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5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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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과 2022년 ‘호남 집권’의 길
김진수
본사 서울취재본부장

  • 입력날짜 : 2020. 02.25. 18:14
21대 총선이 49일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하긴 하지만, 광주·전남의 각 선거구마다 사활을 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각 후보들은 예외 없이 그럴싸한 용어로 자신을 포장해 득표활동을 벌인다. 선거판에 난무하는 구호와 외침들은 종종 거창하지만 실상 선거란 ‘누가 더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로 선택되는 결과들의 집합일 뿐이다.

호남은 이번 21대 총선에서 2022년 ‘호남 집권’을 향한 큰 밑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호남 집권’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그 오랜 세월 한국사회를 짓눌렀던 불균형 발전과 차별 그리고 지역적 편견을 확실히 마무리 짓는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남 집권’이란 대통령 후보도 호남 출신임은 물론이고, 집권을 성사시킨 핵심 역량도 호남 으로 채워진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호남이 다 말아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호남이 미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개혁을 보다 주도적이고 책임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호남인들의 뜨거운 지지에 힘입어 탄생한 친 호남 정권인 것은 맞지만, ‘호남 집권’은 아니다.

혹자는 국무총리가 연속해서 호남 출신으로 채워졌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 중심제 하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허용해준 ‘공간’ 안에서만 활동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독자적으로 뭘 해보겠다고 머리를 들었다가는 정 맞는 구도인 것이다.

문 정부 출범 이후의 경험을 종합해 볼 때 인재 영입과 같은 핵심 요소는 여전히 호남 밖에 있었다. 예컨대, 청와대의 호남 출신 수석비서관이 5급 행정관을 하나 쓰고 싶어도 급수가 한참 아래인 부산 출신 국정상황실장의 ‘눈치’를 봐야하는 구도였다는 말이다.

여당 내부의 핵심 의사결정 구조 역시 호남에게는 문턱이 높다. 우리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쟁쟁한 호남 출신 국회의원도 당의 주요 사안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보안이 잘 유지된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당 권력 핵심과 호남이 거리가 있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호남 유권자들의 열정적인 표심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정당이면서도 호남 정치인들은 여전히 변방인 것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동안 당권에 도전했던 호남 정치인들이 당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친노’, ‘친문’ 그룹의 비토에 밀려 무릎을 꿇은 것도 여러 번이다.

호남 시군구 지역의 민주당 조직도 여당의 핵심과 유리돼있다. 그 결과 지방의원들은 지역에서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중앙당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한다. 사전에 소통 같은 것은 없다. 불만이 쌓여도 해소할 창구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 ‘호남 집권’의 꿈은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만 갖고 있는 꿈이 아니다. 현재 호남에서 민주당과 1대 1 구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민생당이나 무소속 정치인들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당에서 대권주자가 안 나오더라도, 민주당에서 호남 출신 대권주자가 나온다면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돕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단지 민주당 후보에 맞서기 위한 득표전략일뿐이란 비판도 있다. 대선주자로 우뚝 선 이낙연 전 총리를 팔아 선거에 이득을 보려는 술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호남 집권’은 호남의 정치적 역량이 총결집되고 동시에 잘 조직돼 있을 때여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호남의 정치적 역량은 민주당 하나만으로 온전히 평가될 수 없다. 더욱이 앞으로 전개될 민주당의 대선주자 결정 프로세스가 ‘습관성 非호남 증상’을 보이는 ‘친문’그룹이 좌우하는 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번 총선에서 호남의 유권자들은 몇 가지 상반된 논리와 마주하고 있다. 우선 ‘세대교체론’이다. 4선-5선 할 때까지 뽑아 줬는데 뭐 하나 이룬 게 없지 않냐. 젊고 참신한 새 인물로 호남 정치를 확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와 대척점에 서있는 논리는 ‘중진역할론’이다. 초선은 아무리 잘나도 국회에 들어가면 그냥 초년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회의실이 어딘지, 상임위 전문위원실이 어딘지 모르는 그가 노련한 정부 관료나 타 지역 국회의원과 경쟁해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초대형 프로젝트 예산을 따오는 일이 과연 말처럼 쉽겠냐는 반박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에서의 노장청(老壯靑) 조화를 이렇게 설파했다.

“나이 먹은 사람은 높은 경륜과 지혜를 내놓고 장년은 장년대로 국정을 책임져 나가고 청년은 청년대로 박력 있게, 힘차게 선두에 서야 합니다. 이러한 노장청 화합 체제야말로 우리가 갈 수 있는,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1997년 11월3일 DJP연합 후 기자회견 발언)

조화로운 신구(新舊)의 조화가 승리, 즉 집권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 DJ의 발언이 새삼 다가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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