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7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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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쓰는 자본주의
최형천
㈜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 입력날짜 : 2019. 12.29. 19:02
연말이라 회식이나 송년회 자리도 많고 그에 따라 건배사를 할 기회도 빈번하다. 그 중에서 ‘2019년 땡!, 2020년 큐!’라는 건배사가 돋보였다.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자는 뜻으로 외치는 것이다. 개인사뿐만 아니라 국가의 일에서도 과거는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다짐과 약속이 절실하다. 한해를 정리해보면 우리나라는 참 많은 일을 시도하였지만 그 결과는 지지부진하기 만하여 국민들의 속은 어떨 땐 천불이다. 남북문제만하여도 기대 속에 조마조마 기다렸지만 미국을 위시한 주변국은 아직도 강고한 냉전 사고로 무장하고, 정작 당사자인 우리를 분단의 울타리 안에 가둬둔 채 자국의 셈법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제는 냉전체제와는 땡! 하면서 결별하고 남북을 비롯한 동북아 평화체제가 큐! 하고 열리길 열망한다.

국내적으로는 날로 극심해지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현 정부는 아래로부터 온기가 올라오는 포용국가를 지향하고 있지만 기득권층으로부터 저항이 만만치 않아 그 전진의 속도는 느리고 효과는 미미하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극소수가 경제적 이득을 독점하여 중산층은 사라지고 빈곤층은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처한 위치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며 그에 따라 해법도 극과 극으로 갈린다. 전통적인 시장주의자들은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은 시장의 본질적 작용이고, 그들이 기회를 잡아 부를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주의자들이 볼 때 불평등한 현실은 비정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의 분석 모델은 시장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가정한다. 그래서 이런 부의 편중이 자연과학적인 현상인 것처럼 설명한다.

한편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장은 자연 상태가 아니다. 시장은 지배력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또한 규칙은 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집단이 정치력을 행사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의 규칙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제도주의자들은 1970년대 이후 게임의 규칙이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이래로 30년 동안 성취된 경제적 힘의 균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규제 완화, 부자 감세, 사회복지 지출 삭감 등으로 인해 최상위층의 부는 대폭 늘어난 반면,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더 나빠졌다. 이렇게 게임의 규칙이 최상위층에게는 유리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불변의 자연 법칙에 따른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경제 현실은 바로 우리가 선택한 결과이며 또한 이제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다른 선택이란 게임의 규칙 즉 자본주의를 바꿔 쓰는 것이다.

포용국가 정책은 사람에 대한 투자여야 한다. 이는 평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성장 또한 촉진한다. 사람들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주기 때문에 경제 전반에도 이롭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아동의 건강과 교육 등에 대한 투자는 성장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최선의 방법이다. 지금까지 지배해온 규칙들은 바로 공급 측면 경제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세금과 복지의 부담, 정부의 규제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관점이다. 결국 가진 자들은 더 가지게 만들었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렇게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격심한 경제하에서는 기회의 평등도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포용정책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길을 잘못 든 자본주의를 바꾸고, 이에 따른 제도의 혁신과 법률의 정비는 불가피하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물질적인 사리사욕의 추구를 미덕으로 삼아 왔다. 그 결과 빈부격차는 커지고, 돈벌이에 대한 강박은 삶을 억누르며, 공공성의 가치는 사라져 갔다. 계층 간 이동 가능성 또한 매우 협소해졌다. 이로 인해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경제 성장을 충분히 이루어 낸 다음에야 국가가 사회적 병폐를 줄이는 일에 나설 수 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역설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공동의 목표는 단연 불평등의 해소이다. 개인의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국가체제는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며, 그러한 삶은 어떤 종류의 국가에서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019년 땡! 2020년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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