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4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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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링
강용
학사농장 대표

  • 입력날짜 : 2020. 05.21. 19:23
날이 참 좋다. 눈 쌓인 겨울 산은 겨울 산대로의 감동을 주지만 이때쯤엔 그래도 산은 역시 초록과 푸름이 주는 감성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월인데도 한여름 무더위 때 더 그리워하라고 그러는지 가끔은 바람 끝이 차다. 내가 농부가 아니면 ‘오늘은 봄 날씨가 좀 차구나~’ 하고 무심코 지났겠지만 요즘 날씨는 참 심각하다. 나무들이 그저 봄인 줄 알고 뿌리에서 힘차게 뿜어 올려 가지 끝까지 수액을 퍼 나르고 꽃피우다가 갑자기 추워지면 몸 안의 수액이 차가워져 냉해를 입는다. 그렇다고 혹시 냉해가 올지 모르니 잠시 미뤄야 할지를 판단할 정도로 나무가 똑똑할 수도 없다. 가끔 자연이 뒤틀리는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인간의 욕심이 부른 환경오염 때문이겠지만, 매년 반복되더라도 나무나 사람이나 그저 이맘때 쯤 평균으로 다가오는 달력의 숫자에 맞춰 자신도 모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올해는 좋은 우리 과일을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

여전히 농촌은 논을 갈고 모를 심고 익숙해진 때가 되면 심어야 할 농산물들을 심는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넓은 황토 들녘에 ‘고구마’도 많이 심는다. 예전에 흉년들어 기근이 심할 때나 먹었던 구황작물에서 지금은 건강 다이어트 식품 등으로 엔간한 농산물보다 훨씬 대우받으며 농가 소득에도 한몫 단단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 ‘고구마’이다.

대부분의 농산물은 수확 후 가능한 빨리 신선하게 저온저장고에 저장을 하지만, 고구마는 수확 후 ‘큐어링(curing)’이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큐어링이란 ‘상처를 치유 한다’는 뜻이다. 수확하면서 흙이나 모래에 긁혀 미세한 상처가 나고, 흙속의 유해한 균들이 상처로 침입하여 썩게 된다. 그래서 고구마를 32-42℃, 습도 85%에서 72시간 정도 보관하면, 스스로 신진대사를 촉진해 자체 저항성을 강화하고, 표면에 난 상처에 코르크층이 형성돼 병원균들의 침입을 막아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해진다.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고구마는 안타깝게도 물러져서 버려진다. 큐어링 과정을 거치고 나면 14℃정도의 온도에서 보관해야 1년간 상품성을 유지할 수가 있다. 간혹 농산물은 낮은 온도에서 저장하는 것이 좋다는 일반적 인식으로 저온에서 보관해 썩히는 경우도 많다. 얼핏 42℃까지 온도를 올리면 익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하겠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저장성이 약해지거나 전부 썩는다. 고구마 하나 심고 키우고 수확하고 1년간 유지하는 것도 엔간한 지식으로는 어렵다.

오늘도 출근길 라디오에서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19 전의 세계를 BC, 이후를 AC라는 신조어도 생겨나고, 인터넷과 유튜브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영상과 뉴스들이 뜬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진단과 정보들이 넘쳐나지만 솔직히 코로나 이후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빈부와 국경과 권력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전염된다는 것을 교훈이라 표현하기에는 인간에게 주는 고통이 너무 큰 것 같다. 누구에게나 온다지만 결국 노약자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고구마는 큐어링을 해야만 약한 것을 추려낼 수 있지만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는 사실 몰라서 방치한 것도 아니었다. 그 동안 우리가 못 보았거나, 못 본 척 슬쩍 넘어갔던 많은 문제들을 코로나19가 알려 주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전부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수많은 문제점들과 현재를 겪으면서 발생하는 문제들까지 누적되어 두 세배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겪어야 할 것이다.

학교나 종교, 공연 등 일반적인 변화부터 스마트폰이 우리를 개인으로 쪼개 버린 후 이제는 비대면까지 매일의 생활 속의 변화부터, 유통과 시장의 변화, 선진국이라던 나라들의 민낯, 베트남, 캄보디아, 러시아 등이 식량 안보를 이유로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등 수많은 변화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전문가들도 혼란스럽겠지만, 찌라시 같은 수많은 정보들을 대하는 대중들도 참 힘들다. 코로나19퇴치의 중심에 ‘질병관리본부’가 있듯, 한시적으로라도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 좀 더 신뢰할만한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도 ‘큐어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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