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4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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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노송(老松)의 기품(氣品) 윤소천 수필

  • 입력날짜 : 2019. 11.04. 18:20
*수성송(守城松)=전남 해남 성내리의 천연기념물 제40호이다. 400여년 된 해송으로 조선 명종(1555년) 때 왜선 60여척이 이곳에 침략한 일이 있었다. 해남 현감 변협(邊協)이 이끄는 관군이 왜구를 물리치고 장흥부사로 승진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헌 앞뜰에 심어 ‘수성송(守城松)’ 이름을 붙여준 데서 유래.
시내 궁동 예술의 거리는 토요일 마다 장이 선다. 근처에서 고창 사는 선배 문인을 만나 골동품 구경을 하고 화랑에 들렀는데 한 작품에 걸음이 멈춰졌다. 의재(毅齋) 허백련의 늠연한 기품에 서기가 느껴지는 소나무 그림이었다. 나는 담백하며 정중한 소나무의 서기에 이끌려 있었는데,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는 선배의 말에 선뜻 사게 되었다. 거실에 걸어 놓고 보니 변치 않은 군자의 절개와 의연한 선비의 기품이 더욱 느껴졌다.

이 일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동양화에 관심이 다시 생기면서 화랑을 가끔 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농(南農) 허건이 그린 노송(老松)을 보았다. 격조 있게 뻗은 가지에 서기가 어려 있고, 철석(鐵石)의 기세로 바늘처럼 솟아난 잎에서 솔 향이 나는 것 같은 명품이었다. 나의 거실에 걸려있는 선생의 수묵산수(水墨山水)와 풍죽(風竹)이 당당한 이 노송(老松)과 함께 한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 기꺼이 구했다. 차를 마시면서 작품을 바라본다. 의재(毅齋) 선생의 솔은 과묵하며 정중하고 엄숙하다. 작품 마다 그 사람의 혼이 스며있어 그의 정신세계와 만나게 된다. 작품들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차분해지며 마음이 다듬어지기도 한다.

올해는 소나무와 인연이 있는지, 년 초에 해남 대흥사 동백을 보고 오는 길에 고산(孤山) 윤선도의 생가에 들러 녹우당(綠雨堂)의 장대한 소나무와 해남 군청 뜰의 수성송(守城松)을 보고 왔다. 녹우당의 소나무는 삼백년이 넘은 보호수인데 장정 둘이 안아야하는 둘레로 사당(祠堂)을 지키는 의연한 소나무다. 소나무는 휨 없이 곧게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소나무 등걸의 거북 모양 표피는 마치 새끼거북들이 줄지어 기어올라 하늘바다(天海)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서기로웠다.

수성송*은 수령 사백여년의 천연기념물로 축축 늘어진 가지가 일품인 낙락장송(落落長松)이다. 찬바람 불고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더욱 푸르러 절개를 나타내는 낙락장송이다. 수성송(守城松)을 맨 처음 본 것은 보름달이 떠오른 밤이었다. 우람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비친 달은 하늘의 눈동자를 본 듯 환상적이었다. 나는 이 아름다움에 취해 밝은 날 다시 보러갔는데 온갖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옳 곧게 선 노송은 해묵은 가지마다 서기 깃든 장엄한 모습이었다. 수성송의 사방팔방으로 늘어진 가지는 청룡(靑龍)이 춤추는 듯 유연하고 아름답다.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청아한 바람소리에 신선한 솔 향이 풍겨온다. 뭇 나무 중에 뛰어난 군자(君子)의 모습이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하여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은 그로 하여 아 노라


이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중 솔(松)이다. 소나무는 흐르는 세월 속에 천둥 번개를 맞고 쌓인 눈에 가지를 꺾이며 부드럽고 온화하게 스스로 몸을 다듬는다. 그리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운치 있는 노송(老松)이 된다. 노송은 초목의 군자(君子)이며, 나이테로 보여주는 성자(聖者)이다.


윤소천 프로필

에세이스트, 한국수필 천료
광주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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