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9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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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원 어떻게 가꿔야 하나](3)심남일 의병장 순절비와 광주공원 계단
숭고한 호국·애국정신 깃든 역사·정의의 터전
의병장 심남일 순절비·민주화 영령 추모 시설 존재
일제강점기 광주신사 흔적 광주공원 계단도 존치
친일잔재 청산 넘어 새 역사·문화적 가치 만들어야

  • 입력날짜 : 2020. 09.16. 20:38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일본 천황에 신사참배하기 위해 ‘광주신사’로 올라가던 광주공원 입구의 일제식민통치 잔재물인 계단./김영근 기자
광주공원 입구에서 현충탑까지 오르기까지는 두 번의 긴 계단을 거쳐야 한다. 계단을 오르다보면 중간마다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계단은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일본 천황에 신사참배하기 위해 ‘광주신사’로 올라가던 곳이었다.

일본은 천황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신사(神社)를 세우고 참배를 강요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빼앗기 위한 민족동화정책이자 군국주의적 침략정책이었다.

광주신사는 지금의 현충탑 자리에 세워졌다.

신사규칙 개정으로 1936년에는 전라남도가 신사를 관할, 운영비를 부담했다. 1942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일체의 관리 비용을 맡게 되면서 국폐신사로 격상됐다. 오늘날 광주공원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당시 정비된 것이다.

광복을 맞이한 광주시민들은 성거산(현 광주공원) 정상에 세워진 신사를 즉시 허물었다. 하지만 광주공원 입구 계단과 중앙광장에서 현충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대로 남았다.

2018년 7월부터 시작된 광주시의 친일잔재 전수조사를 통해 이 계단은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 잔재물로 확인됐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이곳에는 잔재물을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단죄문이 세워졌다.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광주공원 충혼탑에서 성거사지 오층 석탑 쪽으로 가는 오른편에는 ‘의병장 남일 심공 순절비’(義兵將南一沈公殉節碑)가 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전과를 거두고 순국한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

순절비는 구한말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공을 세우고 순국한 의병장 ‘심남일’의 뜻과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72년 건립됐다. 현재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광주공원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심남일(1871-1910)의 본명은 수택이며 ‘남일’은 그의 호다. 호남 제일의 의병장이 되겠다는 뜻이 담겼다. 그는 전해산, 안규홍과 더불어 전남 3대 의병장으로 꼽힌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세고 사서삼경에 능통했던 심남일은 서당 훈장과 향교의 전교를 지냈으며 농사를 짓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의병을 일으켜 전라남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던 ‘호남창의회맹소’에 가담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장성, 영광, 함평 등에서 일본군과 항전해 왜구를 토벌했으며 1909년까지 강진, 남평 영산포, 장흥, 영암, 나주 등지 전투에서도 전과를 올렸다.

1909년 5월에는 안규홍 의병진과 합세해 일본군을 섬멸코자 했으나 의병해산 조칙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화순 능주 풍치바위굴 속에서 신병을 치료하던 중 일본 경찰의 습격으로 체포돼 1910년 10월4일 대구형무소에서 39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07년 의병으로 출정하며 쓴 그의 시에는 호국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초야의 서생이 갑옷을 떨쳐입고 / 말을 타고 남도를 바람처럼 달리리 / 만약에 왜놈을 소탕하지 못한다면 / 맹세코 모래밭에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

함평 출신인 심남일의 순절비가 광주공원에 세워진 배경에도 눈길이 간다.

심남일은 1962년 건국훈장독립장에 추서돼 국가 유공자가 됐다. 이에 유족인 손자며느리가 정부에서 받은 연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광주향교로 가져온다. 이에 감동을 받은 향교 유림들이 돈을 보태 순절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순절비는 고향 함평을 바라보고 서 있다.

광주공원은 의병장 남일 심공 순절비를 비롯, 호국·민주화 영령 추모 시설이 마련돼 있는 등 역사적 의의가 깊은 곳이지만, 광주신사 계단 등의 친일잔재 또한 남아 있다.

이처럼 광주의 명암을 고스란히 간직한 광주공원을 새로운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일잔재 청산을 넘어 올바른 역사관을 세울 수 있는 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1909년 일본과의 의병 전투 47.3%가 호남지역에서 일어났고, 참여 의병의 60%가 호남 사람들이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는 우리 지역의 정신이자 정체성인 항일 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대 의병 항전지인 광주공원은 의향 정신을 되새기는 소중한 자원이다”며 “친일 잔재물을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등 대표적인 역사교육현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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