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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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원 어떻게 가꿔야 하나](4)4·19혁명 추모비와 5·18 사적비
항일운동부터 5·18까지…의로운 광주정신 함축
반독재 저항 민주화 성지·시민군 결집 장소
추모비·동상 등 광주정신 상징물 설치되기도
공원 본기능 개발 고려…장소 역사성 살려야

  • 입력날짜 : 2020. 09.22. 18:15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대항하기 위해 사격연습 훈련장이자 시민군 편성지였던 광주공원 입구에 5·18민중항쟁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김영근 기자
광주공원은 일제의 잔재만이 남아 있는 곳이 아닌 주권을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오늘날 이 일대는 항일운동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는 ‘광주정신’의 의로움이 함축된 장소로 불리운다.

과거 일제의 잔재를 헐어낸 후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흘린 피와 땀을 기리는 상징적인 시설물들이 공원 일대에 들어섰다. 4·19의거 영령 추모비와 5·18 사적비, 류동운 열사 추모비 등이다.

공원 일대에 위치한 향교에서는 의병의거가 있었고, 지금의 현충탑 자리에서 이뤄졌던 천황 생일 신사참배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현대에 들어서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까지 부당한 권력에 항거했던 역사적 사실과 함께 1천년 광주인의 정신이 집약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광주는 서울·마산과 더불어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전국 최초의 항쟁지이기도 하다.

시민회관 앞 공원 운동장에서 충혼탑으로 오르기 직전 왼편에는 ‘4·19의거 영령 추모비’와 ‘4·19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영령추모비는 광주 4·19혁명을 기리며 당시 목숨을 바친 7명의 영령을 추모하고 그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의거 2주년인 1962년 이곳에 세워졌다. 추모비 중앙에는 4·19가 양각돼 있고, 오른쪽에는 혁명 당시의 시위 모습이, 왼쪽에는 조지훈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시민들은 광주 전역에 위치한 4·19의 발자취를 따라 광주공원에 이르고 있다.
최후까지 도청을 지키다 끝내 산화한 류동운 열사의 추모비.

광주시는 선대의 희생정신과 민주정신을 후대에 계승·발전시키고자 추모비 옆에 4·19혁명 기념탑을 내년 초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또 광주공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훈련장이자 시민군 편성지였다.

이 일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공동체 역사의 성지로 광주시민의 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특히 광장은 5·18민중항쟁 사적지 20호로 등록돼 관련 사적비가 광주공원에서 시민회관으로 오르는 일제 식민지 잔재물 광주신사 계단의 오른편에 설치돼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1980년 5월 당시 이 일대는 시민들이 계엄군의 학살에 맞서 시민군을 편성하고 훈련했던 곳이었다.

5월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나오자, 오후 4시께 시민들은 자위 수단으로 인근 시·군 지역에서 예비군용 총과 탄약 등을 가져와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술 훈련까지 했다. 5월27일 이곳에서도 시민군과 계엄군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처음부터 시민군은 일정한 지휘체계에 따라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광주공원 일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지도부가 결성, 5월24일 도청으로 통합되는 순간까지 광주 시내 순찰과 차량 등록 등 일시적이나마 치안 관련 업무가 이뤄졌던 곳이었다.

사적비에는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으며, 5·18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는 ‘오월길’의 스무번째 장소로 지정돼 있다.

이 밖에 광주공원 일대에는 광주 민주주의를 위해 계엄군에 끝까지 맞섰던 열사의 추모비와 시민군을 대표할 만한 상징성을 가진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1980년 5월 당시에는 수많은 광주시민과 열사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현재 어린이 현장탑이 서 있는 곳 아래(광주공원에서 향교로 넘어가는 언덕 인근)에 있었던 신광성결교회 목사의 아들 류동운(당시 21세) 열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류 열사는 ‘이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5월27일 최후까지 도청을 지키다 끝내 산화했다. 이에 그를 기리는 추모비가 지난 2007년 광주의 5월을 상징하는 ‘5’자(字) 모양으로 교회 터 한 켠에 세워졌다.

당시엔 교회의 사택과 광주 시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지만, 현재는 시유지로서 교회의 흔적은 없어지고, 무성한 풀숲에 덩그러니 놓여진 상태다.

또 5·18 사적비가 놓인 광주계단 하단에는 ‘김군 동상’이 놓여 있다.

5·18 시민군 김군은 1980년 5월24일 광주 남구 송암·진월동에서 자행된 계엄군 11공수특전여단의 양민학살에 맞서 지역주민과 동료 시민군의 생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계엄군에게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에 김군 동상 건립추진위는 올해 5·18 4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고, 시민군을 최초로 결성했던 광주공원의 상징성에 맞춰 시민군들을 함께 추모하는 의미로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류동운 열사 추모비와 김군 동상의 경우 광주공원 일대가 시유지인 만큼 관리 주체와 이전문제 등을 놓고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역사의 현장성을 확인시킬 수 있는 설치물들에 대해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주저 없이 나섰던 의로운 광주정신은 광주공원에서 발현돼 장소의 의미가 깊다”면서 “이 곳에 깃든 의로운 역사를 시민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관련 설치물 관리에 대해 행정차원에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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