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6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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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12)장흥 선학동마을
고고한 학의 자태처럼 고상한 품격 지닌 마을
봄 유채꽃·가을엔 메밀꽃으로 유명 ‘소금 뿌린 듯 눈부신’ 메밀꽃 가득
학이 날개를 펴며 날아오르는 형상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촬영지

  • 입력날짜 : 2019. 10.09. 18:27
메밀밭
멀리서 보면 마치 학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관음봉 자락에 자리한 장흥군 선학동 마을. 논과 다락밭의 메밀꽃과 득량만의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선학동마을은 이전에는 공지산 밑에 있어 ‘산저마을’로 불렸다. 넓게 펼쳐진 득량만 바다와 따뜻한 봄이 되면 마을을 뒤덮는 유채꽃, 가을엔 맑은 바람과 푸른 하늘 아래 마을을 뒤덮는 메밀꽃의 아름다운 경치가 유명한 곳으로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이름난 곳이다. 2012년에는 가장 아름다운 농어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지산 줄기 따라 조성된 15㏊ 메밀꽃밭

봄의 유채꽃, 가을의 메밀꽃은 선학동마을의 자랑이다. 이곳은 10여년 전만 해도 콩이나 참깨를 재배하던 계단밭이었다. 마을이 고령화되면서 일손이 줄자 관리되지 않은 밭이 황무지처럼 변했다. 나고 자란 마을이 황무지처럼 변하자 주민들은 2006년부터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메밀을 심기 시작했다. 바닷가 마을이라 원래 풍경이 좋았는데, 꽃을 심고 나서는 일부러 사진 찍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메밀은 수확해 내다팔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마을 산책로 맨 꼭대기에 오르면 눈부신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은 메밀꽃밭이 펼쳐진다. 잘 익은 팝콘을 이리저리 뿌려놓은 듯도 하다. 그 뒤로 주황색과 파란색 지붕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고, 황금빛 들판이 마을을 감싼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와 하늘까지 더해지면 비로소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사진 위부터 천년학 세트, 나그네길, 웃샘

선학동마을의 메밀꽃은 9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10월 중순 절정을 이룬다. 메밀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공지산 뒤 천관산의 억새도 한창이라 함께 둘러보면 좋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어디든 떠나기 좋은 가을. 일생 동안 기억에 남을 한 장면을 건지고 싶다면 선학동마을을 찾아보면 어떨까.

‘소금을 뿌린 듯 눈이 부신’ 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답을 못할 사람, 그다지 없을 것이다. 메밀꽃이다. 소설가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그린 메밀꽃밭의 모습이 그러하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한번은 읽어봤음직한 그 구절 덕분에 실제 본 사람에게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도 메밀꽃밭은 소금밭이다. 그러니 생애 한번쯤은 그 ‘소금밭’을 구경하러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까이서 봐도 예쁘고 멀리서 보면 환상적인 메밀꽃밭. 이를 알리고자 선학동마을에서는 가을이면 메밀꽃 축제를 연다. 가을에는 단풍구경이라지만,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뜨거운 여름을 온전히 견뎌낸, 푸른 하늘을 이고 살랑살랑 바람을 등에 올린 꽃구경이야말로 가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는 많다.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를 맛보기 위해, 신나고 짜릿한 레저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한적한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기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떠날 이유는 충분하다. 쳇바퀴 같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나를 위한 쉼표가 필요하다.

◇영화로 전국적 명성…마을 이름 바꿔

선학동마을은 이청준 작가가 1979년 발표한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다. 소설은 소리꾼 유봉 밑에서 자란 동호와 송화의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서편제’, ‘소리의 빛’과 함께 남도의 소리를 제재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오직 소리 하나에 평생을 바치며 떠돌이로 살아가는 아버지, 소리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딸, 또 그들을 버리고 떠났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라비 등 모두 가슴에 서린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품은 한의 예술적 승화를 표현하기 위해 ‘비상학’이라는 상징적 형상을 동원하고 있다. 특히 이 땅 위에서의 인간의 한이 자연을 통해 녹아들어 자연과 인간의 소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이청준 작가는 이 지역 출신이다. 이청준 작가는 선학동 나그네에서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을 한 마리 학으로 물위를 떠돌았다. 선학동은 그 날아오르는 학의 품에 안겨진 마을인 셈이다. 동네 이름이 선학동이라 불리게 된 연유이다”라고 했다.

임권택 감독은 2007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천년학’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천년학 개봉 이후 전국적으로 명성을 타자 마을 공식 명칭을 산저마을에서 선학동으로 바꿨다. 마을 입구에는 주황색 지붕을 얹은 외딴집 한 채가 눈길을 끄는데, 천년학의 세트장으로 쓰였던 주막 건물이다. 영화 촬영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주막 평상에 앉으면 영화 장면이 겹쳐진다.
유채밭

‘장흥에서 글 자랑 하지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장흥은 뛰어난 문인들이 많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서편제’, ‘밀양’, ‘천년학’의 이청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한승원, ‘녹두장군’의 송기숙, ‘생의 이면’ ‘에리 직톤의 초상’의 이승우 등이 장흥출신 문인들이다. 이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여러 편 나왔을 만큼 이들의 문학에는 남도, 장흥의 정서가 은근하면서도 또렷이 배어있다.

이청준과 한승원의 발자취를 밟아보는 ‘이청준 한승원 문학길’ 투어(12.5㎞)는 이들의 작품에 매료됐던 이들이라면 한번쯤 거쳐볼 만하다.

◇그대, 지금 선학동으로 가자

선학동의 유채밭, 메밀밭은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 산책을 즐기기 좋다. 쉬어갈 정자도 있어 운치를 더한다.

이청준 작가에 관한 안내판 등도 마련돼 있어 걷는 재미도 준다. 이청준 작가의 생가도 바로 이웃 마을에 보전돼 있다.

선학동 마을은 1994년 전남도·광주지방검찰청이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할 정도로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때 묻지 않은 무공해 마을이다. 꽃밭사이를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할머니의 품처럼 포근함도 느껴진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메밀꽃과 탁 트인 바다! 풍요로운 계절 노른 들판과 어울리는 눈이 내린 듯한 하얀 메밀꽃 풍경이 잘 어우러진다. /최지영 자유기고가·장흥=노형록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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