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5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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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가는 날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 입력날짜 : 2020. 05.28. 19:19
“7시50분 뱁니다.”

5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 목포여객선터미널이다. 흑산도 뱃길이 사흘째 이어진다. 93㎞ 거리를 최고 35노트 속도로 2시간여 달려야 한다. 뉴엔젤호가 실바람을 받으며 내항을 빠져나간다. 한 시간여에 비금도초, 흑산도는 큰 바다를 건너 그만큼 더 가야한다. 다른 곳은 찻길, 철길, 하늘 길이 나고 있지만 이곳은 오직 뱃길 뿐이다. 그래도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는 하루 네 번이나 다녔는데, 관광객이 줄면서 절반으로 줄고 말았다. 이마저도 센바람이 부는 날이면 끊기고 통제되곤 한다. 매년 110일이나 된다.

1980년대 초까진 통통배를 7시간 넘게 타야했다. 그 전에는 돛배가 다녔다. 1801년 11월 말 나주 율정에서 동생 약용과 헤어져 유배 길에 오른 손암 정약전이 탔던 배다. 썰물과 순풍을 타고 5일 낮밤을 가야 했다. 그보다 1천여년 전, 경주인 최치원이 영암 상대포에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뱃길이기도 하다. 그가 비금 수도마을 뒷산에 파 놓은 ‘고운정’이 지금도 그대로다. 그곳에서 목을 축인 손암은 잠시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흑산은 푸르다 못해 검붉은 빛이 났다. 그 안에 희망과 생명이 있다며 자산(玆山)이라 바꿔 불렀다. 같은 바닷물을 동생도 보고 있을 거라 믿었다. 오가는 어패류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이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물도를 거쳐 10시 무렵 흑산도에 도착했다. 장도, 영산도, 대둔도 등 11개 유인도를 거느리며 4천500여명이 사는 곳이다. 문암산 깃대 아래 포구가 엄마 품같이 넉넉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철새들의 보금자리’를 알리는 푯말이 먼저 반긴다. 이를 보러 지난 주말에만 800여명이 다녀갔다. 좋은 일이다. 예리 흑산도기상대로 향했다. 공항 예정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실, 새나리, 용머리의 집터만 희미할 뿐 새들은 보이지 않는다. 파란 지붕을 얻은 소각장과 KT중계소가 주인 행세를 한다. 그 많던 밭이랑은 손길을 잃고 묵은 지 오래다.

예전 흑산도는 겨울철에 거의 갈 수 없었다. 가을 뱃길에서 “내년 봄에 봅시다”라는 인사말이 생길 정도로 바다는 거칠었다. 그렇지만 철새들은 좋아했다. 양력(揚力)을 받을 수 있고 날개를 잠시 접은 채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흑산공항 건설을 막고 있다. 2009년부터 계획을 세우고 시공회사까지 선정했건만 착공조차 못했다.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와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이 또한 못하고 있다. 연 30만명 이상이 찾는 그곳을 전국 어디서나 1시간이면 가능하게 하자는 건데, 아직은 새들이 사람보다 먼저다.

해발 120m 비행기를 닮은 대봉산이 흑산공항 예정지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을 맞은 소나무의 가지가 앙상하다. 구실잣밤나무 등 활엽수가 주류이다 보니 낙엽이 되면 더욱 황량해 보인다. 계곡이 없어 물이 귀하다보니 새들이 살기에는 어렵다. 이곳에서 태어나 60여년을 넘게 돌 하나, 나무 한그루까지 어디에 있는지 아신다는 분의 말씀이다. 풍수와 한학을 하신 선친께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비행장을 만든다며 수차례 다녀갔다는 말씀을 하셨다고도 한다. 해상영공을 선점하려는 당시 전략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공항을 위해 준비된 땅이라는 뜻이다.

흑산도에 가면 2010년 개통한 25㎞ 일주도로가 있다. 27년 걸린 열두 굽이 길을 따라 배낭기미해변, 철새박물관, 새조각공원, 박득순미술관, 흑산도아가씨노래비, 천연기념물 초령목, 쩍가지 다정큼나무, 전호뿌리, 산너머회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선 해무 위의 홍도까지 30분, 최서남단 가거도는 3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좋아야 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이젠 언제라도 가고 싶은 생각을 누구든지 실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바로 하늘 길을 여는 일이다. 50인승 비행기 9대가 30분 간격으로 오르내리는 상상을 해본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면 차라리 찻길로 연결하면 어떨까? 우리 부모·형제·자매가 사는 우리 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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