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4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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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함양 ‘마적도사전설길’
신선 노닐던 별천지에 서린 신비로운 전설

  • 입력날짜 : 2020. 01.07. 19:41
길이가 100m나 되는 푸른 담과 아기자기한 화강암들로 이뤄진 용유담. 용유담은 예로부터 신선이 노니는 별천지로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마적도사와 당나귀 관련 전설이 서려 있다.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람천의 모습은 언제봐도 자연스럽다. 무채색의 겨울계곡은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은근하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람천은 산내면소재지를 지나면서 뱀사골·달궁계곡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만나 덩치를 키운다. 실상사 앞을 지난 람천은 경남 함양군으로 흘러들어 백무동계곡을 만나고, 칠선계곡까지 끌어들여 제법 강다운 모습을 갖춘다. 어느새 하천의 이름도 엄천강으로 바뀌었다.
지리산 벽송능선 끝자락과 법화산 자락 사이 협곡을 헤쳐 나온 강물은 용유담에 이르러 숨을 고른다. 오늘 트레킹의 출발지인 용유담에 도착했다. 우리는 용유담에 얽혀있는 마적도사와 당나귀 전설을 되새기며 ‘마적도사전설길’을 걸으려 한다.

군계일학처럼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는 400년을 훌쩍 넘는 세월동안 같은 자리를 굳게 지키고 서 있다. 소나무 아래는 50명 이상도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이를 세진대라고 부른다.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용유교에서 용유담을 바라본다. 길이가 100m나 되는 푸른 담과 아기자기한 화강암들로 이뤄진 용유담(龍遊潭)은 언제보아도 범상치 않다.

용유담은 예로부터 신선이 노니는 별천지로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한 곳에 전설 하나 없을 수 없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 마적도사와 당나귀 관련 전설이 그것이다.

옛날 이곳 용유담 옆에서는 마적도사가 살았다. 마적도사가 종이에 쇠도장을 찍어서 나귀에게 부쳐 보내면 그 나귀가 어디론가 가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등에 싣고 오곤 했다. 짐을 싣고 온 나귀가 용유담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 나귀가 연못을 건너오곤 했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를 보내 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용유담에서 용 아홉 마리가 싸우는 소리에 나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귀는 강변에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계속해서 울부짖다가 그대로 죽고 말았다.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됐는데 그 바위가 곧 나귀바위다.

용유담 상류쪽을 바라보니 엄천강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첩첩하고 삼정산이 맨 뒤에서 강을 감싸준다. 길쭉하게 큰 못을 이룬 용유담은 법화산 자락을 휘돌아 경호강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용유담의 모습을 모전마을이 바라보고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엄천강을 뒤로 하고 모전마을길로 들어선다. 마을안길을 걷다보면 용유담을 지나 ‘S’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엄천강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모전마을을 지나 송대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길을 따라서 걷는다. 가파른 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조금 전 만났던 용유교가 내려다보이고, 용유교 뒤편에 법화산이 우뚝 솟아있다.

견불사에 도착했다. ‘천연와불성지 견불사’라 쓰인 표지석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법당 뒤편 와불을 조망할 수 있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동쪽으로 펼쳐지는 산 모양이 와선(臥仙) 중인 부처를 닮아 와불(臥佛)이라 부른다.

견불사에서 골짜기를 따라 송대마을로 향한다. 송대마을은 해발 520m 깊고 깊은 산중에 별천지처럼 자리를 잡았다. 모전마을에서도 2㎞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와야 만날 수 있는 송대마을은 첩첩한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돼 있다.

견불사에서 바라본 천연와불. 동쪽으로 펼쳐지는 산 모양이 와선(臥仙) 중인 부처를 닮아 와불(臥佛)이라 부른다.
10여년 전에 왔을 때는 마을안쪽에 ‘지리산 빨치산안내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나는 그때 송대마을에서 선녀골을 지나 상내봉으로 오르면서 한국전쟁 당시의 빨치산 흔적들을 봤었다. 빨치산들이 비트로 이용했던 선녀굴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리산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은신했던 곳도 선녀굴이었다.

송대마을에는 말귀를 닮은 커다란 말귀바위가 있다. 말귀바위 앞에 구시바위가 있었으나 도로공사 때 없어졌다.

송대마을을 지나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서간다. 세동마을로 가는 길이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뒤돌아보면 견불사에서 보았던 와불이 말없이 미소를 지어준다. 와불전망대에서 자연이 만든 거대한 부처상을 바라보며 합장을 한다. 자연 와불이 합장하고 있는 나에게 “부처는 형상에서 찾지 말고 네 마음속에서 찾아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길은 임도를 따라 점차 고도를 낮춰간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는 겨울날, 산 중턱을 돌아가는 임도가 쓸쓸하면서도 포근하다. 근처에는 마적동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말발굽바위도 있었다는데, 1990년 산사태로 휩쓸려 가버렸다.

유유자적 길을 걷다가 군계일학처럼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소나무 아래는 50명 이상도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이를 세진대라고 부른다. 주민들이 인근 절에 가면서 이 소나무 아래 너럭바위에서 마음을 씻고 갔다고 해서 세진대(洗塵臺)라고 불렀다. 20m가 넘는 높이에 가슴둘레 2.6m나 되는 이 소나무는 40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세진대에서의 조망은 감동을 자아낸다. 저 아래로 엄천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엄천강 옆으로 달려가는 60번 지방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우리가 출발했던 용유교가 멀지 않은 곳에서 손짓하고, 용유교 뒤로 지리산 벽송능선과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백운산·금대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엄천강 건너로 법화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해발 529m 송대마을에 있는 말귀를 닮은 말귀바위. 말귀바위 앞에 구시바위가 있었으나 도로공사 때 없어졌다.
차츰 농경지가 나타나고, 띄엄띄엄 민가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산자락 다랑이논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세동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앞으로는 엄천강이 흘러가고, 가옥들은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앉았다.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은 예전에는 나룻배와 외나무다리로만 외부와 연결되던 심심산골로 육지 속 섬마을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송대마을 안쪽 선녀굴에서 머물던 빨치산이 저녁이면 이곳 세동마을까지 내려와 양식을 가져가곤 했단다.

마적도사전설길은 세동마을에서 처음 출발했던 용유교 방향으로 향한다. 길은 포장된 1차선 도로를 따라 이어지다가 배수펌프건물로 가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나무 사이로 엄천강이 고요하게 흘러간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니 가냘프게 들려오는 강물소리와 낙엽소리가 묘하게 어울린다.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헤아릴 수 없는 바위와 만나고, 주먹만 한 자갈들을 적신다. 작고 둥근 바위들이 강물위에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품을 전시해 놓았다. 어느덧 도착지점인 용유담과 용유교가 지척이다. 용유담을 지나 세동마을 쪽으로 흘러가는 엄천강의 모습이 주변의 산과 행복하게 어울린다. 산과 강이 서로 둘이 아님을 보여준다. 산이 있어 물이 흐르고, 물이 있어 산은 생명력을 유지한다.


※여행쪽지
▶함양 마적도사전설길은 지리산 북쪽 엄천강에 있는 용유담에 얽힌 전설을 상기하며 걷는 길이다. 이 길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의 4개 자연부락을 잇는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코스 : 용유교→모전마을→견불사→송대마을→와불전망대→세진대→세동마을→모전마을→용유교(8.7㎞, 3시간30분 소요)
▶용유교 근처에는 식당이 없다. 용유교에서 5㎞ 거리에 있는 칠선계곡 입구나 함양군 마천면소재지에 식당이 많다. 그중 칠선계곡 입구 추성산장(055-962-2422)의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닭백숙, 흑돼지구이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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