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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꺼낸 칼
박대우
지역발전정책연구원장

  • 입력날짜 : 2019. 05.16. 18:27
우리가 대화중에 자주 사용하는 ‘적당히’라는 단어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그 단어에는 ‘어떤 조건이나 이치 따위에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게’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마도 최근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작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크게는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와 무역 등을 다루는 협상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그 기저에는 어느 정도의 선에서 서로의 입장을 살피고 이해해주는 소통과 화합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풍선을 너무 세게 눌러서 터져버리는 불상사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관세 인상을 앞세운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무역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도저식 압박에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던 중국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음달 1일부터 5천140개의 미국산 제품에 5-24%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금액으로는 600억 달러 규모여서 미국이 중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 인상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그동안 중국이 보여 왔던 대응방식의 전환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조치로 받아 들여 진다.

특히 그동안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듯한 중국의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이번 결정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반응도 진지하다. 미국과의 협상과정에 대한 중국 내부의 불만을 다독이는 낮은 수위의 대응이 아니라 이번에는 칼까지 꺼내 들었다는 측면에서는 결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이 꺼낸 칼은 다름 아닌 애국주의다. 때를 맞춰서 중국의 CCTV 등 관영언론의 보도를 시작으로 미국에 맞서 중국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관리들에게는 봉사료를 높여서 받겠다는 호텔까지 등장했다.

중국인의 애국주의는 유별나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많다. 또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우리나라에 배치된 사드 갈등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롯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서 의욕적으로 중국에 진출했던 롯데마트는 사드 부지 제공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국주의 열풍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결국 중국 진출 11년 만에 중국 내 모든 매장을 완전 철수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롯데마트 불매운동과 매장 앞에서 제품을 불태우는 등의 과격한 시위를 이어갔고 중국 정부는 온갖 트집을 잡아 롯데마트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당연히 매출은 급감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롯데마트의 선택은 중국에서의 철수였다.

이처럼 중국의 애국주의는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닌 사안이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상당히 당황한 듯싶다. 겉으로는 “관세 부과는 오히려 미국에 유리하다”며 여전히 강경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추가협상을 위한 미국 협상단의 베이징 방문이 예정된 만큼 양쪽 모두 확전보다는 협상을 통한 타결을 기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이 파국을 맞게 되면 두 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심각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중국과의 확전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단순히 관세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의 갈등과 대립의 이면에는 세계 경제의 패권과 기축통화를 둘러 싼 난해하고 거대한 기류가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그 같은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불과하다. 그런 시기에 중국이 꺼내든 애국주의는 대단히 유효한 카드로 확인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은 새로운 편 가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촉구하고 있는 아시아국가 교류확대와 공동체 건설이 그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아시아 각국은 정책적 소통과 활발한 무역, 자금 융통, 민심 교류 등을 통해 아시아 운명공동체와 인류 운명 공동체를 함께 구축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메시지에는 아시아가 함께 힘을 모아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강력한 함의가 담겨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대치 면적이 넓어지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선제적 대응이다. 과연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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