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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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속 긍정의 힘으로 ‘나’만의 행복을 디자인하라
르누아르 ‘보트파티에서의 오찬’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 입력날짜 : 2020. 01.14. 18:36
묵은해를 보내고 2020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간을 갖는 1월, 또다시 주어진 열두 달을 생각하며 마음 한켠 그 기대감에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보통 ‘행복’이라 함은 흔히 ‘무언가 기쁜 감정을 느낄 때’를 가리키는데, 통계적으로는 원하던 목표를 성취해 냈을 때 ‘행복하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간단한 것 같지만 복잡 미묘한 질문에 명쾌한 대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비록 완벽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돼 주고, 무언가 모르게 기분 좋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새해를 맞은 시점에 있어 좋은 일인 것 같다.
예술가들의 삶의 여정이 담긴 명화 속에도 행복에 관한 생각들은 여실히 녹아 있다. 그중에서도 첫 회차에서는 ‘행복의 화가’라 우리에게 알려진 르누아르 작품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과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보면서 화가들이 생각했던 행복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미술사 속 화가들 중에서 ‘행복’이라는 키워드에 가장 걸맞는 작가로는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1841-1919)를 꼽을 수 있다.

“가뜩이나 불쾌한 것이 많은 세상에 굳이 그림마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라 늘상 말하던 르누아르는, 행복이란 감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행복한 순간만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했던 인상주의 화가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作 ‘가나의 결혼식’ <사진 위>과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위키피디아 검색
그가 살았던 시기의 파리는 산업혁명이 지나고 급변하던 때로, 사적인 삶의 풍요가 더욱 중요해져 여가 생활이 빈번해졌던 시기였다.

이렇게 생활이 안정된 파리에는 늘어난 여가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고, 북쪽 끝 자락에 위치한 몽마르트 화가들에게도 이들의 모습은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作 ‘행복한 눈물’ /위키피디아 검색
이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르누아르는 행복의 화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그림 속에 기쁨만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은 늘 삶의 기쁨에 취한 채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특히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Le dejeuner des canotiers·1881)이라는 작품은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르누아르와 친구들이 보트 위에서 점심 식사를 즐기는 일상의 여유로운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센 강변의 알퐁스 푸르네즈의 식당에 모여 연희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화면 왼편에서 작은 강아지와 함께 놀고 있는 여인은 후에 그의 부인이 되는 알린느 샤리고다.

여인의 맞은편 남자는 경제적으로 유복해 친구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던 화가 카이유 보트다.

그리고 그 옆엔 여배우 엘렌 앙드레가 앉아 있고, 뒤로는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마지올로가 서 있다. 난간에 기대있는 옆모습의 남자는 레스토랑 주인의 아들이다.

보트 위에서 점심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홍조를 띤 모습으로 모두들 행복에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작품 속에는 그가 생각했던 행복에 대한 이미지가 하얀 얼굴, 붉은 뺨, 풍성한 색채 등을 통해 행복한 사건과 인물들의 표정이 더해져 화폭 속에 표현돼 있다.

또한 인물들 간의 시선 교류를 통한 자연스러운 구도의 연출 또한 눈 여겨 볼 요소다.

‘보트파티의 오찬’은 르누아르가 연구했던 16세기 화가 베로네제(Paul Veronese, 1528-1588)의 ‘가나의 결혼식’(Marriage feast at Cana·1563)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가나의 결혼식 전경 왼편의 인물 그룹과 보트 파티의 오찬 화면 전체를 보면 비슷한 구도의 인물 배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풍부한 색채와 다양한 질감 표현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베로네제의 작품을 연구한 면모가 보여진다.

빛을 묘사하기 위해 물감을 팔레트에 섞지 않고 바로 붓에 찍어 그림을 그리던 르누아르의 인상주의적 기법은 그의 초기 묘사법으로 형태를 흐트러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전 작품 연구를 통해 변화됐고, 후에 선명한 윤곽선, 부드러운 붓 터치, 풍부한 색채 표현 등 르누아르만의 화풍으로 바뀌어 갔다.

이처럼 비록 그의 작품이 미술사에 두드러지는 화가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그의 그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르누아르와 같이 잔잔한 행복을 전해주는 작품과는 조금 다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1923-1997)의 작품 ‘행복한 눈물’(Happy Tears·1964)을 보며 또 다른 행복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그저 ‘만화 같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이 작품이 가치를 가지게 된 이유는 아마도 ‘미묘한 웃음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처럼 그림을 그렸지만 연속된 장면이 아니라 단 한 컷만을 확대해 그렸기에 작품 속 여주인공의 행동과 표정만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웃고 있는 동시에 울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그녀가 행복의 눈물(crying of joy)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미소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포인트다.

그림 속 여인은 웃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울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것이, 혹은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그녀는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이는 리히텐슈타인의 주제적 특징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 외적인 묘사뿐 아니라 작품 주제도 만화적 형식을 따르는 그의 작품은 크게 로맨스와 전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늘 해피엔딩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에 슬픔이나 끔찍한 일들은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행복한 눈물’도 사랑의 기쁨이나 환희를 느끼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라고 해석될 수 있고,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강렬하고 긍정적인 행복의 감흥’에서 비롯된 것으로, 르누아르와는 또 다른 복잡 미묘한 행복의 감정을 표현해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과정>
행복에 대한 예술가들의 생각은 그림에서 드러나듯 자신만의 삶의 배경과 성향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의 영향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복의 화가 르누아르 작품에서처럼 때론 편안한 일상의 감정으로, 혹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보이듯 강렬한 감정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행복이란 요소는 하나로 규정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행복을 탐욕스럽게 좇지 말며,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노자의 말이 있다. 같은 말을 들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오듯, 행복이라는 것도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너무 욕심만 낼 것도 아니다.

지치고 힘든 가운데서도 삶의 작은 것들을 긍정하면서 산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지 않을까? 2020년 새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에 선 모두가 ‘행복한 기분’으로 힘찬 시작을 다지는 1월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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