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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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역사·문화의 보고…명품 공원으로 우뚝 서야
[광주공원 어떻게 가꿔야 하나] <1>프롤로그
일제강점기 성거산에 광주 최초 공원 들어서
역사·문화·관광자원 품어 명소화 자질 충분
市·지자체 보유자원 활용 소극적 자세 아쉬움

  • 입력날짜 : 2020. 09.08. 19:49
70-80년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 받으면서 애틋한 추억이 깃든 장소인 ‘광주공원’이 문화자원과 연계해 관광객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남구 구동 광주공원./광주매일신문 DB
광주공원에는 광주향교를 비롯, 충혼탑과 4·19영령 추모비, 보물 제109호인 성거사지 오층석탑 등 소중한 광주의 역사적 자원들이 산재해 있다. 이에 광주문화재단, 빛고을시민문화관과 최근 청년창업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민회관 등의 문화자원과 연계해 관광객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심 속 광주공원이 근대 역사·문화자원을 통해 광주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자 명품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과 향후 발전 방향을 기획 연재 시리즈를 통해 제언한다. /편집자 註

광주 남구 구동에 자리하고 있는 ‘광주공원’은 광주 최초의 공원이다. 70-80년대 사직공원과 더불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각광 받았던 곳이다. 대형 결혼식장이자 공연장, 영화관 등으로 사용됐던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인 시민회관부터 박물관과 도서관, 어린이 놀이터 등이 광주공원 인근에 위치해 있어 광주시민의 애틋한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거북 모양의 성거산 자락에 위치한 광주공원은 일제강점기였던 1913년 일본인들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됐다. 오늘날 이곳을 ‘광주공원’이라고 부르지만, 일제는 성거산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일본의 개국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위패를 봉안한 광주신사로 세웠다. 현재 광주공원 정상부에 세워진 충혼탑 자리다.

일본인 번영회는 민둥산이었던 이곳에 정상 9천600여평을 광장으로 닦아 신사를 짓고 천변에서 광장에 이르는 층계 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면 도착하는 입구에 도리이(とりい·신사 입구에 세운 기둥문)를 세우고 오늘날 충혼탑 자리에 2개 동의 신사를 지었다.

당시 광주공원은 사실상 일본인들의 차지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1929년 11월3일 일본 학생들이 참배한 곳도 광주공원의 신사였으며, 신사의 제사 일이거나 벚꽃 축제날이 되면 광주공원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해방 직후 분노한 시민들은 광주공원 신사를 가장 먼저 헐었다. 이후 1963년 그 자리에 22m 높이의 충혼탑을 세웠다. 충혼탑은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광주·전남의 전몰 호국 용사 1만5천867명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광주공원이 일제의 잔재만으로 기억되는 곳은 아니다. 광주향교는 기우만 의병부대의 집결지로서 한말 최대 의병 항쟁지로의 역할을 했으며, 광주공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훈련장이자 시민군 편성지로 활용됐다. 그 흔적은 현재 공원 입구 계단을 오르다 발견할 수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제의 잔재를 털어낸 후 광주공원엔 많은 시설물들이 생겨났다. 시립도서관, 전남도립박물관, 구동체육관, 시민회관, 무진회관, 신광교회, 4·19문화원, 광주국악원 등이 들어섰으며, 충혼탑을 비롯해 4·19영령추모비, 의병장심남일순절비, 5·18사적비, 영랑과 용아 시비 등이 세워졌다.

이처럼 광주공원은 근대 역사·문화의 보고로서 관광 명소로서 거듭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광주공원이 보유한 자원에 비해 사실상 시민들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지속적으로 민간 주도로 의미와 가치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을 뿐, 광주시나 각 지자체는 광주공원의 관광 명소화에 대해 다소 소홀하게 접근해 와 아쉬운 게 현실이다.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구용기 전 대표는 “광주공원이 지닌 역사적 가치에 비해 시나 지자체에선 이곳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랫동안 방치해 온 게 사실”이라며 “선거철에 몇몇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활용됐을 뿐 실질적으로 발전 가능성을 논하거나 역사적 고증 활동을 진행한 일 또한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구 전 대표는 “한 예로 시민모임 측에서 201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윤웅렬·이근호 선정비를 제거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지만, 4년이 지난 2019년에서야 단죄비를 설치할 수 있었다”며 “이같은 사례들을 반면교사 해 광주공원의 가치 제고에 역사적 경각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겨울 기자


정겨울 기자         정겨울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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