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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볼 수는 있으나 말할 수야 없지 않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20)

  • 입력날짜 : 2019. 05.14. 18:33
浪吟(낭음)
삼가정 박수량

벙어리 귀머거리 된 지는 이미 오래
눈만은 여전하게 볼 수는 있겠지만
눈으론 볼 수 있지만 입으로는 말 못해.
口耳聾啞久 猶餘兩眼存
구이롱아구 유여양안존
紛紛世上事 能見不能言
분분세상사 능견부능언

사람의 속성은 자기의 흔적을 남기려한다. 책을 한 권 엮은 것도 세상에 태어났다가 육필(肉筆) 흔적을 남기는 행위다. 살아서 문학비나 문학관을 남기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뿌리친 조선 사대부가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삼가정 박수량과 석북 신광수다. 묘비 앞에 아무 흔적 없이 백비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미 벙어리, 귀머거리 된 지 오래됐지만, 오히려 눈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다행이로구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지금 내 볼 수는 있으나 말할 수야 없지 않나(浪吟)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삼가정(三可亭) 박수량(朴遂良·1491-1554)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로 고향은 강릉이다. 다른 호는 쌍한정(雙閑亭) 등으로 쓰였다. 천성이 순수하며 후하고 소박했다고 한다. 단상법이 엄하던 연산군 때 모친상을 당해 3년간 여막에 살아 중종반정 후 고향에 효자정문이 세워졌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미 벙어리, 귀머거리 된 지 오래됐지만 / 오히려 눈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다행이로군 // 어지럽고 어지러운 이 세상을 / 지금 내 볼 수는 있으나 말할 수는 없지 않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덧없이 노래함 / 되는 대로 읊음]으로 번역된다. 몇 년 전 그의 묘비 앞에 세워진 백비(白碑)가 세인에 알려지면서 그의 결백성과 인품에 대해 재조명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았으면 그만이지, 사후에 생전의 일을 남긴 들 무엇하랴?]는 독실한 속 깊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현존하는 비석 중에서 백비를 세웠던 경우 중 처음 일이다.

시인은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것은 이제 다 막아 버렸지만, 눈만은 어쩔 수 없이 있어 보지 않을 수 없음을 한탄하는 시상이다.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 된 지는 오래됐지만, 오히려 눈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보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 귀와 입을 틀어막고 세상의 일을 모른 체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에 기인한다.

화자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는 있지만, 말은 할 수가 없음을 한탄한 시적 한 짐을 짊어지고 만다. 어지럽고 어지러운 이 세상을 눈으로 볼 수야 있으나 이젠 말을 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를 불특정 다수에게 묻고 있다. 시인의 투철한 생활관에서 가상한 현실에 함구무언(緘口無言)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한자와 어구

口: 입. 耳: 귀. 聾: 귀머거리. 啞: 벙어리. 久: 오래되다. 猶: 오히려. 餘: 남다. 兩眼: 두 눈. 存: 남아 있다. // 紛紛: 어지럽고 어지럽다. 世上: 이 세상. 事: 일. 곧 이 세상의 모든 일. 能見: 볼 수는 있다. 不能言: 말할 수는 없다. ‘能見不能言’은 볼 수는 있으나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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