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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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고통·정체성 혼란…치유의 미술 큰 힘”
동구 미로센터서 작업하는 광주 출신 미국 작가 조인자
월산동서 어린 시절…결혼 후 30년 미국서 생활
제약회사 근무 중 반신마비 진단…붓 들기 시작
“80년 5월 겪은 세대…영원한 정신적 뿌리로 작용”

  • 입력날짜 : 2019. 12.01. 18:25
말할 수 없이 절망적인 순간에서 제게 한 줄기 빛이 돼 준 것은 바로 그림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정신적으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죠.

오는 10일까지 광주 동구 미로센터 레지던시에 입주해 미국 참여 작가로 작업을 펼치는 조인자(53) 작가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인자 작가는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예술로 풀어낸 작가다.

조 작가는 어린시절 양동초와 월산초, 효광여중, 중앙여고를 졸업한 광주 출신 작가로, 서강대 유아교육과 2학년 재학 시절 미국으로 떠났다. 일생의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미국에서 살아온 디아스포라적 작가다.

작가는 결혼을 통해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했고, 30여년간 미국 미시간주 칼라마주시에서 거주했으며 10년 전부터는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노정숙 작가와의 인연으로, 2014년부터 광주에서 열리는 국제여성전에 참여하면서 점차 광주 등 한국미술계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원래 그는 다국적기업인 미국 화이자제약 규제법률감사과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도 했지만, 격무에 시달리던 그는 갑작스레 뒷목 연골이 파열되면서 직장에서 구조조정 대상자가 돼 직업을 잃게 됐다.

“회사를 다니던 중 반신마비 진단을 받았어요. 왼쪽 전체 신경이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2005년부터 수차례 경추 수술을 받고 재활 끝에 눌렸던 신경이 되살아나고 근육은 돌아왔지만, 후유증으로 자꾸 발생하는 고통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조인자 作 ‘awakening’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그는 오랜 시간을 신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살았다. 일상 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몸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는 웨스턴미시간대 미술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 붓 터치 하나 하나에 감사함을 담아 그림을 그렸어요. 수채화, 유화부터, 밀납 물감을 쌓고 불로 붙여서 구워내는 인코스틱(encaustic·인화 또는 납화)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기본기를 다졌죠. 2010년 졸업 이후 저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빨강과 파랑’의 색채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채로운 색의 물감을 진득하게 바르고, 캔버스 위 마티에르를 강조한 게 특징이다.

“‘빨강과 파랑’은 ‘차가움과 따뜻함’(cold+hot)을 의미합니다. 아직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은 신체 근육이 때로는 너무 차갑게, 때로는 너무 뜨겁게 느껴지는 느낌을 표현한 것입니다. 제 작품은 민족적이거나 국가적인 것은 아니죠.”

개인적인 일만을 다룬다고 해 그가 국가나 민족에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철저히 한국인이자, 광주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늘 자신 안에 뿌리깊게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삶을 살며 항상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럼에도 늘 강조해 왔던 것은 바로 ‘조인자’(Inja Cho)라는 한국 이름이 갖는 의미와 가치였습니다. 한국의 산, 땅과 흙에 대해 집착하고 그것을 추상적인 풍경화로 녹이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광주 작가로서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저는 80년 5월을 현장에서 목도한 세대이자, 대학시절에는 시위 현장에 나가 인권을 부르짖곤 했습니다. 민주화를 일궈낸 광주 사람의 기질로 더욱 많은 무대에서 제 작업세계를 알리고 싶습니다.”/정겨울 기자


정겨울 기자         정겨울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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