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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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는 강진군 ‘면(面) 서기’ 출신 윤영갑
이정록
전남대 교수, 前 대한지리학회장

  • 입력날짜 : 2019. 08.13. 19:03
“나는 ‘험한 파도가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조직 내 상사는 늘 험한 파도였습니다. 그들은 늘 내게 파도를 이겨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내 스스로 그 파도를 여겨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고, 그런 경험을 기반으로 관리자가 된 이후에 내 스스로 험한 파도이기를 자처했습니다.”

윤영갑이 쓴 책 ‘너도 면 서기나 한번 해봐라’(에드필기획, 2019)의 머리말 중 일부다. 그는 강진군 면(面) 서기 출신 공무원이다. 저자는 ‘지나온 삶, 꽃으로 피어난 흔적과 세상사는 이야기, 40여년 공직 생활에서 묻어난 마음의 소리’를 담은 책이라고 한다. 장·차관이나 고위공직자 출신도 아닌 일개(一介) 하급 공무원 출신이 쓴 책이다. 자신 이력과 가족사항, 공무원 생활에 대한 소회, 공직자 자세 등을 겁도 없이 쓴 책이다.

윤영갑은 강진 군동면 출신이다. 지금도 그곳에 산다. 강진과 장흥에서 중·고를 나왔고 대학 졸업 후 1983년 경북 영양군에서 공무원을 시작했다. 이후 농업직에서 임업직과 행정직으로 전직했고, 강진과 장흥을 두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계급도 두 번이나 낮아졌다. 하지만 지방 서기관으로 퇴임할 예정이다. 군수와 부군수를 제외하면 9급에서 시작해 최고로 출세한 거다. 이장 출신 아버지가 ‘너도 면 서기나 한번 해봐라’라는 말에 공직에 뛰어들었든 효자의 결실이다.

윤영갑은 현재 공로연수 중인 공무원 신분이다. 공로연수란 사회 적응 훈련 과정이다. 보통 사람들은 와이프 따라 다니고, 막걸리 먹고, 손자 보면서 소일(消日)한다. 하지만 워커홀릭 윤영갑은 달랐다. 지금 이 시간에도 광주에서 ‘숲해설가’ 교육을 받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받는단다. 워커홀릭 환자 밑에서 일한 직원들은 어땠을까. 스스로 ‘험한 파도’이길 자처한 상관이니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윤영갑은 참 괜찮은 공무원이었다. 영어로 말하면 어퓨굿맨(A Few Good Men)이다. 주인공 톰 크루즈가 다니엘 캐피 중위 역할을 맡아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벌어진 해병 사망 사고를 다룬 영화처럼 말이다. 일단 깔끔했다. 옷과 머리 스타일은 항상 단정하다. 강남 스타일이었다. 박식(博識)했다. 필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내공(內攻)에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행동은 쿠팡처럼 빨랐다. 필자가 자료를 요구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됐다. 필자가 ‘윤영갑은 참 괜찮은 공무원’이라고 평하는 이유다.

필자가 윤영갑을 안지는 얼마 안됐다. 지금부터 4년 전이다. 강진군 현안을 부탁하기 위해 필자 연구실을 노크했다. 비즈니스 목적이었고, 5개월 간 자주 만났고 토론했다. 윤영갑이 의뢰한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필자가 좋아하고 홍보한 강진 토속미(味)를 뽐내는 ‘홍춘이보리밥’ 식당(광주매일신문 시론, 2017년 7월 26일자)도 그래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비지니스 관계가 끝나면 교류와 접촉도 끝난다. 그게 인생사다. 그런데 윤영갑은 달랐다. 문자와 안부 전화로 교류를 이어갔다. 이해관계가 끝난 필자에게 말이다. 그러니 인간적 진정성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 윤영갑이 최근 필자에게 책을 보내왔다. ‘존경하는 이정록학장님! 소중한 인연, 아름답게 가꾸겠습니다’라는 저자 사인과 함께 말이다. 반갑고 궁금해서 단숨에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필자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노안(老眼) 때문이 아니라 시골 촌놈 이야기가 곳곳에 씌어져 있어서다. 쌀 돈 사러 시장에 간 어머니 이야기, 고교시절 붕어빵과 국화빵을 사먹기 위해 장흥에서 강진까지 서너 시간 걸어서 집에 온 이야기, 제초제가 뿌려진 박하를 설탕물에 타먹고 ‘저승 문턱에서 돌아온 막내 동생’ 이야기 등은 바로 필자 이야기였다.

윤영갑은 필자가 인정하는 ‘참 괜찮은 공무원’이다. 필자는 비즈니스 또는 개인적인 관계로 공무원을 자주 만났다. 벌써 33년째다. 그런데 윤영갑은 ‘글을 쓸 줄 아는’ 공무원이었다. 글쓰기가 업(業)인 필자도 쓰기 싫어하는 글을 1996년 홍보팀 차석 때부터 썼다. 강진신문을 비롯한 5개 로컬 신문에 꾸준히 글을 기고했다. 관(官)에서 하는 일을 군민이 알아야 한다는 의도였단다. 공무원 역할을 제대로 안 거다. 그러니 필자가 반하지 않고 배길 수 없지 않겠는가. 필자가 윤영갑을 ‘참 괜찮은 공무원’이라 평하는 까닭이다.

윤영갑은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다. 시골 공무원에게 필요한 보고서 작성, 홍보기법, 의전 관계 등에 관한 책이다. 워커홀릭의 지존(至尊)을 꿈꾸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사실 요즘 공무원 중 윤영갑을 뛰어 넘을 신참들이 많다. 필자 제자 중 전남도청 여성가족정책관실에 근무하는 이재원 주무관, 구례군청 근무 예정인 김현주 주무관도 그런 부류다. 그런데 아쉽다. 젊은 공무원에게 ‘험한 파도’ 역할을 할 윤영갑류(類) 공무원들이 퇴장해서다.

‘너도 면 서기나 한번 해봐라’의 저자 윤영갑은 참 괜찮은 면(面) 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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