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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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 31년’의 소회
박준수의 청담직필

  • 입력날짜 : 2019. 06.03. 18:04
광주매일신문이 창사 28주년을 맞았다. 아울러 필자가 지역언론에 종사한 지 어느덧 31년이 흘렀다. 대학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해온 필자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글을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1988년 6월 언론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신생 지방지들이 창간 붐을 이루던 때, 청운의 꿈을 안고 광주의 M신문사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현재의 광주매일신문에 옮겨와 28년 성상을 보내고 있다.



‘큰바위 얼굴’ 김정호 국장님



30년 넘은 언론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분 가운데 한 분은 M신문사 초대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정호씨(82·전 향토문화진흥원 이사장)다. 당시 수습기자인 나에게 편집국장은 ‘태산’처럼 높고 웅장한 존재로 느껴졌다. 특히 김정호 국장은 훤칠한 키에 반백의 머리칼이 덮인 둥그런 얼굴, 조리있는 언변이 더해져 노련한 베테랑 기자의 풍모를 자아냈다. 그분은 1963년 조선일보 주재기자로 입사해 주로 사건기자로 활동하다가 1969년 당시 전남일보로 옮겼고 80년 통합된 광주일보에서 조사부장과 향토문화연구소장을 역임하는 등 현장과 연구를 통섭한 ‘학자형 기자’라 할 수 있다.

나는 편집부에 배치돼 내근을 하던 터라 업무상 그분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1년쯤 후 기획실장으로 전보되어 ‘중국 산동반도 역사기행’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내가 편집을 맡게 돼 ‘사숙(私塾)’할 기회를 가졌다. 원고마감 시간이 되면 나를 불러 지난번 편집에 대한 촌평과 함께 가제목을 달아 넘겨주시곤 했다. 나는 원고를 읽으며 그분의 해박한 지식과 문장력에 감탄하면서 나도 이런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3년 후 나는 광주매일로 옮기게 되어 그분과는 짧은 인연으로 끝났지만, 늘 ‘큰바위 얼굴’처럼 마음속에 떠오르곤 했다. 내가 바쁜 가운데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껏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그분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한 평생 향토사에 천착하면서 그간 50권에 가까운 저서를 내신 그분은 수년 전까지 지방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광주역사산책’을 연재하는 등 지금도 양림동에 거처를 마련해놓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계신다.

필자는 최근 천사대교 개통으로 섬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그분이 쓴 ‘섬·섬사람’(1991, 호남문화사)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1971년 9월부터 12월까지 옛 전남일보에 연재한 ‘섬·섬사람’을 모은 것이다. 영광 법성포에서 출발, 2개월 동안 250여개 섬을 배고 타고 돌며 땀 흘려 쓴 글이라 섬과 섬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기자의 시각으로 열악한 섬 생활의 애환과 문제점을 낱낱이 취재해 지상에 보도한 것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로 여겨진다. 신문기사가 쓰여진 지 20년 만에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은 그만큼 기사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가 시간을 초월해서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의 글은 사회에 유익해야”



전남도가 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오는 8월8일 ‘제1회 섬의 날’ 행사 개최를 비롯 섬연구진흥원 유치, 섬박람회 등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있어서 이 책이 소중한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도가 섬의 지속가능한 개발가능성을 탐구하고 토착지식을 활용한 지역자원의 생산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섬경제권’ 기틀을 마련할 때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 언론이 정보전달 기능에 쫓기다 보니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과 이슈에 매몰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언론, 특히 지역신문은 향토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해 후세에 전달해주는 ‘아카이브(archive)’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정호씨는 지난 2015년 광주전남기자협회보에 이런 소회를 피력했다. “모름지기 기자는 글을 써야하고 그 글은 사회에 유익해야 한다. 나의 부끄러운 기자생활의 발자취가 후배기자들의 전문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다행이겠다.”

평생을 글쓰는 기자로서 외길을 걷는 그분의 모습에서 옛 싯귀가 읽힌다.

‘눈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광주매일신문 창사 28주년과 지역언론 31년의 세월을 되돌아 보며 누군가 ‘사숙(私塾)’할 인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나의 지나온 길도 후배들에게 기억될 만한 한 조각이 되길 소망해본다.

/본사 주필 겸 자치연구소장


본사 주필 겸 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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