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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신문 특별기획]한일 간 현안 풀어헤친 ‘인간의 보루’ 저자와 역자의 대담(3·完)
“대립 아닌 공존의 삶 지향…한국 독자들에게 자극제 됐으면”

  • 입력날짜 : 2020. 07.08. 19:21
‘인간의 보루’ 저자 야마카와 슈헤이(왼쪽)와 역자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김정훈: 최근 일본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부 보수층에서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거나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듯한 견해가 있어서 일본의 우익세력의 주장을 합리화하거나 일본 시민에게 혐한 분위기를 부추기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야마카와: 일본 식민지 지배하의 만행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어요. 관동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6천600명, 3·1 독립운동 때 살해된 7천500명, 체포자 4만6천948명, 그리고 창씨개명과 조선어 말살정책. 탄광에 31만8천546명, 금속광산에 7만5천749명, 토목공사에 10만7천327명, 공장에 11만6천62명이 강제연행으로 끌려갔으며, 불법노역에 시달리다가 6만여명이 사망했습니다. 나가노(長野) 마쓰시로(松代) 대본영공사에 7천명, 위안부 약 20만명, 징병제로 일본군에 입대한 조선인 22만9천934명, 일본 패전 후 전범으로 처형된 조선인 23명, 패전 후 무국적자로 사할린에 남겨진 조선인 4만3천명, 귀국하지 못한 조선인 2천명, 게다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등등. 이와 같은 사실을 얼마나 일본인들이 알고 있을까요? 이와 같은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아요.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숫자를 열거한 것은 숫자에는 언어를 초월할 만큼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죠. 전 세미나나 강연에서 중요한 부분에서는 숫자를 들춥니다. 숫자를 거론하면 듣는 이들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숫자의 힘이죠.

▲김정훈: 네, 숫자에 대한 인식은 평소 메모 습관과 관계가 있으시겠네요. 제가 읽는 분야에서도 해방 후 하나오카광업소가 아키타현 지사에게 보고해, 지사가 후생성에 보고한 명부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1942년 광산으로 끌려간 그 명부의 조선인들 행적에 대한 증언을 기록한 일본 작가 마쓰다 도키코의 ‘회고문’도 있어서 그동안 참고해왔죠. 그런데 작년에 그 조선인 징용피해자가 치밀히 기록해 일본에서 출간한 증언록(이우봉 ‘재일 1세대가 증언한다’, 제일 1세대가 증언한다 출판회, 2002)을 입수했어요. ‘중국인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이 후원한 책이고 중국인 피가 섞인 편집자가 공동 작업을 한 책이니 확증자료입니다. 본질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논의 확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네요.

-야마카와: 조선 식민지시절 내가 살던 일본 마을의 온천여관에서 일을 하던 조선인 여자가 있었어요. 물건 사러 마을로 나올 땐 항상 흰 치마, 저고리의 모습이었죠. 어머니에게 들었는데, 일본이 패전해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자 그 조선인 여자가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시대다”라고 했다더군요. 그 여자가 무서워졌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네요. 피해자의 증언은 중요해요.

▲김정훈: 공감합니다. 한글판 근로정신대 피해의 증언록 ‘인간의 보루’에는 증언자이신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단과 소송을 이끄신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이 2002년 나고야 미나토구 미쓰비시중공업 순직비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죠. 일본의 시민활동가 이토 게고(伊藤啓子) 씨가 광주를 방문해 이금주 회장을 창구로 삼아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이 잘 소개돼 있더군요. 들려주시죠.

-야마카와: 네.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연명으로 서명한 뒤 이금주 회장을 통해 이토 게고 씨에게 의뢰해, 이토 씨가 아이치현 조선인강제연행 조사반의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에게 전해 본격적으로 준비회가 발족됩니다. 변호단도 꾸려져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1999년 3월 소송을 제기하죠. 이금주 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시는데, 이금주 회장은 내가 존경하는 한국인입니다. 1999년 9월29일자 아사히신문 ‘논단’란의 기고문을 보고 알았어요. 물론 뵌 적이 없었죠. 전 기사를 읽고 감동했습니다. 당시 78세이셨는데, 그 후로 일본에 오실 때마다 뵙게 됐죠. 이금주 회장의 기사를 얼마나 일본인이 마음에 새길지 이 이상의 문장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기고문 끝부분을 “일본인들이 인간으로서 양심을 회복하기를 바란다”는 문장으로 맺었죠. 인격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냉정하며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분이죠. 옳은 일이라면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이론적으로 주장을 펼치시죠. 이금주 회장도 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만나 뵐 때마다 굳게 악수를 나눴어요. 참으로 마음이 통하는 분입니다.

▲김정훈: 네, 그 기고는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으로 남편을 여읜 여성 활동가 입장에서 남편의 일은 자신과 일본정부의 개인적(사적)인 일로 생각한다고 선을 긋는 점이 시선을 사로잡더군요. 그런 뒤 근로정신대 문제를 비롯한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 건에 대해서는 강력히 호소하는 곳에서 설득력이 있게 느껴지고요. 특히 일본의 조선인 처우에 대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신민이라고 외쳤음에도 전쟁 후에는 쓰레기 취급하는 부분을 들추는 지적은, 조선인에 대한 일본 주류층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점에서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곳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재일조선인 처우 문제나 조선학교 차별은 여전하지 않은가요, 재일조선인은 일본인과 다를 바 없는데, 마이너리티로 사는 한 조선인에 접근하는 일본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물음이 사라지지 않겠죠. 이금주 회장이 어떤 분인지 뵙고 싶어서 한두 차례 순천 요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그분의 활동과 경륜에 대해 들었던 터라 가슴 두근거리며 뵈었는데 노환을 앓고 계시지만 결이 고운 인상에 말씀에 품격이 느껴지더군요. 참, 금요행동 얘기인데 코로나로 잠시 중단됐죠. 의의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야마카와: 이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서 조선인 피해자 지원활동을 펼치는 사례가 없을 겁니다. 다카하시 마코토, 데라오 데루미 공동대표의 집념과 지원회 멤버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한 것입니다. 마음에 줄곧 남아 있는 앙금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36년간의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식민지배가 부른 역사적 배경이네요. 살아 있는 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반드시 이 투쟁은 역사로 남으리라 봅니다. 이러한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한국 국민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양심적 표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고야 지원회 회원들과 광주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이 2009년 미쓰비시 중공업 주주총회의 날 한일공동 행동에 나서고 있다.

▲김정훈: 일본어판 작업이 진행되면서 책 출간의 의도와 내용을 이해한 출판사 사장과 편집자가 미쓰비시중공업의 부당성을 알리고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사죄를 촉구하는 현장에 나타나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활동의 취지와 근로정신대 피해 상황을 아는 일본인이 늘어날수록 더욱 확산되리라 기대하고요. 일본의 동북지방에서는 해방 직후 일제강점기의 조선인과 중국인 피해, 특히 중국인 피해자들의 유골발굴과 본국송환 작업을 진행하는데, 일본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를 알리는 문필가와 시민활동가들이 손을 잡고 연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문제의 해결에 단초를 제공하거든요.

-야마카와: 현재의 멤버들이 건강한 한 활동은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미쓰비시중공업의 앞으로의 자세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요. 책에도 기록했지만 도난카이 지진으로 세상을 뜬 김순례의 유족이자 친구인 김중곤은 2006년 12월 나고야고등재판소의 항소심 최후의 법정에서 “그동안 우리들을 지원해주신 일본의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인간이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스스로 나이를 먹어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통의 체험이라는 것은 역으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선명한 기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어요. 이 말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게 외치던 중곤이 동생과 자신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작년 초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나는 2007년 금요행동에서 핸드스피커를 들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다음처럼 외친 바 있습니다. “드디어 종전. 하지만 그해의 12월이 돼 소녀들은 맨몸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급료는 후일 송금한다고 하는 약속이었지만 지금까지 1엔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중략) 기업이 과거에 범한 죄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는 당시 저지른 죄 위에 더욱 무거운 죄를 덧씌우는 일이 된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가득 찬 모습을 접할 때 우리는 여기서 서서 이렇게 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요. 앞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이 어떠한 자세를 보이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는 예측을 뛰어넘는 일이 때때로 일어납니다. 집념이 있을 때는요. 포기할 때는 끝나버립니다. 집념의 연장선에서 역사를 바꾸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정훈: 항상 생각하는 점인데 불합리한 조약에 대한 논의 그리고 그에 따른 양국의 인식의 차이와는 별도로 미쓰비시중공업의 대응에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 이후도 물론입니다만 적어도 해방 후부터 1965년까지 20여년간 미쓰비시중공업은 약속을 저버리고 임금을 주지 않은 책임을 회피할 길이 없다고 보이네요.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청춘을 잃은 소녀들에게 답할 명분이나 그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미쓰비시중공업의 원죄가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요. 끝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야마카와: 이금주 회장 같은 분이 상징적입니다. 그분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그분의 존재를 이해하시면 좋겠네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인간입니다. 서로 민족,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유하면서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서로 대립의 목적이 아니라 올곧은 방향을 향해 공존의 삶을 지향해야 하리라 봅니다. 장벽에 돌을 던지는 심정으로 쓴 에세이 ‘인간의 보루’가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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