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어르신들이 모두 제 부모' 장흥우체국 집배원 김택환씨 박봉속에서도 어려운 이웃 돕기 앞장 주민들 신망 두터워 보험 실적도 '짱' 노병하 기자 icepoem@kjdaily.com

2003년 02월 10일(월) 00:00

13년을 한결같이 장흥 시골길을 달리며 편지와 함께 情도 같이 배달하는 '장흥 지킴이' 김택환 씨. 마을 어르신들이 다 부모님처럼 느껴진다는 김 씨는 시골의 갖은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늘 사람좋은 웃음으로 집배업무에 나서고 있다. 사진=김

지금이야 인터넷이다 휴대전화다 해서 편지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한 장의 편지를 통해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다.
멀리서 '찌르릉'대며 자전거를 몰고오는 집배원 나타나면 아이들은 뒤를 따라다니며 기쁜 소식을 달라고 졸라대고, 서울 간 자식들의 좋은 소식이나 들을까 대문 앞을 나와 서성거리던 어머니의 모습 역시 이제는 잊혀져버린 집배원에 대한 아련한 향수다.

13년동안 한결같이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편지뿐 아니라 情도 같이 배달하는 장흥우체국(국장 박주성)의 김택환 집배원(36).
장흥군 주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 씨는 장흥우체국 별정직원으로 13년간 집배업무뿐 아니라 장흥 시골의 일꾼으로도 유명해 그가 지나갈때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나와 음식을 대접하거나 일을 부탁하는 등 그의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리는 동네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김씨는 일상 업무 중에도 동네 어르신중 한사람이라도 얼굴을 못 뵌 분이 있거나, 독거 노인의 집에는 반드시 한번씩 들러 보고 있다. "시골 어르신들은 돌봐줄 자식들이 없어 아프더라도 아무도 모른다"며 "안부전화를 해 아픈 분이 계시면 약도 사다드리고 집 수리나 생활용품 심부름도 한다"는 김 씨는 현재 노인 뿐만이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위해 한 달에 일정액을 후원하는 우체국 후원회에 가입돼 있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김씨는 청년 시절부터 성당 청년회장으로 매주 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왔다.
시골의 시시콜콜한 대소사에 일일이 다 참석해 일을 거들어주고 있는 그는 특히 젊은 일손이 딸리는 시골에서 노인들이 할 수 없는 담 고치기, 지붕수리, 못 박기 등 온갖 잡일들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김 씨가 이렇게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 씨는 장흥고에서 1, 2등을 다투던 수재였으나 어려운 집사정으로 인해 대학진학을 하지 못하고 군 제대후 집배원 시험에 응시했다.
처음에는 신세한탄도 하고 도시에 대한 유혹으로 밤마다 번민에 시달렸다는 김 씨. "집배원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제 사정을 잘아는 마을 아주머니가 지나가던 저를 붙잡아 옷도 말려주고 밥도 차려주면서 위로의 말을 해 참 많이 울었다"면서 "그날 이후로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음을 다잡은 김씨는 그 후 집배업무를 하면서 자신이 도움이 될 일들을 스스로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이같은 그의 정성과 봉사가 밑거름이 됐기 때문인지 시골의 보수적 특성상 보험가입이 적은데도 불구, 동네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우체국보험 신규모집 15억원, 예금유치 1억4천만원 등을 계약하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작년말 김 씨는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아 다른 지역 내근직으로 발령날 뻔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전남체신청장에게 "김씨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간곡한 요청편지를 보내 인사가 철회되기도 했다.
"그냥 장흥 시골길이 좋다"며 순박하게 김씨는 오늘도 작은 오토바이를 몰고 장흥 곳곳에 우편물과 정을 배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