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6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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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만명의 모지리들
김진수
본사 서울취재본부장

  • 입력날짜 : 2020. 09.15. 19:25
미국 국민들을 위해 미국 백악관이 마련한 온라인 청원게시판(We the People)이 있다. ‘위 더 피플’은 2011년 9월22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만들었으며 국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다양한 탄원을 올리는 곳이다. 청원 기한은 30일로 서명자 수가 10만명 이상일 때 서면으로 답변을 내놓게 된다. 우리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최근 그 ‘위 더 피플’에 “미국에 중국 바이러스를 밀수하여 퍼트리고 한미안보를 위협하는 문재인을 구속 기소하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한국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라고 미국 백악관에 청원을 넣은 청원자의 한심함을 탓하는 것도 잠시, 말도 안 되는 그 청원에 서명한 사람 수가 85만명을 넘은 것으로 확인돼 우릴 아연실색케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10만명 이상이 청원을 하면 답변하게 되어있는 홈페이지에 청원인이 85만명을 넘었다. 백악관의 관할도 아니고 답변대상도 아닌 사안”이라며 “한국 극우세력들의 청원이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처음에는 분노가, 그다음에는 비통함에 전신이 와들와들 떨렸다”며 “청원 사유의 황당함은 제쳐두고 엄연히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미국 대통령에게 구속 기소 해달라고 읍소하는 작태에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고 심경을 적었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매국을 넘어 노예근성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나”라며 “백악관에 청원을 올린 극우세력이야말로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에 칼을 겨눈 21세기판 이완용”이라고 날을 세웠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 매국적 청원은 극우 성향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 모라는 자가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 85만명은 누구일까? 확인할 길은 없으나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따른 방역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8·15 광화문광장 집회로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이른바 ‘태극기 훼손부대’, 목사 옷을 입고 노골적으로 정치 행위를 하는 이상한 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상에서 반찬투정 해대는 ‘국민밉상’ 보수 유투버들과 그들이 올린 영상을 주구장창 퍼 나르고 있는 자들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민족이 어떻게 되든 말든, 예컨대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부의 방역지침을 무시해 국민들의 건강이 위험해지면 질수록 오히려 ‘정권 되찾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무뇌적 일부 야당들,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친미·친일세력에 빌붙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린 보수언론 관계자들과 그 떨거지들도 일부 포함돼 있을 것이다.

군사 분야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대미의존도를 줄여 진정한 자주 독립국가로서의 체통을 살리고자 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등 민주당 계열 정권의 노력을 반미·반일이라면서 반미·반일은 결국 친북이라고 공격했던 자들,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몇 채씩 갖고 있어 시세차익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있으면서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씹어대느라 입이 부르튼 자들, 심지어 국내에서 갖은 편법과 불법으로 만든 ‘검은 돈’ 챙겨, 자신과 제 가족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미국으로 달아난 자들도 일부 서명했을 것이다.

매국적 백악관 청원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구세력들의 일련의 준동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보인다. 이는 동시에 어떤 기시감을 던져주고 있어 소름이 돋는다.

경제건, 정치건, 외교건 뭐든지 잘못 돌아가는 것은 대통령 탓으로 돌려, 전 국민이 한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는 것처럼 만들었던 그 때의 개수작들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눈물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굳이 5·18 민중항쟁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호남은 전국의 민주시민들과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정권의 출범과 성장은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있었기에, “빨갱이 문재인은 하야하라”는 수구세력들의 목소리가 백주대낮에 자유롭다.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들이 목숨을 걸고 군사 독재정권과 싸우지 않았던들, 불법감금 고문 등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했던 기무사·안기부 등의 정치사찰 기관들을 없애지 않았던들 결코 볼 수 없었을 장면인 것이다.

추미애 장관이 야당 국회의원이던 시절, 아들의 병가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뉴스들도 언론의 침소봉대 공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20대 유권자의 지지도가 몇 % 낮아졌다고 해서 “젊은 층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단언하는 여론조사 해설에도 속지 말아야 한다.

실제 추 장관이 잘못했는지, 젊은 층이 지지를 철회했는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수 있다. 그자들이 쳐대는 북과 꽹과리에 귀가 멀어 진실의 목소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작금의 현실은 우리에게, 난무하는 각종 뉴스 중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냉철함, 무언가 일이 다 뒤집어진 듯 언론에서 떠들어대더라도 사실이 확실해 질 때까지 차분하게 지켜봐야 하는 진중함을 요구하고 있다. 매국 세력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고, 우리가 피로 지켜온 신념과 가치를 강탈당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나저나, 저 85만명의 모지리들은 어째야 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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