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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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통미봉남(通美封南)인가?
박대우
지역발전정책연구원장

  • 입력날짜 : 2020. 01.12. 17:53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들었던 한 해를 보내고 2020년을 맞았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날아든 북한의 일성으로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1일 북한은 김계남 외무성 고문이 발표한 담화를 통해 제재 완화를 위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2020년을 맞아 남북관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위험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연말 시한’을 흘려보낸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입장은 명확해 보인다. 미국이 우선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경우에만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정상회담처럼 핵시설의 폐기와 경제해제를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회담에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이를 기대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당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며 미국에 일부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영변 외에도 추가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협상은 결렬됐다.

그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북·미간의 비핵화 협상이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이란과의 핵협상에서 촌각을 다투는 긴장과 대결국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여력이 없다.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사실상 시작된 상태에서 북한과의 협상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난제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는 북한과 달리 의회, 언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기 때문이다.

결국 당분간 미국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북한은 정면 돌파를 선언하면서 통치기반을 다져나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사실상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회귀한 것은 외부와의 대결국면으로 자칫 흔들릴 수 있는 민심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절박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과 한국의 전략무기 반입 중단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그러한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대목은 남한에 대한 북한의 날 선 반응이다.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동원되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독자적으로 확대하자는 입장에 대해 북한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큰 관심이 없으며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이행하라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미국과는 대화를 하면서도 남한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북한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이후 북한은 핵 개발을 무기로 미국과 막후 협상을 벌여 미국으로부터 중유 및 경수로를 제공받는 제네바합의를 체결하게 된다. 이때 미국과의 실리적 통상외교를 지향하면서 대미관계에서 남한 정부의 참여를 봉쇄하는 북한의 외교 전략이 ‘통미봉남’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북한의 경수로 건설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가. “허망한 꿈을 꾸지 말고,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라”는 북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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