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6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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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의 '문화터치']빛고을시민문화관, 살사와 탱고로 힐링 타임을…
광주문화재단 빛고을시민문화관장

  • 입력날짜 : 2020. 08.13. 18:21
하늘이 뚫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주룩주룩 내릴 수는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엄청난 양이 쏟아졌다.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를 보며 공포를 느꼈다. 수해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옛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화재보다 수재가 더 무섭다고 했던, 불난 자리는 있지만 물이 휩쓴 자리는 아예 없다고 했던 말이 딱 맞았다. 50일을 훌쩍 넘겨버린 마라톤 장마 끝에 하늘은 비를 냅다 쏟아 부었고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를 휩쓴 것은 물뿐이 아니다. 코로나가 아직 상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심장은 뛰고 있어도 편하고 자유롭지가 않다. 옭매이는 이 심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가 겪는 짜들어진 감정이다.

이런 가운데 준비했다. 이번 주 내내 광주는 정열의 라틴음악과 춤으로 뒤덮였다. 발원지는 빛고을시민문화관이다. 월요일 ‘살사의 밤’을 시작으로 매일 플라멩코, 탱고, 라틴재즈, 레게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날마다 다른 라틴음악의 리듬으로 신나고 유쾌한 밤을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 행사는 광주문화재단 빛고을시민문화관 10주년 개관공연으로 기획되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집중호우와 코로나로 피해가 잇따라 속이 속이 아닌데 무슨 음악축제냐고 하실 이가 분명히 있을거다. 그러나 우리는 꿋꿋하게 당초 계획했던 것을 그대로 연출했다. 음악과 춤, 그리고 예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생의 에너지를 주는 원동력이기에. 풍악은 여유로운 자가 하는 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잃지 않아야 할 보석이기에.

구슬프면서도 애절한, 그리고 격렬한 탕고가 흘러나왔다. 셋째날 김아람이 이끄는 ‘탕고의 순간’ 연주회였다. 김아람은 광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났다가 탕고에 반해 눌러앉은 탕고 전문 뮤지션이다. 그가 반도네온 연주가 고상지와 첼로 임수연, 피아노 이현진과 함께 ‘탕고의 순간’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고 라틴음악여행의 세 번째 밤을 장식한 것이다. 때론 바이올린 통을 긁거나 튕기면서 타악의 느낌을 자아내고, 갑자기 뛰어나오는 반도네온의 강렬한 액세트는 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반영해내기에 충분했다. 모두 탕고의 세계로 빨려들어갔다.

플랑멩코, 살사, 라틴재즈 모두가 ‘지금, 여기’에서 처한 고통을 가만가만 위로해주었다. 신들린 듯 저 바닥에서부터 나오는 플라멩코의 칸타오라(여성가수를 일컫는 말)은 노래만으로도 무대를 휘어잡았다. 거기에 객석은 숨을 죽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런게 힐링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격렬한 리듬으로 갈 때는 객석도 들썩인다. 칸타오라 나엠의 노래에 맞춰 추는 댄서의 플라멩코는 집시들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 우리도 저렇게 자유롭고 싶은데. 댄서의 몸놀림에 우리들의 간절한 희망이 실린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 아니 마음부림이었다. 앙코르로 들려주는 나엠의 ‘베사메무쵸’는 그녀 특유의 목소리에 힘입어 뭔가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하루하루 공연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거의 비슷한 이야길 했다. 오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고. 사실이다. 예술은 좌절하는 인간과 절망에 빠진 인간에게 힘을 주는 매개체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재난에 기운이 빠지고 쳐져 있는 우리들에게 영혼을 일깨우고 정신의 템포를 되살려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믿는다. 구슬프면서도 에너지 강한 정열의 라틴음악, 재난 직후 시민들에게 안온한 힐링의 시간을 주었다. 라틴음악의 여행은 금요일 ‘레게의 밤’을 끝으로 올해 막을 내린다. 예술이 가진 힘이 공포에 떤 인간을 어떻게 강한 의지에 차게 했는지를 우리는 역사에서 보았다. 유럽 흑사병이 휩쓸고 간 뒤끝에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예술의 힘을 믿으며 내년에도 ‘한여름의 세계음악여행’으로 시민과 만날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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