머물렀다.

임씨는 “오후 7시부터 통행금지였다. 마을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보니, 낮에도 집 양쪽으로 군인들이 있어 낮은 담이 있는 집에 살면서도 가까이에 서 있는 군인들 때문에 앞 마당도 나가기 두려웠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임씨는 “우리 마을은 ‘양민학살 사건’의 아픈 장소”라면서 “광주 시내에 나가면 모든 젊은이들을 죽인다는 소식이 마을에까지 들려오자 다들 식량을 챙기고 바위굴로 피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밝혔다.

그렇게 마을 안 공포 분위기는 1980년 5월23일 한 사건으로 고조됐다. 공수부대가 마을에 진을 친지 사흘째 되던 날 마을 앞을 버스 한 대가 지나가게 됐다. 버스에는 학생과 여성을 포함한 18명의 시민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공수부대는 그 버스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1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3명의 부상자는 리어카에 실려서 마을 안쪽에 있던 공수부대 진지로 옮겨졌다. 하지만 부상자를 데려온 것을 발견한 공수부대 아무개 소령이 부하들을 꾸짖자 생존한 2명마저 사살,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공수부대가 마을에서 떠나고 나서야 임씨는 마을을 다닐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바깥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임씨는 친구들과 수영을 하기 위해 뒷산 저수지로 향했다. 당시 그 부근에 시신이 암매장 될 것이란 추측이 있었는데, 저수지 근처를 가자마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급히 인근의 흙을 파헤쳐보니 구더기와 함께 앙상한 사람 손 뼈가 드러났다.

무차별 버스 총격 사건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시신 2구가 깊지 않은 땅에 묻혀 있었고, 이후 주남마을에서 9년이 흐른 뒤 시신 3구도 추가로 발견됐다.

청년이 된 임씨는 미니버스 총격 사건의 증인으로서 그 당시 생존자와 마을 주민들과 함께 ‘1988년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에서 양민학살의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임씨는 “공수부대가 주둔했을 당시의 마을 전체가 받았던 고통과 트라우마 외에도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기리고자 하는 마음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었다”면서 “막상 사실이 알려지자 지인 중 몇 명이 나를 피하더라”고 덧붙였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일조했다는 것만으로도 임씨가 행여나 다시 보복 당하거나 덩달아 함께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오해로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시기도 있었다고 소회했다.

하지만 이제 39년이 흘러 고등학생이었던 임씨는 흰머리가 구레나룻에 피어난 중년이 됐다. 그는 앞으로 맞는 40년은 조금 더 진실에 다가간 치유와 평화의 시기가 찾아오길 소망했다.

임씨는 “우리 마을은 이제 암울했던 상황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평화와 치유를 상징하는 마을로서 주민들 스스로 보듬는 ‘기역이 니은이 축제’를 해마다 이어가고 있다”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과 트라우마가 진실과 함께 치유되는 시기는 반드시 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오승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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