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4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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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창사30주년 릴레이 에세이](4)김대원 국가보훈처 대변인
5·18 취재, 인생의 큰 틀 정립

  • 입력날짜 : 2021. 02.18. 18:23
1991년 어느 날.

나는 창간특집을 위해 일본 북해도(홋카이도)로 10여일간 출장을 갔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본격 시작된 북해도 개발을 위해 ‘북해도개발청’이라는 총리실 산하 정부기구를 두고 있었다.

낙후된 호남개발을 위해선 독립적 정부기구를 둬야한다는 국제적 사례와 논리적 근거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된 이 시리즈는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김원욱 편집국장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으로 김준태·정용화·김선출·안찬수·유일선·이영규·홍지영 등 선·후배 동료와 함께 시작한 연중기획 ‘정사 5·18’시리즈도 기억에 남는다.

80년 5월 서울역 시위 등에 참여한 나는 그때까지도 광주 상황은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를 1년간 진행하면서 수많은 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하던 나는 어느 날 5·18 영령들과의 ‘접신’이 이뤄지는 체험을 하면서 이후 인생의 큰 틀이 짜여지는 계기가 됐었다.

즉 모든 정치 사회 문화적 현안에 대해 ‘광주 영령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라고 숙고하는 태도를 견지하게 된 것이다.

2017년 11월 국가보훈처에 온 이후 ‘대전현충원 전두환 현판 철거’와 ‘서울현충원 5·18계엄군 묘비 변경(전사를 순직으로)’ 등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도 5·18영령들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심부름을 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정사 5·18시리즈’가 역량부족으로 당초 계획보다 일찍 마무리 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쉬운 대목이나 그때까지 진행된 취재분으로 나중에 ‘단행본’이 출판된 것은 큰 보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선배들의 지도는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긴 95년 이후에도 두고두고 영향을 끼친 귀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97년 8월 6일 새벽, 잠을 자고있던 나는 정동준 정치부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지금 바로 짐을 꾸려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 명함만 보이고 ‘특별기’를 타라는 지시였다. 여권도 비자도 필요없었다.

괌으로 당직자 해외연수를 가던 신기하 의원 일행이 착륙 직전, 추락 사고를 당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괌에서의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온 100여명의 취재팀은 지옥과 천국을 모두 경험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실신이 빈번했던 유가족들의 통곡, 그 와중에서의 취재 등이 전자라면 괌 교민들과 현지인들의 헌신적 자원봉사는 후자였다.

당시 경험했던 서구의 자원봉사 시스템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대원 국가보훈처 대변인
출국 전날에야, 매일 밤 늦게 들어와 새벽에 나가곤 했던 5성급 호텔방의 창문이 처음 눈에 띄었는데 에메랄드빛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2010년께 아시아경제(광남일보) 국회담당 부국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광주매일에서의 시간들은 이력서 한 줄로 남게 됐으나 30여년간의 언론인 생활(1986년-2017년) 중 무려 20여년이라는 귀하고 소중한 추억의 무게는 결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선배들에게 많은 가르침과 사랑을 받았던 나는 정작 후배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돌아보면 부끄럽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의 반듯한 정론지, 광주매일신문을 이끌어가는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더욱 발전하는 광주매일신문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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