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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詩] 수장 - 검정고무신 / 김선태
김선태

  • 입력날짜 : 2020. 11.29. 18:06
김선태
서해바다에 검정고무신 하나 떠가신다. 무거운 주인의 발을 벗어버리고 오랜 동고동락의 짝과도 헤어져 망망대해 일엽편주로 가뿐히 떠가신다. 걷지 않고 두둥실 파도 타고 떠가신다. 어화 벗님네야 너울너울 춤추며 떠가신다. 서해바다에 다 닳은 검정고무신 하나 저무신다. 이윽고 일몰의 수평선 너머로 깜박, 묻히신다.
오, 저 아름다운 수장(水葬),
길을 버리고 길을 취했구나.
(시집 ‘살구꽃이 돌이왔다’, 창비·2009)


[시의 눈]

참, 우리에게는 잊어버렸지만 검정고무신 시대가 있었지요. 마른 땅에선 벗어들고 궂은 땅에선 신고 가던 아까운 신 말이지요. 냇물이나 강에 송사리나 다슬기를 잡다가 그만 고무신을 잃은 적도 있지요. 시의 주인도 고무신 한 짝을 잃었군요. 그렇듯 신짝을 잃고 오면 집엔 호된 꾸지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헌데, 여기선 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노동으로 무거워진 주인의 발에서 빠져 나와 홀가분하게 두둥실 파도를 타고 그가 떠가십니다. ‘어화 벗님네야’를 부르며 춤추듯 떠나가십니다. 고무신에게 베푸는 ‘떠가신다’란 말이 살갑게도 들립니다. 옛날 신던 ‘검정고무신’을 서해 바다로 소한하여 고통의 걸음 대신 만선의 고깃배와 환치시킵니다. 일몰과 함께 떠가는 고무신배가 저무시는 순간 화자는 ‘수장’을 연유해냅니다. 고무신배는 살아온 낡은 길을 버리고 새날 속으로 드는 길을 취합니다. 이 길을 택(取)하는 건 다음 날에 흥(醉)을 돋궈내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김선태 시인은 강진 출생으로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199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간이역’(1997), ‘그늘의 깊이’(2014), ‘햇살택배’(2018) 등이 있습니다. 현재 목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자연에 스며든 서정의 그늘로부터 남도의 정감을 돋구어내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노창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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