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1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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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철길따라 문학은 흐르고…]3. 화순역:석탄을 나르던 철길
鑛山도시 옛 영화는 간데 없고 한적한 간이역 신세
驛 대합실에는 승객 너댓이 저마다 상념에 잠겨
석탄수송 화순선 철길 잡풀 사이 녹슨 기적소리뿐
역 지킴이 ‘탄송’·5·18 사적비 등 곳곳에 스토리

  • 입력날짜 : 2020. 07.23. 19:43
추억의 기적소리 울리며… 역 광장 앞 5·18 사적비 화순역 지킴이 ‘탄송’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순역은 지금은 현대식 건물역사로 탈바꿈하고, 북적였던 옛 모습은 아니지만 10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발 순천행 무궁화호 열차가 긴 기적소리를 울리며 화순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 /김영근 기자
안개비가 7월 남도 들판에 뽀얗게 입김을 불어넣는 날, 화순역에 갔다. 역 광장은 고요하고 플래폼 사이 선로는 안개비를 맞으며 용산발 순천행 남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합실에는 승객 너댓이 저마다의 상념에 잠겨 있었다. 70대 노인 두 분, 50대 아주머니, 그리고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 두 명이 단촐하게 앉아 곧 도착할 열차의 등장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고향이 진주라는 70대 노인은 건축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이 있는 순천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보성에 사는 50대 아주머니는 광주시내 병원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인데 집이 역으로부터 가까워 종종 열차를 이용한다고 했다. 화순에서 광주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다고 했다.

10여분 후 광주북송정역(광주송정역과는 다름)을 거쳐 온 열차가 긴 숨을 몰아쉬며 화순역에 멈춰섰다. 문이 열리자 4명의 승객이 내리고 5명이 올라탔다.

이처럼 화순역은 이날도 저마다 사연을 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화순역은 2명이 근무한다. 화순역 관내는 유인건널목이 무려 25곳이나 된다. 단 둘이서 관제와 승객업무를 겸하다 보니 열차가 들어오는 즈음에는 초긴장 상태가 된다. 한 사람은 CCTV화면을 보며 전화로 건널목 초소와 다음역에 상황을 보고하느라 분주하고, 한 사람은 승·하차 승객의 안전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열차가 떠나고 나자 다시 역은 적막해졌다.
화순역 지킴이 '탄송'
화순역 플래폼에는 ‘탄송’(炭松)이란 이름을 가진 아담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석탄을 실어나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는 의미로 명명된 것이다.

화순역에는 독특한 상징물이 하나 있다. 플래폼을 지키고 있는 아담한 소나무(盤松) 한 그루로 ‘탄송’(炭松)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화순역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 소나무의 유래가 표지판에 설명돼 있다.

“화순역은 광려선(광주-여수)이 생기면서 1928년 3월1일에 영업을 개시했다. 1934년 화순광산의 개발로 1942년 역에서 복암광업소까지 11.1㎞의 석탄선이 개통되면서 광산 도시로 엄청난 호황을 누리며 ‘거리의 똥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생겼다. 노다지였던 석탄도 석유, 가스로 대체되고 1989년에 축소산업으로 분류되면서 생산을 줄여 이곳도 한적한 역이 되고 복암선 석탄기차도 멈췄다.

북적였던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오롯이 화순역의 화려했던 역사를 기억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승강장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밑둥치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넓게 퍼지는 모습이 엎어진 소쿠리 같아서 반송(盤松)이라 한다.

여름엔 그늘을 주고 겨울에는 눈을 막아주는 고마운 화순역 지킴이라서 이름을 공모하여 탄송(炭松)이라 이름을 지었다. 탄송의 탄은 ‘탄(炭)이 기차로 실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의미와 더불어 ‘멋있어서 볼 때마다 탄(歎)성을 지른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 안내문의 설명대로 화순역과 동면 복암 사이에 석탄을 실어 나르는 화순선 철길이 있었다. 화순에는 한때 18개의 탄광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한석탄공사가 관리하는 16개 광구에서 연간 9만2천t의 석탄을 캐내고 있다.

화순탄광의 역사는 구한말 화순 갑부의 아들 박현경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일본에서 배운 토목학 지식을 활용해 1908년 흑토재 일원에서 석탄을 굴착하기 시작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운영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무연탄과 토상 흑연광산이 발견되면서 다시 활로를 찾았다. 이어 광려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1927년 당시에는 100여명의 노동자를 투입해 하루 7-8t의 석탄을 채굴했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1934년 7월 일본인이 세운 광주의 종연방직에 매각됐다. 종연방직은 광주에 세운 제사공장과 방직공장의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탄광을 매입한 것이다. 이 무렵 탄광으로부터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화순역과 복암역을 연결하는 화순선이 사설철도로 개통됐다.

화순선에는 남화순역과 장동역이라는 2개의 간이역을 뒀다. 철도 종착지인 복암역은 분기점에서 기차를 돌리지 않고 다른 차선으로 후진해서 붙이는 방식으로 기차의 앞뒤가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달라지는 방식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순선은 2014년 12월 석탄기차가 멈춘 이후 녹슨 철로만 남아 잡풀들만 우거져 있다.

화순역은 또한 5·18광주민중항쟁 현장이기도 하다. 80년 5월 전남도청 앞 광장의 비보를 전해들은 화순군민들이 역광장에 모여 투쟁의지를 불태웠을 뿐 아니라 시민군이 최초로 무장한 곳이다. 시민군은 역광장 입구에 위치한 화순역전파출소에서 총기 750여정, 실탄 600여발을 입수해 계엄군과 맞서 싸웠다.
역 광장 앞 5·18 사적비
화순역 광장에 1980년 5·18 당시 시민군이 항쟁의지를 불태운 그날을 기리는 대리석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역 광장 가로수 아래에는 그날을 기리는 까만 대리석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현장의 모습을 전하는 지도와 그림, 그리고 김준태 시인의 시 ‘화순 그대 영원한 참세상의 고향이여’가 새겨져 있다.

화순역은 10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종현 시인의 시가 그 편린을 잔잔히 펼쳐놓는다.

“어릴 적, 멀구슬나무 덩그라니/역전 광장에/구슬치기 땅따먹기 하는 아이들/ 손등 연탄때 시커멓도록 해질녘/ 올 사람도 없는 역 대합실 기웃거리다가/기적소리 빨간 철다리로 울려나는가”( ‘화순역’ 제3연)

/박준수 기자(시인)


정윤천 시인
[인터뷰] 정윤천 시인 “열차는 곡선의 미학, 그 자체로 시적 존재”
개미진 전라도 사투리로 순정어린 고향 풍속 노래

정윤천(61) 시인은 전라도 토종 시인이다. 화순이 고향인 그는 구수하고 게미진 전라도 사투리로 튼실한 자신만의 시밭을 일궈왔다. 시의 화두는 순정어린 고향의 풍속이지만, 그 속에는 풍자와 해학이 녹아있어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흙먼지 자욱한 고샅길에서, 혹은 쑥배미 어느 초가에서 목격하거나 엿들은 이야기들을 사투리에 리듬을 살려 결곱게 빚어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겉은 떫은 맛이지만 되새김질해보면 깊은 속맛이 우러난다.

첫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1993년, 실천문학사)에 수록된 초창기 그의 시들을 보면 풋풋하면서도 아궁이 연기같은 매캐한 정감을 피워 올린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고향집은 화순읍 만연리다. 화순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종종 화순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기찻길을 배회하기도 하고 부근 냇가에 풍덩 들어가 멱을 감기도 했다.

첫 시집에는 몇 편의 기찻길 풍경이 판화처럼 어둑한 질감으로 새겨져 있다.

“불 내린 역사의 적막 곁으로 기차는 오지 않았지/누군가 일구다 떠난 빈집의 텃밭가에는/절로 자란 마늘꽃만 몇 잎 허옇게 머리를 풀고/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하행의 밤차 한 대가/머언 하행 속으로 사라져 이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기차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았지.”(시 ‘폐역’ 후반부)

뿐만 아니라 이 시집의 시들은 ‘화순역에서’, ‘막차’ 등 고적한 시골역 풍경을 인화시킨다. 그만큼 그 당시 열차는 아련한 기적소리만큼이나 민초들의 삶에 큰 울림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정 시인을 화순역에서 만나 그의 문학과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그는 먼저 열차의 이미지에 관해 말문을 열었다. “열차는 매우 한국적이고 교훈적인 존재입니다. 직선을 추구하기보다는 곡선의 길을 갑니다. 산이 가로막고 있으면 이를 넘지 않고 돌아갑니다. 들이나 강가를 지나기도 하고 미루나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속도의 편리함보다는 낭만을 즐깁니다. 멀리 갈 때 열차를 타는데 거기에는 호기심과 환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심미성이 바로 열차가 있는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 그간의 문학적 변이과정을 물어봤다. “초기에는 문학성보다는 목적성에 치중했습니다. 1990년대 당시 억눌린 시대상황에 맞서 사회변혁을 주창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에는 자연과 사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삶의 부피’에 다가서고자 한 것이지요.”

그는 지금껏 여섯권의 시집을 냈다. 이 가운데 ‘구석’(2004)을 가장 애착이 가는 시집으로 올렸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구석’은 선운사 아래 마을에서 6년간 머물며 호흡한 북도(전라북도)의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시로써 개념을 갱신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이때 가장 시다운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한편, 정 시인은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와 이듬해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이후 중앙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돌연 시작(詩作)을 중단하고 수년간 선운사 사하촌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숨 고르기를 마친 정 시인은 2004년 ‘구석’이란 시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또한 지난해 지리산문학상 수상 기념 ‘발해로 가는 저녁’이란 시집을 냈다. 다음 제7시집 준비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어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는 현재 화순 도곡에서 카페 ‘첫눈’을 운영하며 3천평의 부지에 작은도서관, 전시장, 강의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조성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화순역에서 -정 윤 천-

깜박이는 등불 어쩌고 까불거리지 말아라
행여 하행선 지나치는 고적한 차창 너머로
쓰러질 듯이 엉버틴 퀴퀴한 굴뚝가에
환장하게 둥글디둥근 단호박이라도 두어 뎅이
아프게 영글었거든
거기 낡은 집 어둔 처마귀 곰삭은 늙은 두 양주
쪼그랑 깊은 가슴속 먼저 생각키거라
떨어져 가는 차운 고샅 어디서
캄캄한 개 짖는 소리 컥컥컥 귀에 젖거든
그 소리도 하마 먼산 승냥이 울음소리로
여겨 들어라
푹푹대며 가는 경전선 끄트머리 어디
꼭이 화순역이 아니더라도
행여 비껴가는 하행선 눈매 시린 차창 너머로
엎드린 집들의 풍경 가득 일몰이 깊거든
거기 더 이상 그리움이 어쩌고 찝쩍거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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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수 기자(시인)         박준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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