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4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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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다
주홍
치유예술가
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 입력날짜 : 2019. 12.05. 19:16
충장로 우체국 뒷길은 광주시민들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내는 장소일까? 우체국 뒷길에는 상추튀김집이 즐비했고, 독서실로 공부하러 다니던 학생회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멸치국물육수에 국수를 말아서 팔거나 삶은 계란 등을 파는 김밥집들이 있었다. 고소한 튀김냄새와 멸치국물육수냄새가 아직도 골목에 배어 있는 듯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햄버거 가게와 체인점 빵가게가 있지만, 그 때는 충장로에 삼겹살도 없었고, 햄버거도 없었으며 치맥도 없었다. 한편, 80년대에는 금남로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다가 최루탄과 경찰을 피해 숨었던 곳도 내 기억 속 충장로 뒷골목이다.

아직도 충장로는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지금도 나는 충장로에서 옷가게도 둘러보고 길거리음식도 먹으면서 여행자처럼 즐거운 산책을 하곤 한다. 특히 우체국 뒷길을 사랑한다. 마치 이문세의 ‘옛사랑’ 노래에 등장하는 광화문의 풍경처럼 나에겐 충장로가 추억을 되살리는 장소다. 그런 충장로가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쓰레기 줍기 대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나는 쓰레기다’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나는 쓰레기다’ 퍼포먼스는 빗자루와 걸레로 충장로 바닥을 쓸고 닦은 뒤, 수제 한지(마종이)를 바닥에 깔고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다음, 대형쓰레기봉투에 내가 들어가서 사람들이 주워온 충장로 쓰레기들의 한복판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지에 먹으로 이렇게 썼다.

‘어제도 쓰레기를 버렸고, 오늘도 쓰레기를 버린다. 내일도 쓰레기를 버릴 것이다. 매일 무엇을 버리는가? 나는 오늘 나를 버린다.’

그날은 수능시험일이라 오후에 청소년들이 충장로에 많았고, 인파로 붐비는 시간이었다. 나를 버리는 경험을 선물하는 이 퍼포먼스는 지나가는 5살 아이가 손으로 건드려서 나는 쓰레기 봉투에서 나왔다.

쓰레기 속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는 시간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라는 마이크를 통과한 목소리도 들렸지만, “전두환이 쓰레기다!”라는 통쾌한 광주사람의 발언도 스쳐갔다. 그리고 내가 버린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더 귀한 것은 군중과 쓰레기 속에서 짧은 시간동안 깊은 사색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 쓰레기 퍼포먼스를 장소를 바꿔가며 연작으로 해보기로 한 이유다.

그 후 두 번째로 이어지는 ‘나는 쓰레기다’ 퍼포먼스는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였다. 나는 3일 동안 내가 버린 쓰레기들을 모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구나’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택배가 오면 나오는 박스포장들, 과일을 담아온 스티로폼 박스, 과자나 라면 등의 비닐들, 우유팩과 두유팩, 플라스틱 음료수병과 물병, 캔 깡통 등. 음식물쓰레기를 제외하고 버려지는 포장용기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았다. 배달 소비시스템이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쓰레기가 될까?’ 광주시립미술관 로비는 천정이 높고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는 멋진 공간이다. 그리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예술작품을 감상할 준비가 되어있다. ‘쓰레기로 옷을 만들어 입고 패션쇼를 하자.’ 나는 구겨진 검정 비닐들을 모아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검정비닐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쓰레기 패션쇼를 했다. 검정비닐에 다양한 표정의 얼굴을 그려서 디스플레이하면서 워킹을 하고, 3일 동안 내가 버린 쓰레기 속에 누워서 나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 쓰레기 퍼포먼스는 우리가 버리는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도 있으나 일종의 수행이다. 나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창작자가 매일 매일 실천해야할 중요한 작업인 것이다. 의식의 확장과 창조적인 삶을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쓰레기로 버리고 나면, 더 큰 차원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쓰레기다’라는 퍼포먼스는 그런 의미에서 자유를 향한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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