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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알프스가 아니다 / 주홍

  • 입력날짜 : 2020. 12.03. 18:58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아티스트
지리산을 알프스처럼 열차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산악열차를 놓는 산악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산림휴향관광진흥정책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다.

지리산은 지리산이다. 알프스는 알프스다. 알프스 가고 싶으면 비행기 타고 가고, 지리산은 배낭 메고 걸어서 한 걸음씩 오르는 산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한걸음 모델’ 사업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와 이해 사업자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한걸음 씩 차근차근 화해하자고 하는 사업이라니, 지리산에 이해 당사자가 있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동시에 떠오르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해 당사자 토건업자들과 무슨 결탁을 하고 어머니와 같은 지리산의 배를 가르겠다는 것인가!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현 정부의 그린뉴딜의 방향과 역행한다. 4대강 사업이 우리 강을 토건업자들에게 맡긴 뒤, 돌이킬 수 없는 물의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지리산 산악열차 계획도를 보니, 형제봉을 중심으로 산맥 마다 가르마처럼 열차 길을 만들고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삽질을 시작하면 산악열차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호텔을 짓고 유흥시설이 들어오고 끝없이 지리산을 훼손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지리산을 시작으로 설악산, 한라산으로 개발을 이어갈 것이다.

세계 지성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인류에 닥친 질병과 재앙은 지구의 폐와 같은 아마존의 산림을 훼손하고 야생동물들의 서식처를 목축업자들과 토건업자들이 없애버린 결과라고 말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삶이 위협당하고 있는 이 시기에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놓겠다고 하니, 조용히 산속에 살면서 창작하던 작가들이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양심적인 예술가들이 릴레이로 피켓을 들고 절대 반대를 외친다. 방식도 다양하다. 시인은 시로,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연대한다. 아직 살아있는 지성인과 예술가들의 연대에 힘을 보태며 그 청정한 어머니 산 지리산을 그려본다.

대학시절, 선후배들이 함께 모여서 오른 산은 지리산과 무등산이었다. 지리산 뱀사골과 피아골에 텐트를 치고 발을 담그며 그 얼음처럼 차가운 맑은 물에 함께 발을 씻었다. 그리고 빨치산의 이야기를 나누고 남도역사의 상처를 품었다. 동학을 이야기하며 선조들이 꿈꿨던 평등세상을 다시 함께 꿈꿨다.

천왕봉까지 2박3일, 혹은 3박4일 코스를 짜고, 함께 등반하면서 땀을 흘리고 지칠 때는 손잡아 주고, 다치면 약 발라 주면서 서로 격려하고 의지할 수 있는 선후배들과 인간다움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광주시민들에게 무등산은 어머니 산이다. 무등산 중봉은 뒷산처럼 올라 다녔다. 추석이면 달 보러 간다고 오르고, 설날은 새해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오르고, 한 해를 보내는 12월은 충장로에서 모여 놀다가 저녁이면 무등산 아래 닭백숙 집에서 모였고, 밤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손전등에 의지한 채 무등산 야행을 했다.

친구들과 무등산 중봉에 올라 한 해를 정리했다. 자기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뚜벅 뚜벅 걸어서 땀 흘리며 올라가야 산이다. 한걸음은 그럴 때 쓰는 말이다. 그나마 광주 무등산은 무등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동구를 관광동구로 만들겠다고 했던 국회의원 후보가 낙마해서 지켜졌다.

그린뉴딜정책, 현 정부의 정책을 믿을 수가 없다. 무늬만 그린이고 슬로건만 그린인가? 토건업자에게 넘어간 그린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지리산의 야생성을 그대로 두는 것이 그린이다. 그린뉴딜정책을 한다면서 숲을 없애고 열차 길을 내면서 지리산을 난도질하려 하고 있다. 지리산은 남도의 허파 같은 산이요. 어머니의 영혼 같은 산이다.

산악관광산업은 박근혜정부의 기획이었다. 그 첫 사업이 지리산 형제봉에서 청학동에 이르는 산악열차 건설이다. 문재인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니, 그것도 그린뉴딜정책을 방향으로 설정한 정부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후손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가장 큰 재산은 전쟁위협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생태계가 살아있는 자연이다.

한국인으로서 높은 문화적 자존감과 더불어 깨끗한 물과 깨끗한 공기, 숲이 있는 산과 흐르는 강과 바다를 물려주는 것이 재산이다. 높은 빌딩을 물려주려고 버둥거리지 말자.

산은 걸어서 한 걸음씩 오르는 것이다. 빈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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