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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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저 산이 지금까지 침묵하지만 않았다면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54)

  • 입력날짜 : 2020. 02.05. 17:45
白馬坮(백마대)
어우동

쓸쓸한 백마부대 몇 해나 되었던가
우뚝 선 낙화암도 많은 세월 흘렀구나
저 산이 침묵만 없으면 흥망을 알았으리.

白馬坮空經幾歲 落花岩立過多時
백마대공경기세 낙화암입과다시
靑山若不曾緘? 千古興亡問如何
청산약부증함묵 천고흥망문여하


신라의 융성했던 역사와 시들어간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고도 경주를 가야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백제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사비와 웅진으로 대표되는 부여를 찾아야 한다. 역사적인 흥망성쇠로 봤을 때, 신라보다는 백제의 역사가 더 아픈 사연을 한 아름 안고 있다. 망해가는 과정이 슬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쓸쓸한 저 백마대 과연 몇 해나 되었던가, 우뚝 선 낙화암 많은 세월이 흘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만일 저 산이 지금까지 침묵하지만 않았다면’(白馬坮)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호서기녀(湖西妓女) 어우동(於于同·?-1480)이다. 수십 명의 조관 및 유생들과 난잡한 성적 관계를 가졌으며, 그 내용이 ‘용재총화’, ‘성종실록’ 등에 전하기도 한 인물이다. 1480년(성종 11) 문란한 행태가 발각돼 의금부에 잡혀갔다. 결국 ‘삼종지도’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에 처해졌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쓸쓸한 저 백마대 과연 몇 해나 되었던가 / 우뚝 선 낙화암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 만일 저 푸른 산이 모두 침묵하지만 않았었다면 / 천고 흥망이 어떠했던가 물을 수 있을 것을]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백마대를 회고하며]로 번역된다. 낙화암하면 백제의 마지막 왕국을 떠올린다. 의자왕이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잡혔고, 궁녀 3천명이 낙화암에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한 줌 이슬로 사라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여류시인은 안타까운 그 때의 역사를 떠올리면서 시상을 이끌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700여년 전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감정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래서 쓸쓸한 저 백마대는 지금부터 몇 해나 됐던가를 묻고, 우뚝 선 낙화암도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선경이란 알뜰한 시상을 이끌어냈다. 백마대와 낙화암의 유사성과 대칭성에 무게를 실으면서 이끌어낸 시상 주머니다.

화자의 시상 주머니는 응어리진 자신의 감정 덩어리를 쏟아내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에 저 푸른 산이 침묵하지만 않았었다면, 천고의 흥망이 어떠했던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시상을 만든다. 마지막 결구의 시상에서 시적인 묘미를 찾는다. 청산이 대답해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군에 망하면서 비참했던 역사를 들을 수 없다는, 그래서 자연에게 간접적인 원인을 돌린다.

※한자와 어구

白馬坮: 백마대(坮: 대 대). 空: 공연히. 經幾歲: 몇 해가 지났는가. 落花岩: 낙화암. 부여에 있음. 立: 서있다. 過多時: 많은 세월이 지나다. // 靑山: 청산. 若: 만약. 不曾緘 : 함묵하지만 않았었다면. 千古: 천고. 오랜 세월. 興亡: 흥망. 흥함과 망함. 問如何: 어찌 물을 수가 있으랴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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