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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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의 일본 작가 비평] (7)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마쓰다 도키코의 유년시절과 아카라와(荒川) 광산

  • 입력날짜 : 2019. 11.21. 18:53
마쓰다 도키코가 졸업한 다이세이 초등학교가 섰던 자리.
어머니의 불행 지켜보며 성장

마쓰다 도키코는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7월 아키타현 아라카와 광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광산노동자였다. 아버지는 광석을 나르는 운반원이었고, 어머니는 선광(광석 고르기)작업을 하는 여공이었다. 마쓰다는 태어난 뒤 ‘하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위로는 3살 더 먹은 오빠 ‘만주’가 있었다.

당시 제국주의와 한통속이던 미쓰비시㈜ 소유의 아라카와 광산에서도 무엇보다 노동력 착취가 빈번했다. 노동자들은 증산을 위해 엄청난 노동량을 감당해야만 했다. 하나가 세상 빛을 본 지 2개월 뒤 총성은 멈추지만 아버지는 다음해 5월 작업장에서 급사하고 만다.

사고가 잦아 사흘이 멀다하게 인부가 목숨을 잃던 광산. 아라카와 광산의 노동자들은 중노동과 가난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나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시댁에 그냥 기거할 수 없었다. 남편은 재혼한 시어머니의 자식인데다 시댁에는 재산을 물려받을 시아버지의 자식도 있었고 시누이까지 더부살이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어머니는 하나와 만주를 데리고 6명의 어린애가 있는 집안으로 다시 시집을 갔다. 하지만 너무나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두 번째 남편도 진폐증으로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눈을 감고 만다. 연명하기 위해 하나의 어머니는 만주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세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세 번째 아버지는 아황산가스가 가득 찬 제련소에서 일했는데 매우 폭력적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물론 하나에게도 무섭게 대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는 다이세이(大盛)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나는 매사에 성실하고 성적이 우수한 소녀였다.
아라카와 광산 모형.

마쓰다 도키코는 그러한 유년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 바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나무하러 갔다. 보니까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나 초라했다. 손톱은 귀신 같았고 머리칼은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산 벚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으며 “어머니 오늘 도망쳐요”라고 하니까 어머니는 울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자신의 상장과정을 얘기하며 “오늘밤 아버지는 돌아와서 폭력을 휘두르지만 내일 또 그 독가스를 마시면서 일하지. 덕분에 너도 매일 굶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거야”라고 설득했다.(아사히신문, 2004년 3월6일 인터뷰)

유년시절의 마쓰다가 얼마나 불행한 일상을 보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나중에 대표작인 ‘오린 구전’을 완성한 점을 의식하면 작가 마쓰다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어머니의 불행을 비극으로 수용하기보다 문학적 자산으로 삼았음에 틀림없다.

유년시절의 하나에게 무엇보다 큰 버팀목이 돼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 나무하러 가서 공부해서 자립하라고 타이르는 상냥한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하나는 독서에 심취한다. 친구 집에 가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구로이와 루이코 번역 ‘噫無情’)을 빌려서 읽고 남다른 감흥을 느낀다. 식물이나 자연에 종종 사로잡히는 하나였는데 소설의 등장인물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를 맛본다. 그러한 재미로 하나는 부엌일이나 물푸기, 의부의 지시로 사육동물 망보기 할 때의 고통을 감내했다.

어머니는 성실한 태도와 우수한 성적으로 6학년 때 상장을 받은 하나를 고등과에 진학시킨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한 채 일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시절에 어머니는 하나에게 배움을 통해 자립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던 것이다.

러시아혁명의 여파로 광산에서도 실천적 교사와 시대적 조류에 민감한 청년들이 일요학교나 여러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오빠와 같이 일요학교에 참가한다. 한편 친구 집에서 러시아 문학작품을 빌려와 탐독한다.

그러던 와중에 하나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고등과 2학년 때 의부가 두 마리의 소를 샀다. 방목한 소가 산림청이 관리하던 산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의부의 지시로 소를 찾으러 하나도 어쩔 수 없이 심야에 의부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의부는 산속에서 하나를 범하려고 덮쳤던 것이다. 온몸으로 저항해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 후 의부에 대한 증오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한 고통과 증오심을 참아내기에는 하나에게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아라카와 광산에서의 생활과 유년시절의 고통스런 기억 하나하나는 더욱 문학적 표현을 부채질하는 계기가 된다.
마쓰다 도키코의 초등학교 성적표.

문학이야말로 진짜로 사는 길

마쓰다는 2004월 4월12일 진보언론 아카하타의 기자와 인터뷰하며 ‘문학이야말로 진짜로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학이란 참으로 삶 그 자체를 의미할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 때문에 살까요? 인간이란 본래 어떠한 존재일까요? 미쓰비시 광산에서는 훌륭한 사람과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하늘의 자연법칙처럼 존재해요. 어째서 그것이 하늘의 자연일까? 왜일까? 이상하다는 의문이 문학을 향하죠”라고 설파했다. 과거를 뒤돌아보는 마쓰다의 원숙한 시점이 읽힌다. 마쓰다는 유년시절부터 문학 그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읽고 또 읽었을 터이다.

마쓰다는 어린 시절부터 일치감치 독점자본인 ‘미쓰비시는 훌륭하고 노동자는 왜 훌륭하지 않은지’, 그리고 ‘왜 그게 하늘의 자연법칙처럼 존재하는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늘 의문부호를 품는다.

의부나 자본가처럼 힘 있는 사람이 훌륭하고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나 노동자처럼 힘없는 사람이 훌륭하지 않다는 통념. 그것을 깨부수는 일이야말로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잘못된 ‘하늘의 자연법칙’에 대한 의문이 더욱 문학의 길을 튼 셈이다.

그 생각은 식민지 지배(일본제국주의)와 가해기업(미쓰비시)이 훌륭하며, 피지배국(조선)과 무산계급(노동자)은 훌륭하지 않다는 편향된 시각에도 가차 없이 메스를 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마쓰다의 문학이 식민지주의를 초월해 일제강점기의 조선인과 중국인을 일본인과 동등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마쓰다의 평소의 지론과 무관하지 않다.

고등과 졸업을 앞두고 자립의 길을 찾던 하나는 적십자사의 간호원 수습시험에 응시해 보기 좋게 합격한다. 그리고 드디어 의부로부터 벗어나 기숙사에 입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의부를 통해 하나에게 타이프라이터로 일하도록 종용했다. 그러자 의부는 회사 측의 뜻을 받아들이고 만다.

하나는 망연자실했으나 이토 선생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토 선생은 타이프라이터로 3년간만 일한 뒤 아키타 여자사범학교의 교원이 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토 선생의 조언에 탄력을 받아 도쿄의 대학 강의록을 수집해 홀로 공부에 매진했다.

광산 사무소에서의 체험은 하나에게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된다. 하나는 타이프라이터로 근무하면서 정규사원과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과 노동력 착취의 구조를 파악한다. 미쓰비시의 아라카와 광산에서 벌어지는 지배와 피지배의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이다.

마쓰다는 1928년 ‘문예공론’ 5월호의 ‘신인란’에 자신의 지난한 환경을 극복, 문학 활동을 시작한 자아를 의식하며 ‘원시(原始)를 사모한다’라는 시를 발표한다.


원시를 사모한다

소리도 없이 대지가 식어서

차가운 공기가 널리 퍼질 때

팔을 펴고 머리를 빗고

초겨울 찬바람 속에 우뚝 섰다


여자

원시의 여자

피곤을 모르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연의 냉혹함을 이겨내고

최초의 생명 창조에

너무나 큰 희열을 느끼는 여자

그 무덤 위에

몇 십 세기의 문명이 독화(毒花)를 피웠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원시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1926년에 도쿄 상경 후 2년째에 접어든 마쓰다. 그녀가 고난을 딛고 펜을 들고 우뚝 선 여성의 입장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강렬한 자의식으로 홀로 일어선 마쓰다의 기개가 읽힌다.

같은 해 10월에는 광산에서 절감한 자본 착취의 구조를 돌이키며 노동자의 편에 서서 1928년 ‘갱내의 딸’이라는 시를 발표한다.


갱내의 딸

우리들은 잡역부

광부가 파낸 광석을 나른다

우리들은 여자 운반부, 갱내의 딸

우리들은 암흑 속을 암컷 매처럼 거뜬히 난다

감독도, 광부도, 지주부도, 권양 기계부도

지옥으로 이끄는 수직 갱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이나마이트 폭파음은 우리들 심장에

빛나는 미래를 알리는 소리

어제 13번 갱에서 광부가 죽었다

나는 그 피를, 그 생선살처럼 찢어진 살을

그리고 바윗덩이 무게에 쥐어뜯긴 머리칼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울 수 없었다

오늘 감독과 경관과 광산경찰이

신주를 모시고 피의 흔적 앞에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기도를 강요한다

하지만 나는 울 수 없었다

우리들은 노동자

우리들은 동료의 죽음을 슬퍼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사체를 밟고

나아가야만 한다. (중략)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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