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뉴스데스크 > 탑뉴스

“전두환, 軍 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사살명령’”
●美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 국회서 특별 기자회견
사복군인 시민 위장 ‘편의대’ 광주시내 침투 시켜
북한군 침투설은 날조…美 감시망 피하기 불가능

  • 입력날짜 : 2019. 05.13. 19:35
5·18 증언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오른쪽)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 였다’ 특별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는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1980년 5월21일) 직전 광주를 방문해 시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관련기사 3·6면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는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이 1980년 5월21일 K57(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4명이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사살명령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회의에서 사살명령이 전달됐다고 하는 것이 제 합리적인 추정”이라며 “헬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비행계획서를 파기하지 않았다면 자료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발포명령과 사살명령은 완전히 다르다. 발포는 상대방이 총격을 가했을 때 방어 차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 등이 제기하는 북한군 침투설은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들기 위해 사복군인들을 광주시내에 침투시켰다는 첫 증언도 나왔다.

그는 “일명 ‘편의대’라 불리며 시민 행세를 했던 사복군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며 “5월20일 ‘성남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온 약 30-40명이 K57 광주비행장 격납고 안에 주둔하면서 민간인 버스를 타고 광주 시내로 침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직접 격납고로 찾아가 제 눈으로 재차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이는 20-30대에 짧은 머리였고 일부는 가발을 썼으며,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었고, 그 중에는 거지처럼 넝마를 걸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며 외모와 차림새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편의대’를 광주로 보낸 것은 전두환 보안사령부고,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서의남 505 대공과장이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K57에 출입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600명의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왔다는 주장은 미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얘기인데, 당시 한반도에서는 두 대의 위성이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고 있었다”며 “북한에서 600명이 미국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제1전투비행단에서 주한미군 501여단에서 유일한 한국인 정보요원으로 근무했다”면서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약 40건의 첩보를 미국 국방성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특별기자회견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허장완 전 보안사 특명부장과 고 홍남순 변호사 아들 홍기섭씨,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http://www.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