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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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온 편지
주홍
치유예술가
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 입력날짜 : 2020. 04.02. 18:10
나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두기 이전에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생활했다. 가족이 모여 집 밥을 먹는 날도 일주일에 한두 번 주말이나 가능했다. 주말도 바빠서 함께 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밤늦게 오는 딸과 기숙사에 있는 아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빠와 아들이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잠깐 얼굴을 보고 잠자리에 들면 그 뿐이었다.

요즘 나는 진짜 엄마가 된 것 같다. 매일 밥을 하고 새로운 반찬을 만들며 밥상을 차린다. 베란다에 피는 봄꽃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꽃이 딸기로 변하고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끊임없이 재잘재잘 떠들고 질문하는 아들에게 대꾸하며 티격태격하고 있다. 이제야 가족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은 학교에 가지 않는 아들과 작업을 한다. 거의 매일 영암의 오래된 농가주택을 작업실로 고치는 작업이다. 세상은 흉흉하지만 봄은 오고 있어서 거리마다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영암으로 가는 길목에 다양한 종류의 묘목을 팔고 있어서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한그루씩 심기로 했다. 산수유와 앵두나무, 그리고 사과나무 묘목을 구해서 정원에 심었다. 학교공부를 싫어하는 아들은 날마다 신났다.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광주천을 관통하고 극락강변까지 다녀온다. 유채꽃과 벚꽃이 만발했다며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철봉에 매달려서 놀거나 집안일을 돕는다. 물론 게임도 한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딸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취업에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하고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긴 방학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가족의 일상이 새롭게 찾아왔다.

이렇게 긴 방학이 우리 인생에 또다시 찾아올까? 일이 없어서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가족이었지만 서로 바빠서 일터로, 학교로, 학원으로 흩어져 있었던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일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의 재앙 속에서 선물처럼 찾아온 찬란한 봄날의 ‘일상’이라는 기적!

삶의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화상으로 회의를 하고 강의를 하며 재택근무로 가능한 업무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홈스쿨이 이루어지고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서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정리하며 사용가능하게 편집해서 세상과 소통하며 적응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은 더 빠르게 진보할 것이고,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위기는 정치인들에게 기득권 싸움을 중단하고 법을 신속하게 바꾸고 신기술이 현장에 적용 가능하도록 제도화 할 것이다. 그렇게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는 매우 빠르게 패러다임이 전환되겠지.

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정신에서 1980년 5월 광주정신을 봤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시민정신, 사재기도 없고 오히려 나누고 배려하며 극복하고 있다. 꿈꾸던 대동세상이 위기상황에서 실현되는 대한민국이다.

대구에 지역감염으로 번지자, 전국에서 의료진들이 대구로 달려가 코로나19 바이러스 한 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지 않은가! 대구에 환자를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광주시에서는 대구의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상을 제공했다. 광주에서 치료받은 환자 전원이 완치되어 대구로 돌아갔다는 소식은 또 얼마나 다행인가. 대구로 돌아간 가족이 빛고을 전남대 병원에서 만난 의료인들의 정성과 따뜻한 보살핌을 잊을 수 없다며 감사의 편지와 선물을 보내왔다는 소식은 5·18 왜곡의 세월 때문인지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또한 광주·전남의 마을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군 단위로 마을 분들이 모여 직접 담은 각종 김치와 남도 반찬들과 특산품을 모아서 대구지역에 전달했다는 이야기, 신안군에서는 임자도의 튤립과 프리지어 등 봄꽃들을 트럭에 실어 대구의 환자들에게 희망의 편지와 함께 전달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오월어머니들은 도시락을 직접 싸서 의료진들에게 나눠드리며 응원했다는 소식 등. 아름다운 나눔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다. 전국적으로 나눔의 실천은 전염병보다 더 빨리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대재앙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더욱 인간답게 결속시키고 있다. 우리들의 소중한 일상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이 힘으로 극복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동안 멈출 수 없었던 경쟁사회 시스템도 이번 멈춤과 정지된 시간의 경험을 토대로 좀 더 인간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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