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8일(일요일)
홈 >> 기획 > 김정훈의 일본작가 비평

[김정훈 교수의 일본 작가 비평](20)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재일조선인 주권·민족교육 수호 운동 연대, 펜으로 투쟁

  • 입력날짜 : 2020. 12.23. 18:32
조선의 민족교육 수호 집회 장소인 현 이케부쿠로(池袋)
민족교육 수호 집회에 참가

지난 회차 말미에 ‘민족교육을 수호하자’라는 르포(1966년 5월)에 대해 약간 언급한 바 있다. 이제 그 배경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마쓰다는 어김없이 재일조선인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같은 해 4월 23일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의 백화점과 지하철 개찰구, 그리고 횡단로와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수호하자’라는 취지로 통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배포하고 서명을 받는 행사에 동참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집회가 조직적이었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지 마쓰다의 면밀한 관찰로 소상히 밝혀진다. 집회는 이케부쿠로는 물론 스키야바시, 유라쿠초(有樂町), 긴자(銀座),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신주쿠(新宿), 시부야 등 도쿄의 10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으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터.

그럼 어떤 인물들이 집회를 주동했을까? 이름을 올린 이는 도시마(豊島)구, 기타(北)구의 어머니 대표들과 전건노(全建勞), 전일자노(全日自勞)의 노동자 대표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수호하는 회’의 다시로(田代) 변호사와 기타구의 의원, 그리고 조일협회, 진보정당 도의원 의원 등을 합해 10여 명이 넘는 인원. 즉 재일조선인들의 주권과 민족교육 수호 운동에 일본의 시민단체와 재일조선인들이 연대해 도쿄의 각 곳에서 조직적인 시위를 전개한다. 마쓰다는 시위의 한복판에서 힘을 보태기도 하지만 여느 때처럼 고발자의 시선으로 현장 풍경을 조망한다.

선두그룹이 마이크를 들고 동참해줄 것을 외치자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에 항의의 목소리를 전하자며 통행인에게 호소했다. 그야말로 ‘민족교육의 정당성’ 추구를 위한 갈급한 목소리가 교차하는 자리였음에 틀림었다.

보수색이 짙은 일본 사회에서 진보정당 관계자와 노동자 대표들이 재일조선인들과 합세해 조선인 정체성 되찾기 운동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 사건이었다. 그런 만큼 파장이 작지 않았으리라.

르포를 통해 접할 수 있듯 마쓰다도 그 집회 장소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행인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호소한다. 또한 지난 4월 17일 자신이 조선학교를 방문한 사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나아가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의 모순을 통렬히 비판한다.

현재 재일조선인 학교에 대해 일본 정부와 문부대신은… 이미 작년 12월28일 자의 ‘문부 사무차관 후쿠다 시게루(福田繁)’ 서명 통지를 ‘각 도도부현의 교육위원회’와 ‘각 도도부현 지사 앞’으로 보냈다. 더구나 이를 법률로 시행하려고 하는 사실을 떠올렸다.

“조선인으로서 민족성 또는 국민성을 함양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조선인학교를 우리 사회에서 각종 학교의 지위를 부여할 만한 적극적 의의를 지니는 대상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 (‘민족교육을 수호하자’)

기실 재일조선인이 다니는 조선학교는 여타 외국인 학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일관계의 특수성과 일본 내지의 재일 디아스포라 역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도외시한 일본 정부와 문부대신의 조선 인식은 지극히 몽매하다.

한일간엔 고대부터 왕래가 빈번했던 만큼 일본에 정착한 조선인 후세들이 이곳저곳에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규슈지역의 도공 후예들이 조선에서 건너가 일본 사회에 공헌하며 대대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재일조선인 출신 스포츠 영웅과 저명한 예능인은 한둘이 아니다.

한편 식민지기에 일본 정부는 천황 절대주의와 국민국가 형성을 외치며 조선에서 다수의 젊은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본 내지로 유입시켰다. 그 조선인들이 정착해 소수민족으로서 면면히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마쓰다 도키코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문부대신이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조선인의 문화와 혼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어찌 방관할 수 있을까. 마쓰다는 정부가 조선학교를 “각종 학교로 인가할 수 없다고 본 점. 또한 그와 같은 이유로 이런 부류의 조선인학교 설치를 목적으로 하는 준학교법인 설립에 대해서도 허가하지 않겠다고 한 점”을 거론하며 독설을 퍼붓는다.

도대체 재일조선인 자제의 교육은 어떻게 될까? 이 통달로 보아도 결국 일본 정부는 모든 것을 법률이라는 구실 하에 폐지하고 옛날처럼 조선인을 일본의 교육방침대로 ‘교육’하고 마침내는 맘내키는 대로 지배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같은 본문)

마쓰다가 직접 방문한 ‘조선제4초중급학교’의 선생님과 학부형, 어머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위의 내용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뇌리에는 나나쓰다테 사건의 조선인 희생자들에 대한 회개와 회한의 마음이 되살아나지 않았을까. 그녀가 이국 희생자 추도사업에 동분서주하던 시기였다. 신산한 삶을 사는 조선인에게 배려의 시선을 보내는 가장 근원적 사건으로 인식했을 법하다.
마쓰다가 방문한 현 조선제4초중급학교.

민족학교는 남북통일 위한 교육장

아니나 다를까 일반적 통념에 사로잡힌 일본인과는 달리 마쓰다의 조선 인식은 일본 내지의 조선 역사에 대한 통찰을 동반한 것이었다.

“일본의 지배 속에서 조선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일본에 정착…어쩔 수 없이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머물러 있는 만큼”, “일본에서 특히 민족학교를 설립한 것은 이윽고 남북통일이 실현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때 곤란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조국의 언어를 익히고 역사, 지리 등 조국의 국민으로서 바르고 일정한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족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본 탁견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조선의 민족교육이 반일의 시점이나 반사회적 경향을 내포하지 않음을 설파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교육의 근본정신’을 언급하며 “그곳에 어떠한 반일 교육도 게재돼 있지 않고, “일본 정부에 조금이라도 민폐를 끼치지 않았거니와 학교설립에 대해서도 정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일일이 절차를 밟아 신고해 온 점”을 역설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쓰다는 조선학교 교무 선생의 언설을 빌려 민족교육이 조선과 일본의 우호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점을 내세운다. “우리가 일본에 있는 한 조선 국민과 일본 국민의 진정한 우호를 위해 교육하고”, 교사 신축 건에 대해서도 “나중에 우리가 조국으로 돌아가면 일본의 여러분들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언을 뚜렷이 남긴다.

마쓰다가 버스정류장 쪽으로 서명 용지를 들고 다가가자 두세 사람의 조선인 어머니들은 “우리는 조선 어머니들이에요. 서명하러 왔어요”라며 반색했다. 또 한 사람은 조선 남편을 둔 일본인 부인임을 밝혔다. 거리낌 없이 서로 질박한 사연을 나누는 장면이다.

헌데 그 일본인 부인의 고백이 마음에 와닿는다. 당장 눈물을 쏟을 표정으로 “어린애가 조선학교에 다니게 된 뒤부터 드디어 가정이 밝아졌네요. 저도 남편의 조국에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갈 예정이네요. 그런데 지금 조선학교가 탄압당하면…”이라는 말을 마쓰다에게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마쓰다는 당시 150개의 조선학교를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인정하도록 여론 환기를 시도하고, ‘정당, 정파, 종교’를 초월해 일본 국민이 정부, 국회, 문부성에 요청하도록 르포를 통해 절절히 호소했다.

허나 마쓰다의 일본 내 이민족에 대한 각별한 시선은 결코 재일조선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인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같은 해 다음과 같은 시를 발표한 사실 또한 되새길 필요가 있다.


헌시

-중일 부재전(不再戰) 우호비 앞에서-

지난날의 이 땅

일본의 하나오카 우바사와( 澤)에서 백골이 되어

조국 중국의 해방을 맞지 못한 채 생을 마친

사람들의 비석 앞에

지금 우리 일본 국민은 머리를 숙이고 섰다.


죽음 직전에 이르기까지

그대들이 목숨을 건 침략자에 대한 증오와 투쟁

그대들이 조국 해방을 맞는 순간 홍양(紅岩)의 전투가

그곳에서 펼쳐졌듯

이곳 일본의 하나오카 우바사와에서도 펼쳐진 사실을

우리 일본 국민은

모든 이의 결의로 다시 상기한다.


중일이 다시 전쟁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의 중대함과 엄숙함

이 중대함을 중대함으로 곱씹고

이 엄숙함을 엄숙함으로 곱씹어

우리 일본 국민이 행동하고 투쟁에 나서

과업을 완수할 그 날을 향한 맹세의 도표


다시 고치는 것을 용납지 않는 중일 부재전 우호

이 결의의 비석 앞에

숙인 머리를 감히 우리는 들고

이 비석을 올려다본다.


지난날의 중국 그대들과

지금 다시 불굴의 의지로 침략자에 맞서는

그대들의 조국 중국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인간들이여!

침략은

친구가 친구를 죽이며

원한을 품고 증오를 불러오는 원흉

비참한 과거를 잊지 말자.


지금 베트남과 조선과 중국을 향한 폭음

매우 맹렬하니

우리 일본 국민을 추락시킬 악행

계속 이어질 터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 전남과학대 교수


이곳 중일 부재전 우호비!

이 비석 앞에서야말로 맹세하리

우리 국민의 연대를

그리고 단결을.―1966년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