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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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철길따라 문학은 흐르고…]1. 경전선 90년, 문학을 잉태하다
일제 수탈의 아픔, 민초들의 가슴시린 삶 아련히
질곡의 세월 속에 응어리진 애환, 문학으로 승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등 서정시 들꽃처럼 피어

  • 입력날짜 : 2020. 06.25. 18:59
영벽정 지나는 경전선 열차
하루 2번 외줄기 철길을 쓰다듬으며 달리는 경전선 열차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라는 별명을 얻으며 호남 소외의 상징이 됐다.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가 능주역을 출발, 지석강 철교와 어우러진 화순 영벽정(映碧亭)을 지나고 있다./김영근 기자

기차는 늘 구름처럼 마음에 떠도는 메아리였다. 문득 아련한 기적소리를 환청으로 듣기도 한다. 기차를 처음 본 것은 1960년대 대여섯살 무렵이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기차를 타러 철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증기기관차가 요란한 기적소리와 함께 흰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를 앞질러 역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저 기차를 타야한다며 내 손목을 단단히 붙들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철교를 건너야 했다. 나는 발아래 낭떨어지처럼 깊은 허공이 무서웠지만 어머니 발걸음에 맞춰 한발 한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이 대견했던지 “우리 아들 잘 걷네”라며 용기를 주셨다.

그 후 간혹 기차를 타고 화순 도림역(간이역)에 내려서 외갓집에 가곤 했다. 그 열차가 다녔던 철길이 바로 경전선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경전선 철길이 올해 개통 90년을 맞았다. 경전선은 광주에서 삼랑진까지구간으로 1930년대 완공되어 오늘날까지 운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남 관내 광주에서 여수구간은 광려선(光麗線)으로 불리며 근 한 세기 동안 남도인의 삶의 갈피를 굽이쳐 흘러왔다.

이 철길은 곡창지대 남도를 관통하며 민초들이 피땀 흘려 가꾼 쌀, 누에, 목화 등 이른바 3백(白) 농산물을 여수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간 수탈의 통로가 됐다.

해방 이후 경전선 철길은 열악한 도로를 대신하는 주요 운송수단으로서 서민의 애환을 실어날랐다. 그러나 산업화시대에 접어들어 고속도로가 뚫리고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자동차가 급증해 철도는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고요한 능주역 플랫폼과 철로

또한 물동량 역시 산업이 발달한 경부축에 집중되는 반면, 농업 중심의 전라도와는 물류 이동이 많지 않아 경전선의 기능에도 대조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물동량이 많은 경상도 구간은 일찍이 복선전철화가 구축됐지만 광주-순천간 전라도 구간은 1930년대 개통 당시 그 모습을 유지한 채 운행횟수도 1일 2회 왕복으로 크게 줄었다.

하루 2번 외줄기 철길을 쓰다듬으며 달리는 경전선(광려선)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라는 별명을 얻으며 호남 소외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경전선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올해 정부는 경전선 전라도 구간 전철화사업을 확정함으로써 다시 힘찬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 사업은 총사업비 1조7천569억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광주에서 순천까지 총 연장 122㎞ 구간 선형을 개량하고 전철화한다.

오는 2028년 경전선 전철화 사업이 완공되면 광주에서 부산까지 소요시간이 현재 5시간42분에서 2시간24분으로 3시간18분이 단축된다.

아득한 증기기관차 시절을 거쳐 현재 디젤기관차가 이끄는 경전선의 모습은 머지않아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새 철길이 광주역에서 나주혁신도시를 거쳐 곧장 보성역으로 직선화 되면 굴곡이 심한 화순, 능주, 이양, 명봉역 등은 운명이 바뀔 것이다.

경전선은 유독 남도인의 애환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도로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터라 도회지로 나가려면 털털거리는 버스 대신 대부분 완행열차를 이용했다. 역 대합실에는 책가방을 든 학생들과 보따리를 안은 채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늘 북적거렸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안부를 묻거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함을 달랜다.
정겨움으로 가득한 능주역
90년대까지만 해도 역 대합실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늘 북적거렸으나 지금은 역무원과 간간이 능주역을 구경하려 찾아온 여행자만 모습을 보이며 한산하기만 하다. /김영근 기자

이 기획은 90년 묵은 세월의 허물을 벗고 고속전철로 새롭게 탈바꿈을 준비하는 경전선 열차와 철길을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탐색하는 여행기다.

경전선 철길과 점점이 이어진 역사(驛舍)들에는 전라도의 숨결과 서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랜 질곡의 세월 속에 응어리진 정서는 문학으로 승화돼 아련한 기적소리로 지역민의 가슴속에 메아리지고 있다.

곽재구시인의 ‘사평역에서’를 비롯 문정희 시인의 ‘명봉역’, 이수인 시인의 ‘예당기행’, 김용휴 시인의 ‘남광주에 나는 가리’ 등 경전선 전라도 구간 마다에 연관된 시들이 들꽃처럼 피어 있다. 아울러 철길과 결부된 독특한 인문 및 자연환경, 서민들의 생활양식, 승객 및 여행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철도풍경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박준수 기자(시인)



“철도는 환희와 눈물이 교차하는 공간 호남선에 관한 서사시 쓰고 싶어…”
역무원 출신 박관서 시인


별 - 박관서 시인 -

늦은 밤 열 한 시경
구슬땀 배인 입환작업 마치고
싸한 겨울바람에 앞섶을 풀어 맡긴 채
오렌지색 투광기 불빛에 젖어
선로와 선로를 지나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오다 보면
자갈밭 사이사이에 무수히
반짝이는 빛들 빛들이 있어
천천히 살펴보면 사금파리
부서진 돌멩이 구겨진 우유곽들
별 것 아닌 것들의 어깨 위에
눈부신 금가루들 저리 쏟아져 내려
따뜻한 눈빛으로 반짝거린다
어깻죽지 노곤노곤한 이 밤

34년 동안 몸담아 온 정든 철도를 떠나 4년 전부터 시작(詩作)에 정진하고 있는 역무원 출신 박관서(59) 시인을 경전선 능주역에서 만났다. 사춘기 시절 시에 눈을 뜬 그는 가정 형편상 일반고 대신 철도고에 진학, 1983년부터 기적소리와 함께 살아왔다. 하루 하루 승객들과 부딪히는 일상이지만 문학에 대한 갈망을 지울 수 없었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한 몸으로 원고지를 붙들고 시 한 줄을 토해내기 위해 밤새 몸부림쳤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역무원 생활을 하면서 알토란같은 서정시를 써내기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철도와 문학은 서로 딴 세상이란 생각을 가졌다. 노동을 하면서 시를 쓴다는 것이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난감한 일이었다.

회의감이 깊을 무렵 때마침 오랜 옥살이에서 풀려나 강연차 목포에 온 김남주 시인을 만났다. 그리고 강연중 한마디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시는 똥이다. 삶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시이다.”

삶과 밀착된 온전한 문학의 길을 찾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철도에서 시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갑갑했던 직장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가 한편씩 만들어졌고 이를 모아서 ‘철도원 일기’(2000)와 ‘기차 아래 사랑법’(2014) 2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올해 가을쯤 세 번째 시집을 상재할 예정이다.

철도에 관한 시 가운데 가장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묻자 대뜸 “한편 한편이 모두 눈물이 난다”며 애착을 드러냈다.

시인들이 철도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물었다. “철도는 근대 문명을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열차와 역은 만남과 이별, 기쁨과 환희, 눈물, 영욕이 교차하는 네트워크의 공간으로서 시적 모티브를 제공하지요.”

역무원 재직 당시와 퇴직 후 문학적 변화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재직 중에는 철도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봤다면 지금은 직접 문학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퇴직 후 3년간은 무중력 상태로 지내왔습니다. 이제는 나의 패턴이 생겨서 나만의 문학을 추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활동계획을 물었다. “한국문학에서 서사시가 빈약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 관점에서 기록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남선에 관한 서사시를 쓰고자 지금 자료를 모으는 중입니다.” /박준수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준수 기자(시인)         박준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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