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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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14>해남 초호마을
300년 넘은 방풍림·고택·돌담길…옛 정취 그대로
해남서 강진 넘어가는 길목 남향에 자리한 윤철하 고택
사랑채·안채·별당채로 구성 호남 지방 상류 주택의 전형
남해 바다·마을 잇는 방풍림 아른아른 남실대는 바닷가

  • 입력날짜 : 2019. 10.21. 18:53
초호마을 방풍림.
녹우당이 해남에 뿌리를 내린 지 500년이 지났다. 해남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길에 자리 잡은 초호마을. 현산면에 자리한 이곳은 백방산과 사이산이 마을을 에워싸고 앞에는 넓은 간척지가 펼쳐있다. 예전엔 마을 코앞까지 바닷가였다고 한다. 보일 듯 말 듯, 논과 마을사이에 조그만 냇물이 흐르고 냇물 따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나무들이 마을 어귀에서 마을 끝까지 줄지어 서 있다. 이무기로부터 여의주를 보호하기 위해 마을 앞으로 심었다는 물버들. 꽤나 재밌는 사연이다. 물버들과 함께 느티나무, 팽나무, 모두 20여 그루가 바닷바람에 춤추는 듯하다.

마을은 고요하다. 느리게 세월은 흘러 돌담은 낯빛이 검어지고 오래돼 보이는 흙돌담 집은 여물어가고 있다. 마을동산에 오르자 장관이 펼쳐진다. 간척지 논은 까마득하고 논에 내몰린 바다는 희끄무레하게 꾸물거린다.

◇중요민속문화제 제153호
사진위부터 윤철하 고택에서 본 들녘. 초호마을 전경. 윤철하 고택.

나지막한 야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들이 펼쳐진 남향 땅에 자리하고 있는 기와집. 이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한 집은 윤철하 고택(윤탁 가옥)이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된 옛집이다.

윤철하는 조선 후기 때의 화가인 공재 윤두서의 아들이다. 윤두서는 세밀한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로 초호리에는 윤두서의 일곱째 아들 후손들이 모여 살면서 이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흔적들이 존재한다.

윤철하 고택은 조선 말기의 호남 지방 상류주택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산 아래 완만한 경사를 다듬어 석축을 높이 쌓고 그 위에 사랑채와 안채를 올린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집은 세 영역으로 나뉜다. 문간채가 있는 사랑마당과 축대 위의 사랑채 영역, 사랑채 지붕 높이의 석축 위에 앉아 있는 안채와 별당채 영역이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화단을 만들고 나무와 꽃을 심어 꾸몄다. 조선시대에는 축대와 천장을 높이거나 궁궐에서나 쓸 수 있는 붉은 벽돌, 둥근 기둥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불충(不忠)의 강박’이 지배했고 사랑채 앞마당은 빈 공간으로 놔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사랑채를 지나 올라가면 비밀공간처럼 안채와 별당채가 드러난다. 밖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구조 때문인지 신경을 많이 써서 지었다. 사랑채는 우진각지붕인 반면, 안채는 그것보다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함부로 쓰지 못했던 원기둥을 마음껏 세워 멋을 부렸다. 특히 별당채는 팔각으로 깎은 화강암 장초석을 사용해 공 들여 만들었다.

예전에 이 집 안채마당에는 화단 안에 키가 아주 큰 붉은 벽돌 굴뚝이 있었다고 한다. 대청 앞으로 적벽돌 굴뚝이 높게 세워져있으며 중앙에는 자연석으로 갓을 돌린 원형의 화단이 조성돼 있다고 한다.

1910년 전후에 지어진 호남지역 부잣집이라면 이런 굴뚝 하나쯤은 꼭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승처럼 마을 지킨 300년 넘은 나무들

초호마을에 들어서면 방풍림이 제일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넓은 들판을 앞으로 하고 있는 초호마을에는 나이 꽤나 먹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주민들은 방풍림 주변으로 꽃도 심고 호박도 심어 정성껏 가꾼다. 느티나무, 팽나무, 버드나무 등 수종에 관계없이 마을의 방풍림으로 자리를 잡은 이 나무들은 23그루의 초호리 나무로 불린다. 꽤나 멋들어지다.

한여름엔 시원한 그늘과 바람으로, 동네 어르신들의 최고의 피서지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닷바람이 부는 대로 휘어질 대로 휘어진 기이하게 생긴 초호리 방품림들. 사공을 기다리다 고사한 나무도, 다시 그곳이 바다가 되기를 기다리며 자라는 어린 나무도 다 초호리 방풍림이다. 사공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 돌아오면 초호리의 방풍림들은 사공의 나룻배를 묶어두던 나루터 역할을 했다.

마을 뒤 액막이 바위에 올라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 실개천 앞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방풍림 너머로는 넓은 논이, 그리고 그 논의 끝에 아른아른 남실대는 남도 바다가 보인다. 실개천 앞 지금의 논은 원래 바다였다가 간척지 사업으로 몇 십만 평의 논이 생겼다. 바닷물이 오가던 바다는 없고, 이제는 논과 시멘트길이 생겼다.

어느 덧 300년이 넘은 나무들은 동네 입구부터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바다와 마을을 그렇게 연결하고 구분하면서 마을을 지켜오고 있다.

초호마을은 윤철하 고택도 있지만 23그루의 방품림도 있고, 마을 곳곳에 소박한 돌담이 있어 과거를 추억하기 좋다.

그 풍광 자체가 자연스레 내 안으로 들어온다.

◇세시풍속 ‘써레시침’을 이어온 마을

모내기를 하기 전 논바닥을 고르는데 사용한 써레를 모내기가 끝난 후 깨끗이 씻는데서 비롯된 말, ‘써레시침’. 여기엔 써레질의 고통을 모두 씻어 버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초호마을은 옛 세시풍속인 ‘써레시침’ 풍속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의 써레시침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주민들은 매년 함께하고 있다.

고단한 모내기를 끝낸 후 모든 마을주민은 한데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농촌의 제1덕목이자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바로 품앗이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시골에서 터를 내리고 살려고 마음먹었다면 무엇보다 손에 손잡고 힘을 모으는 협동심이 필요하다.

초호마을은 지금도 농번기가 되거나 일손이 필요할 때면 서로 서로 나서서 품앗이를 한다.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우리의 일이라고 여기는 지혜를 아는 심성 고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가 하나 되고 세시풍속을 잘 이어나가서 그런지 모두 건강하게 장수하는 마을이 됐다고 말한다.

지금 초호마을 주민들은 마을 환경을 바꾸는 데에 노력 중이다. 마을길을 정돈하고 물버들과 뒷산을 연결하는 둘레길을 만드는 등 이름 그대로 ‘찾아오는 마을 만들기’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바람결처럼 흘러들어 가는 여행이 주는 감동과 낭만을 원한다면 초호마을을 둘러보는 건 어떨까.

/최지영 자유기고가·해남=박필용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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