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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화의 '5월이야기']5·18 증언과 기록을 소중히 해야 할 이유

  • 입력날짜 : 2020. 10.15. 17:38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연구실장 국제학박사
1961년 이스라엘에서 세상의 이목을 끈 재판이 열렸다. 아우슈비츠수용소 소장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었다. 아우슈비츠가 해방되고 16년이 지나고서였다.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아이히만은 이웃과 가족에게 착한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가 세간의 관심이 되었다. 그때 한나 아렌트는 재판장에 찾아가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글을 남긴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에 주목했다. 이후 홀로코스트 관련 연구는 문서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이동했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패러다임적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얼마 전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한 결심공판이 진행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채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판결로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주길 바란다”고 구형의 이유를 밝혔다. 결심공판에서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역사의 상대주의, 실증주의로 정당화해선 안 된다”며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을 디딤돌로 우리 사회는 부정의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증언과 기록 등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애쓰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이를 망각하거나 침묵하는 이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우리는 겸허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올해 초 독일에서 15세 전후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약 40%의 청소년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했다. 수백만 유태인들에게 커다란 상흔이 된 아우슈비츠는 불과 7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망각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제 증언할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 증언할 세대가 없어지고 난 다음 과거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증언과 기록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래야 후세에게 그 사건에 대한 올바른 ‘기억’과 정당한 ‘애도’가 뒤따르지 않겠는가.

지난 7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하 ‘기록관’)에서 ‘기억과 권력 그리고 정의’라는 주제로 정신포럼이 있었다. ‘기억의 독점’과 ‘권력의 위험성’을 짚은데 이어, 정의로운 기억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했다. 발제자 윤택림(한국구술사연구소 소장)은 “한국 사회에서 근현대사 관련 기억 투쟁의 중심에는 구술사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파행과 굴곡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는 기록의 부재 속에서 구술 증언을 통한 진상 규명이 필요했다. 1980년대 말 사회적 정치적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구술사는 1990년대 학계로 진출했고, 2000년대를 거쳐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수단이 됐다. 윤소장은 이어 “기억 투쟁을 통해 공식적 역사에 편입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5·18 기억”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5·18 기억은 진상 규명과 과거 청산을 지향하는 저항 기억으로 출발해 광주를 중심으로 5·18 기억공동체를 형성했다. 구술 증언으로 시작된 기억공동체가 구술 아카이브 구축을 통하여 다양성을 담보하는 기록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윤 소장은 제안했다. 또 공공역사로 시작된 5·18 기억이 지역화와 특권화에서 벗어나서 국가폭력에 맞서는 기억공동체로서 다른 기억공동체들과의 연대 도모도 제시했다.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대체로 힘 있는 가해자가 역사적 서사와 관련 문서를 독점한다. 그에 반해 힘없는 희생자는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을 할 뿐이다. 기억연구가 진행돼야 할 이유다. ‘기억 연구’, ‘기억 전쟁’이라는 말이 아직은 생소하다. 임지현 교수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역사가들만이 기억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억연구는 다른 게 아니다.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응답해 죽은 자의 억울함을 산 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이다.

역사적 서사에서 빠진 역사의 수레바퀴 한 축을 기억과 증언이 채워줘야 한다. 우리가 기억과 증언, 그리고 그에 따른 기록이 뒤따라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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