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3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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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마음(Heart) 상대의 마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진실한 ‘관계 맺음’ 시작
삶속 타인과의 마주함 또한 고마운 인연, 존중과 배려는 당연
객관적 현상 이성적 판단…긍정의 에너지로 소중함 일깨워야

  • 입력날짜 : 2021. 03.03. 18:51
앙투앙 보렐 로가 作 ‘스틱스의 강물에 아켈레우스를 담그는 테티스’ <위키피디아 검색>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매번 즐거운 일만 겪을 수는 없다.

가끔은 어렵고 싫은 일을 겪을 때도 있고 때론 슬픈 일에 눈물을 흘릴 때가 있기도 하다. 늘 웃을 일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신이 아니고서야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신(神)처럼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부득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느끼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 감정의 연원은 아마도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기에 ‘마음’을 표현할 때 우리는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게다가 형태가 없어 가늠해보기도 어려운데, 이 마음이 특히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다뤄질 경우에는 꽤나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며 관계를 맺는다. 그중에서 어떤 이는 그저 잠시 잠깐 스쳐 지나기도 하지만 어떤 이와는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만남과 이별을 밥 먹듯이 해오고 있는 우리지만 이 ‘관계 맺음’에 대해서 결코 쉽다고만 여기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완충해줄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 맺음’이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장수하는 사람들이 갖는 단 하나 공통적인 요건도 바로 ‘친구의 존재 유무’라고 하니 말이다.

여기서 친구라는 의미는 단지 그저 동년배, 학교 친구 정도의 가벼운 느낌으로서라기보다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그저 대화만으로도 마음이 좋아지는, 내 환경이 좋든 나쁘든 늘 함께해줄 수 있는 ‘진실된 관계’를 지칭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이 말대로 보자면 관계 맺음의 목적이 바로 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시작도 바로 ‘상대를 대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2000년 중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말을 줄인 드라마 ‘이별 대세’가 한참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안 그래도 첫사랑을 군대에 보내고 뒤숭숭할 시기여서 몰입도가 높았기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 드라마이다. 내용은 두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고 이별도 겪어가며 진실한 사랑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흔하디 흔한 사랑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넓은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누구나 경험해 봄 직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 따라 이달에는 ‘상대의 마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볼까 한다.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상대를 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둘로 나눠 보자면 ‘자기중심적’이거나 혹은 ‘타인중심적’으로 상대를 마주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이 둘 사이를 오가며 적절히 균형을 맞춰 내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나 나나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기에 수시로 변하는 마음을 컨트롤하고 조율하기란 절대 쉬울 리가 없다.

그러나 이 마음의 행복과 불행을 정해 줄 가장 결정적인 요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이의 균형을 맞춰 줄 ‘도구로서의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을 하다 보면 때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하게 될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상대가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이나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을 건드려 그 문제가 더 커질 때도 있다.

‘역린’과 ‘아킬레스’라는 단어로 표현해 볼 수 있는 이 상황은 어쨌든 상대가 싫어하는 것들을 건드리게 되면서 시작되는 일들이며 결론은 결국 ‘상처’로 남는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 어떻게 조율을 해야 하는 걸까?

역린과 아킬레스, 이 두 단어를 명화 속에서 함께 살펴보며 조금이나마 상대의 마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도록 하자. 어쨌든 이 둘은 모두 다 썩 좋지 않은 뉘앙스와 연관돼 있으며, ‘누구나가 하나씩은 꼭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치명적인 전제조건도 따른다.

두 단어 중 역린(逆鱗)은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 하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동양에서 주로 쓰이며, 서양에서는 아킬레스건(achilles)이라는 표현을 쓴다.

먼저 이 명칭을 그대로 반영한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us)에 대해 살펴보자.

약점을 가리킬 때 아킬레스건이란 말을 주로 쓰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발뒤꿈치 위에 있는 힘줄 부위를 지칭한다.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자식을 낳을 거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과 결혼하게 된 바다의 신 테티스.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아킬레우스’이며 그들의 결혼식엔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그 유명한 ‘황금사과’ 이야기와 아킬레우스에 대한 또 하나의 신탁이 얽혀 있다.

‘이 황금사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주인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결혼식장에 이 글귀가 적힌 황금사과 하나를 던져 놓고 가버리는 바람에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네, 세 여신 사이에 싸움이 발생하게 되고 이 일은 인간들 사이 큰 전쟁(트로이 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게다가 이 전쟁에 참여해 큰 공은 세울 테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또 하나의 신탁이 그들의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내려지고 만다.

바다의 신인 어머니로부터 신의 피를 받기는 했지만, 인간 아버지의 피도 함께 받아 죽음만은 피할 수가 없었던 아킬레우스에게 내려진 이 신탁을 피하기 위해서 테티스는 그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고자 애쓴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화가 앙투앙 보렐 로가(Antoine Borel Rogat)가 그린 ‘스틱스 강물에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테티스’라는 작품을 보면 사랑하는 아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며 아기의 발목을 잡고 영생을 가져다줄 저승 강물에 담그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무적의 몸을 갖게는 되었지만, 그녀가 잡고 있던 발목 부분이 물에 닿지 않아 아킬레스가 유일하게 상처를 받는 약점이 되고 만다.

온전한 신이 되지 못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피할 수 없으면서도, 그렇기에 영웅의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신화 속 아킬레우스는 불완전한 정체성 속에서 방황하며 죽음을 향해 갈 수밖에 없던 안타까운 영웅이기도 하다.

게다가 슬픔을 뜻하는 아코스와 사람들이란 뜻의 라오스의 합성어인 그의 이름 아킬레우스조차도 ‘사람들의 슬픔’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처럼, 이름 그대로는 우리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가슴 속의 아픔과도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동양에서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단어는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을 가리키는 ‘역린’이다.

누군가의 분노를 살만한 행동을 하는 경우 ‘역린을 건드렸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할 표현이나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린을 가진 ‘용’은 동양 전반의 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비스러운 동물이다.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몰고 온다고 여겨 신령스러운 영물로 여겨졌던 용은 가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에 꽤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 <위키피디아 검색>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우리다운 용의 모습은 고구려 강서고분벽화 속에 등장하는 이름도 비상한 사신도 중 청룡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입구 쪽을 향해 포효하며 나아가는 자세로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밀고 있는 용의 모습은 고구려인들의 패기와 섬세함이 스며들어있어 보기에도 아름답다. 또한 생략된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몸 전체를 덮은 비늘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어 매우 인상적인데, 앞발을 크게 내밀면서 힘있게 허공을 헤치며 날아가는 동작이 매우 역동적이다

고구려인의 패기가 느껴지듯 호방한 기운을 가진 늠름한 용은 사방신(四方神)중 동쪽 방위를 지키고 서 있다. 일반적으로 용은 물을 상징하지만 현무, 주작, 백호와 함께 사방신으로 나타날 때는 하늘을 나타내기도 한다.

절대 죽지 않는 전설의 동물이기도 한 용은 대개 큰 일거리나 훌륭한 인물을 가리키며 임금의 용안을 의미하기도 할 만큼 큰 동물인데 이 거대한 용에게도 역린이라는 것이 있다.

전국시대 한비가 지은 저서 한비자(韓非子) 설난편(說難篇)에서 이 역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용은 상냥한 짐승이다. 가까이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비늘이 거슬러서 난 것이 하나 있는데, 만일 이것을 건드리게 되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만다.”

한비의 핵심은 역린은 건드리지 않고 감싸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더해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언변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임을 강조하며, 말에 신경 쓸 것 또한 당부하고 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품이니, 입으로 타인의 상처를 헤집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일면만 보고 경황없이 비판하기보다는 ‘입을 역린을 가려주는 붕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로 사용해야 함이 옳은 것이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관계 심리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상대의 역린은 물론이며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자기 자신조차도 스스로 알기 어려운게 현실인데 으레 타인을 대할 땐 판단하기에 바쁘다. 특히나 자신이 경험한 타인의 한 부분만을 보고서 상대를 규정하고 해석하다 보니 실제 상대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모습들 중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의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의 중심을 잡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말이라는 도구를 잘 써내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상대의 마음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즉 ‘마음대세’라 하겠다.

관계에 대한 고민도 결국은 행복을 쫓으며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당신의 마음대세는 과연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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