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4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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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박물관’을 만들자
박준수의 청담직필 본사 사장·경영학 박사

  • 입력날짜 : 2020. 09.07. 18:48
광주에 재개발 광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광주 시내 오래된 곳이면 어김없이 기존 주택들을 허물고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특히 광주천을 따라 거대한 고층 아파트들이 솟구치면서 무등산 조망권이 시나브로 좁아지고 있다. 올 6월말 기준 공사 중인 재개발·재건축 현장이 무려 50개소에 달한다. 광주의 공동주택 비율은 2019년 현재 65.2%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대의 변천으로 주택문화가 어느 새 아파트 일색으로 바뀌었다.

아파트 주도의 재개발은 한편으로는 무질서하고 노후화된 주택단지를 쾌적하고 현대적인 면모로 단장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생성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송두리째 소멸시켜버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재생사업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 실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 결과 그 많던 단독주택과 골목길이 이제 추억 속으로 속속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회색빛 고층아파트가 우뚝 솟아 낯선 풍경을 드리우고 있다. 급격히 밀려드는 거대한 아파트 숲에 의해 광주만의 색깔과 정체성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광주 토박이인 필자에게는 몇 개의 골목길 풍경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1970년대 북구 임동 옛 성요한병원 건너편 주택가에는 독특한 구조의 집단가옥이 있었다. 큰 도로에서 기다란 골목을 지나 꺾어지는 지점에 이르면 이 집단가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10여 채의 집들이 담장도 없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대부분 기와집이었는데 게 중에는 공장건물도 있고 일반가정집도 있었다. 또한 어떤 집은 연못이 딸린 정원도 있었다. 마치 어느 시골마을처럼 집들이 서로 서로 속살을 훤히 내비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임동 집단가옥 특이한 구조 인상적

그런데 이 집단가옥의 주인은 비록 나이는 젊었지만 성주(城主)처럼 행세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도 그를 깍듯이 대했으며, 그 역시나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감독관인 양 참견했다.

당시 이곳에는 호마이카 가구공장이 있었는데 이전에 여자구두 하이힐 나무굽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공장 옆 건물 역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실을 짜는 공장이 있었는데 여공들이 많았다. 그래서 서로 담벼락에 구멍을 뚫고 직원들끼리 몰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구공장 총각과 실공장 처녀가 마음이 통해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 당시는 어떻게 그런 특이한 집단가옥이 생겨났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흥미롭고 내막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인근 방직공장의 사택이었거나 그와 연관된 하청공장을 중심으로 한 집단거주지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또 하나 특이한 골목길은 옛 중앙로 길이다. 중앙로 확장전 모습은 충장파출소에서 중앙초교까지 기다랗게 상가가 늘어서 있었는데 앞은 충장로를 바라보는 넓은 길이 있었고, 뒤로 좁은 골목길이 형성되었다. 넓은 길로는 마차와 차들이 지나다니고 행인들은 주로 뒷골목을 이용했다. 이러한 특이한 이중 도로구조가 형성된 것은 원래 광주읍성 성벽을 따라 상가가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성벽이 헐리고 그 자리에 도로가 개설되면서 자연스레 상가 양편에 도로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도로 양편으로는 단층 목조 상가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상인들이 길가에 앉아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만약 중앙로가 확장되지 않고 과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면 독특한 관광명소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시간의 흔적을 카페와 미술관으로

양동시장 맞은편 광주천변과 인접한 주택가는 19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광주공원 아래에 있던 사정시장이 공설운동장이던 천정(양동)시장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레 이주민들이 몰려들어 생겨난 마을이다. 지금도 좁은 골목길을 따라 20-30평의 집들이 올망졸망 처마를 맞대고 촘촘히 박혀있다. 이곳도 조만간 철거돼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필자는 이곳 일부를 광주시가 매입해 ‘골목길 박물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보존 상태가 좋은 집은 원형을 보존해 카페와 작은미술관 등으로 개조하고 일부 노후된 가옥은 지붕을 뜯어내 정원으로 가꾸면 이색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하면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꾸밀 수 있다. 그러면 양림동과 더불어 광주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침체된 양동시장을 활성화하는데도 상당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무작정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하는 안목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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