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6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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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의 왕조음악 컬렉션] 세종대왕
바른 음악 세종, 그 천재성…찬란한 빛을 발하다

  • 입력날짜 : 2019. 07.10. 18:04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국립국악원 사진 제공
세종은 조선의 제 4대(1418-1450) 왕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도, 자는 원정(元正). 태종의 셋째아들이며 33년동안 왕위에 있었다.

균형의 정치를 추구했던 인물로 악(樂)을 바로 세움으로써 나라의 근본을 이루려 했다. 왕위에 있는 동안 한글창제, 악기개량, 악보 창안, 과학기의 발명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제왕의 음악은 ‘정치행위’라는 말이 있다. 흔히 유교적 정치를 ‘예악’(禮樂)이라고 하는데 이는 예로써 자연의 이치를 다스리고 음악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세종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음악을 세우는 것, 그것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과도 같아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로서 음악을 통치의 한 부분으로 여겼을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임금이 음률에 밝아서 새 음악의 절주를 모두 임금이 만들었는데, 박자를 짚어 장단으로 삼아 하루 저녁에 제정했다’라는 기록은 세종의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는 한 부분이다.
세종이 창안한 32정간보 ‘여민락보’ (세종실록)권 140

조선시대 음악은 초기에는 고려시대 음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새로운 음악을 만들면서 크게 발달했다.

세종조의 음악문화 업적은 오늘날 한국 음악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그 시대의 음악 정비 작업은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악정비, 율관제작, 체계정립, 향악곡 제정 등 여러 가지 업적이 있으나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은 역시 ‘정간보’(井間譜)의 창안이다. 이는 악보로서 음악의 실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간보(井間譜)는 음의 시가를 알 수 있게 창안한 동양에서는 가장 오래된 유량악보(有量樂譜)다.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놓고 1칸(一井間)을 1박으로 쳐서 음의 시가를 표시하고 칸 안의 율명의 위치에 따라 쉽게 박자를 읽을 수 있다.(정간보는 세종때 한줄 32정간에서 세조때 16정간으로 줄어들고, 현재 사용되는 정간보는 장단에 따라 4·6·10·12·20정간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세종시대 처음으로 만들어진 이 정간보는 고려요를 비롯한 조선조 이전의 음악과 함께 이 시대에 새로 만들어진 보태평, 정대업 등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봉래의’(鳳來儀), ‘발상’(發詳) 등의 무용음악 기보에 사용됐다.

세종이 만든 음악인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은 처음에 궁중 행사 음악, 회례악(會禮樂)과 연례악(宴禮樂)으로 쓰이다가 그의 아들 세조 때 개작돼 1464(세조10년)부터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돼 오늘날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다.

조선 역대 왕들의 제사 음악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1호로 2001년 5월18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까지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 열리는 종묘대제 음악으로 이용된다. 이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약 600년 가까이 원형의 가치 그대로 지속된 인류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세종이 종묘제례악곡을 창작하게 된 이유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아악(雅樂)은 본래 중국 음악이다, 중국 사람은 익숙하니 이를 연주 하는 것이 마땅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향악(鄕樂)을 듣다, 죽어서는 아악을 듣는다는 것이 어찌된 일인가” ‘세종 21년 1430년 조선왕조실록’

위 기록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지적한 왕이 세종대왕이었다. 그 당시 조선은 유교(儒敎)가 통치 이념으로 중국 법도를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므로 세종대 까지는 왕의 제사나 중국 사신접대, 궁궐의식(儀式)에서 행사음악으로 중국의 아악(雅樂)을 연주 하는 것이 격식을 갖추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조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정대업 보태평을 만들 때 우리 음악인 향악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널리 불리던 고려 속요(청산별곡, 서경별곡, 쌍화점 등)에 가사를 바꿔 붙이고 음의 길이를 조절해 새 음악을 만들었는데 지금으로 표현하자면 편곡을 한 셈이다.

또한 훈민정음으로 만든 작품이 있는데 한글로 된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이다.

조선의 건국이 하늘의 뜻이며 역사의 필연이라는 것을 천명한 노래로 세종은 ‘용비어천가’ 가사에 직접 가락을 붙였다. ‘용비어천가’의 가사를 음악으로 작곡한 곡이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는 ‘여민락’(與民樂)이다. 이름 그대로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으로 음의 길이까지 적은 정확한 악보다.
김선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단원)

예악(禮樂)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이 말하는 대로 글을 쓰며 소통하는 세상을 만든 세종대왕, 한글 창제와 더불어 정간보(井間譜) 창안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조선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악보가 기록화 되는 역사를 남긴 최초의 인물이 바로 세종이다. 한 나라의 왕이 음악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음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께서는 음악으로 민심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음악정책은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 음악이란 성인이 즐거움을 얻는 수단이며, 민심을 선도할 수 있다. 논어(양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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