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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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더’의 가치 수필 박용수

  • 입력날짜 : 2020. 01.13. 19:38
빈 상자와 폐지 뭉치들이 위태롭게 고개를 넘고 있다.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불자 상자와 폐지들이 휘청거린다. 이어서 손수레까지 들썩거린다. 위태로운 한낮의 곡예, 바람 빠진 타이어가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착 달라붙어 질척하게 떨어지지 않는 여름 한낮, 질주하는 트럭과 자동차 사이를 뼈만 앙상한 노인같이 낡은 손수레가 더운 숨을 내쉬며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가혹한 삶의 무게를 떠받치기에는 너무 형편없이 가녀린 허벅지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두 손에 주먹이 쥐어진다.

‘더, 더 조금만 더….’

노인의 수레가 겨우 언덕 너머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사실 ‘조금’ 더는 내가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무의식중에 내 입에서 툭 튀어나왔지 않은가.

조금 더, 조금 더 높이, 더 많이, 더 빨리…

‘더’나 ‘조금’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싫증을 내며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던가. 시험 못 치렀다고 밤까지 남아서 공부했던 일, 다음에는 잘 치렀다고 생각했는데 ‘더’ 잘하라는 선생님 말씀, 딱 한 글자를 넣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잘 했어, 하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면 마음속에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시골에선 중학생이 되면 으레 지게를 졌다. 나락 예닐곱 뭇을 짊어지고 가풀막을 오르내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지게질도 서툰데, 삼촌은 그 위에 꼭 한 단을 ‘더’ 올리셨다.

“다리 힘이 짱짱 하구만, 딱 한 단만 더”

헤죽헤죽 웃으시며 너스레를 떠는 그 말씀이 정말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딱 한 다발만 덜 짊어져도 몇 번은 더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한단 ‘더’가 내 영혼까지 궁핍하게 만들었다.

외가 친척이 사탕을 몇 개 주고 가신 적이 있었다. 사탕을 쥐는 일은 정말 연중행사였다. 그런데 이웃집 친구가 와서 손을 내밀었다. 다섯 개 중에 두 개를 주었는데, 다시 손을 내밀며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선택을 종용했다.

“한 개만 더”

요즘 음주 측정할 때, 경찰관이 더! 더! 더! 외치는 목소리에는 겁박이 들어있다. 그래서 ‘더’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거부반응부터 일어난다. ‘더’라기 이전에 토닥거림, 끄덕임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는 우리의 등을 사지로 떠미는 ‘덫’이 되고 만다. 높이 많이 빨리도 부담스러운데 능력을 더욱 쥐어짜 내라는 겁박과 강요가 들어간 것이다.

말 없는 격려는 얼마나 힘이 되던가. 좀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이 가까이서 재촉하는 것보다 훨씬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경우가 많다. 원래 더는 부정적이라기보다 긍정적 의미로 훨씬 많이 쓰는 힘찬 격려이다. 적진을 향해 진격하라는 병사들에게 사지로 몰아넣는 외침은 피가 묻어있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설 때, 불의에 항거하여 저항할 때 스스로 하는 다짐은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광화문의 촛불이 총과 칼보다 강했던 것은 강요보다 자발적인 의지가 불꽃으로 타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더, 조금 더’는 힘들어하는 이에게 방관자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힘을 보태면서 함께 하는 온기 있는 말이 ‘더’이다.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시킬 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어야 한다. 방황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마음을 보태면서 해야 할 말이고, 실직한 친구에게, 병원에 들어서는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사랑 가득한 위로이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위무여야 한다. 언덕을 오르면서 끄는 이와 미는 이가 하나가 된 목소리, 기둥에 눈금을 그어놓고 키를 잴 때, 어머니의 목소리여야 한다.

우월적 존재에서 강압과 재촉이 들어있는 소리가 아닌 그와 진정으로 하나 되는 마음이 들어갈 그때 ‘더’라는 맞춤이고 제격이다. 모음 하나만 바꾸면 ‘다’가 될 수 있는 플러스여야 한다. ‘ㄹ’ 하나만 추가해도 ‘덜’이 될 정도로 위안과 휴식이어야 하고, ‘ㄱ’을 더하면 ‘덕’이 되고, ‘ㅁ’을 넣으면 ’덤‘이 되듯 누군가의 삶에 지표가 되거나 긍정적 에너지여야 한다.

누군가의 짐을 함께 짊어질 줄 아는 이가 되고, 힘겨운 누군가의 등을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존재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 ‘더’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조심조심 아껴 쓰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먼저 되고 싶다.


박용수 약력
▶전남일보 신춘문예 등단
▶광주문학상, 광주예술문화상 수상
▶광주동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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