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8일(월요일)
홈 >> 기획 >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11)화순 관영마을
향토문화유산 ‘능주 들소리’ 마을의 자랑
신명나는 노랫가락으로 고된 농사일 이겨내
영벽정·관영리 고분 등 역사·문화유산 풍부

  • 입력날짜 : 2020. 12.29. 19:57
‘능주들노래’로 유명한 화순 관영마을은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가 담겨 있는 소리를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서 있는 장승이 방문객을 반긴다. 사진(下)은 관영마을의 또 다른 명물로 꼽히는 영벽정.

“오~ 호~ 헤~ 위 휘라/ 무등산 상상봉에 감감도는 저 구름아/ 오~ 호~ 헤~ 위 휘 라/ 이 산정 저 들판이 어찌 좋아 떠날 줄 모르느냐/ 오~ 호~ 헤~ 위 휘라/ 우리 군주 심은 남구(나무) 삼정승이 물을 주어/ 오~ 호~ 헤~ 위 휘 라/ 육조판서 뻗은 가지 팔도 감사 꽃이로다/ 오~ 호~ 헤~ 위 휘라.”

고된 벼농사일을 하면서도 멋들어진 들노래 한 자락을 다 함께 부르며 힘든 노동을 이겨낸 이들이 있다. 바로 화순 능주면 관영마을 사람들이다.

화순 능주면에 자리한 관영마을은 관동(貫洞)마을의 관, 영상(永上)·영말(永末)마을의 영을 따, 관영마을이 됐다. 동쪽으로는 연주산, 영벽강이 있고 서쪽으로는 잠정리와 경계한다.

능주 관영마을 일대에선 모판을 만들 때, 모를 찔 때, 모를 심을 때와 논을 맬 때 그리고 마지막 김매기가 끝난 후 마을에 들어올 때 소리를 했다.


◇차별화된 화순만의 소리

‘들노래’는 농군들이 벼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모심을 때 부르는 노래로는 ‘늦은상사소리’와 ‘자진 상사소리’가 있고, 논매기 노래로는 초벌매기인 ‘새우자타령’과 한 벌 매기인 ‘매화타령’, 그리고 마지막 굼벌 매기인 ‘개타령’, ‘풍장소리’로 짜여져 있다.

굼벌 매기가 끝나면 농사장원을 뽑아 소에 태우고 장원질 소리를 하며 마을로 들어오는데, 그 가락이 실로 유창하고 멋들어진 소리다.

풍장을 하는 날은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젖게 된다. 온 마을 사람들이 농사장원을 한 부농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음식을 나눈다. 또한 모두가 농사를 짓는 데 쏟은 수고와 노력을 위무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밤을 새워 즐긴다.

예로부터 능주는 농토가 비옥하고 광활한 들이 펼쳐져 있어 들노래를 부르며 농사를 짓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농업의 기계화가 가속화되고 농촌 공동체문화가 약화되면서 들판에서는 더 이상 들노래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들노래 보존회를 조직해 마을의 문화인 들노래를 전승해 나가고 있다.

능주 관영마을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가 담겨 있는 소리를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목표로, 능주들노래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능주들소리는 여느 마을과는 차별화된 소리라 할 수 있으며, 1986년 제15회 남도문화제에 화순군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넓은 농토를 농꾼들이 단합해 모를 심고 지심을 매기 때문에 장단과 가사, 소리가 더욱 우렁차고 흥겨울 수 밖에 없다. 능주의 자연환경으로 볼 때 능주사람들은 농사철이면 여느 지역보다 활발하고 우렁차게 능주들소리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능주들소리를 부르면서 모두가 협력하는 노동체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능주들소리는 화순을 대표하는 또 다른 들소리로서 문화예술적, 민속적 가치가 있다.

이러한 곳에서 젊은 시절에 능주들소리를 불렀던 사람들이 주축이 돼 이를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문화현상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정자 ‘영벽정’

능주 관영리의 또 다른 명물은 바로 ‘영벽정’이다. 이곳은 능주팔경 중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에 있는 정자다.

1984년 2월28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67호로 지정된 ‘영벽정’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연주산의 경치가 맑은 지석 강물에 투영돼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해 이름 붙여졌다.

정자의 건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팽손 등이 쓴 제영과, ‘신증동국여지승람’, 김종직의 시 등으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밖에 양재해, 양교묵, 한치조, 정의림 등이 영벽정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 또한 능주목(군), 즉 관청이 주도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632년(인조 10)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개수했으며,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듬해 목사 한치조가 중건했다. 이후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1982년, 1983년에 각각 보수했으며 1988년에 해체, 복원했다.

능주 고을 목사들의 영송연회(迎送宴會)가 모두 이 정자에서 베풀어졌는데, 정자가 세워진 내력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옛 능주 고을에는 진 처사가 살았는데 영벽강에 정자를 짓기 위해 높은 산의 거목을 베어 끌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을 지어 상량을 올려놓으면 집이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이에 진 처사는 실의에 젖어 병석에 눕게 됐는데, 어느 날 꿈에 용암산의 산신이 나타나 “계책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7일 째 되던 날 사미승(沙彌僧)이 찾아와 터의 지세가 복토혈(伏兎穴)이라고 하면서 정자의 기둥 하나를 칡뿌리로 세우고 토끼 지장신을 그려 정자 터 중앙 주추에 묻어야 한다고 하고서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진 처사는 날마다 칡뿌리 기둥을 생각하다 다시 병석에 누웠는데, 용암산 산신이 다시 나타나 뜻을 풀어 줄 사람이 찾아올 테니 기다리라 했다.

다음날 책장수 노인이 나타나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하자, 진 처사는 그를 묵게 하고는 은근히 칡뿌리 기둥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장흥 천관사의 노스님이 보호하고 있는 500년 묵은 칡이 있는데, 이 스님께 칡뿌리로 기둥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하라고 했다. 이에 스님은 전생의 형님을 뵈었다고 하며 한 달 후에 기둥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그 뒤 한 달이 채 못 돼, 영벽강에 물이 넘쳤는데 천관사 스님이 작은 배를 타고 칡뿌리를 물에 띄워 끌고 왔다. 이렇게 해 칡뿌리로 기둥을 세우고, 즉시 지장상을 그려 영벽정 주춧돌 밑에 묻었는데, 그 뒤로 정자는 쓰러지지 않고 무사했다고 한다. 이후 1931년 원인 모를 불이 났는데, 칡뿌리 기둥만은 신기하게도 조금도 타지 않았고 지금도 영벽정 기둥 중 하나로 남아있다고 한다.


◇관영마을에 남은 삼국시대 흔적
관영마을에 남은 삼국시대의 흔적, 관영리 고분.

그런가 하면, 능주 관영마을에는 삼국시대의 흔적도 남아있다. 바로 ‘관영리 고분’이다.

삼국시대 고분인 화순 관영리 43번지에 위치한 ‘관영리 고분’은 2001년 9월27일 전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35호로 지정됐다. 분구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규모는 지름 26-27m, 높이 5m 내외다. 고분은 주변이 논으로 경작되고 있기 때문에 끝자락이 다소 훼손된 것처럼 보이지만 비교적 잘 남아있는 상태이고, 분정에는 함몰된 부분이 있어 도굴됐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분은 비교적 대형 고분에 속하지만 매장 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고분의 성격은 알 수 없다. 주민들은 ‘조산’이라 부르고 있는데, 거대한 봉분이 있는 고분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부른다. 이러한 예는 해남 조산고분이 있다.

이처럼 화순 능주면 관영마을에는 영벽정과 관영리 고분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이 남겨져 있다.

특히 능주 들소리 보존회가 전통문화 보존 전승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옛 것을 알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이어가는 마을로 인정받고 있다.
발판 위에 올라서서 소원을 빌어보는 관영리 벅수포토존.

/정연우 자유기고가
/화순=이병철 기자


정연우 자유기고가화순=이병철 기자         정연우 자유기고가화순=이병철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