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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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이 허락한 노무현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5.22. 19:06
무등산은 신묘한 산이다.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무등산을 오르고 싶은 현인들이 많았다. 화순현감으로 부임하는 부친을 따라 화순에 온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형들과 함께 무등산을 오른 후 ‘서석산 유람기’를 남겼다. 무등산을 유람한 사람 중에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도 있었다. 그가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은 조선시대 무등산의 면모와 선비들의 산행 모습을 익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근·현대에 와서는 광주·전남 사람 뿐 아니라 전국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산이 되었다. 인구 150만이 거주하는 대도시에 큰 산이 인접해 있는 탓에 광주사람들은 학창시절 소풍뿐만 아니라 직장 야유회도 무등산으로 갔다. 1980년 5월 이후에는 새해 첫날 무등산 중머리재나 서석대 등지에서 해맞이 의식을 하였다.

특히 무등산은 정치인들이 좋아한다. 광주에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 박원순 시장, 손학규 대표 등 유명인들이 광주에 오면 꼭 무등산을 오른다. 특히 고노무현대통령은 재임 중에 무등산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7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다음 날인 5월19일 오전 증심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당산나무와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에 올랐다.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장불재에 도착하여 한 너럭바위에 올라 육성으로 연설을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주창하며 이상과 현실 속에서 고뇌했던 집권 5년 동안의 경험을 얘기했다. 현직 대통령의 무등산 첫 산상 연설인 셈이다. 그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은 방명록에 ‘아, 참 좋다’ 고 적었다. 지난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광주광역시는 2011년 11월16일 ‘무등산 노무현 길’을 여덟 번째 법정 탐방로로 정하면서 무등산에는 ‘노무현 길’이 공식 탐방로로 선정됐다. 무등산 증심사에서-중머리재-장불재 구간 3.5㎞다.

사실 무등산은 까다로운 산이다. 아무나 받아주지 않았다. 고려말 이성계는 무등산에 와 빌며 왕업을 이루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으나 무등은 이를 거절했다. 고려말 명신·명장들을 다 죽이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나라에 가뭄이 들자 무등산에서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무등은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한 정통성이 없는 왕에게 비를 내리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이성계는 무등산신을 지리산으로 귀양 보내고, 왕명을 거절한 이 산을 무정한 산이라는 의미의 ‘무정산(無情山)’이라 부르게 했다.

이성계를 거부한 무등산이 노무현전 대통령은 품어 안았다. 무등산은 노무현 바람, 이른바 ‘노풍(盧風)’의 진원지 광주도 만들어냈다. 2002년 대선에서 호남의 압도적 지지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99년 4월,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였던 노무현의원은 광주를 찾았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노무현은 “광주시민 여러분들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면 무등산에 오르겠다”라고 약속했다.

오늘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정치인들은 간혹 노무현 정신을 얘기한다. 필자는 노무현 정신과 무등정신·광주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봉하에 있는 노무현전대통령 묘소 너럭바위 기단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새겨져있다. 노무현 정신의 압축적 표현이다. 공동체정신으로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광주정신과 맥이 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등산 장불재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좀 더 멀리 봐주십시오. 역사란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과 역사의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그러나,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이익이 이익입니다.’

이게 노무현정신이다. 노무현 정신에 대해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은 ‘의로움과 이로움이 충돌할 때 의로움을 위해 이로움을 버릴 수 있는 삶의 자세’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특권 반칙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이라고 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국민에 대한 신뢰, 소통과 화합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사람답게 사는 세상’ ‘탈권위와 자율의 가치’ ‘또 다른 세상을 향한 포기하지 않는 원칙’ 등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가 떠난 10년, 노무현 정신을 누구나 얘기하지만 그의 정신을 잘 이어가고 있는 이는 드물다. ‘국민참여’와 ‘사람사는 세상’을 이어받았는지 몰라도 자신을 내던지는 희생의 정치는 낙제점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지역주의타파나 원칙이 바로 서는 세상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정치인을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되레 혐오의 정치가 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혐오의 정치는 일부 정치인과 소수 극단주의자를 넘어, 보통의 당파적 지지자들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극단성에 의지하며 그것을 방향타로 삼아 뿌리 없이 뻗어가고 있다. 이대로 계속 혐오정치가 계속된다면 이 나라 정치는 외면당할지 모른다.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무등정신-노무현 정신은 증오의 정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도덕적으로 가까이하기 힘든 정당과도 연정을 해야 한다고 결단한 노무현 정신에서 왜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다간 촛불정신까지 훼손될까 두렵다.

5월에 무등산 노무현길을 따라 걸으면서,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로 한바탕 꽃대궐을 이뤘던 봄꽃이 물러가고 찔레꽃, 아카시아꽃 향기 가득한 여름꽃을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5월19일 이 길에서 무등산 여름꽃을 보았을까? 오늘 우리에게 ‘노무현 정신’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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