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밝힐 '빛의 예술'이 여기에 기자

2003년 09월 03일(수) 00:00

.평생 '빛'을 테마로 작업해온 우제길씨는 어린 시절 쫓아다녔던 반딧불이를 연상하며 빛을 자신의 주요 컨셉으로 잡아 세계적 작가의 반열을 향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김기식기자 pj21@kjdaily.com

우제길씨(우제길 미술관 대표)　
그저 빛이 좋았다. 그래서 한없이 빛을 좇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처음 빛을 좇았던 시절을 상기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답이 있기에. 그 시절 어둠은 지천에 깔려 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겠지만 유독 그는 '어둠'에 지배 당해야 했다. 한없이 안으로 쫄아드는 느낌을 '빛'을 찾아 헤매며 털어내야 했다. 내성적이고 숫기 없었던 못난 성격의 도피처가 바로 빛이었던 것이다.
빛의 작가 우제길(62). 그 숫기없던 우씨가 일판을 벌이고 있다, 보란 듯이. 그리고 세계를 향한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일차적인 작업으로 그는 몇년 전 지역작가로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작가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뒤이어 곧바로 우제길 미술관으로 등록했고 최근에 그 일대의 부지를 새로 사들여 미술관을 정점으로 한 작은 공원을 조성하기에 이르른다.
이같은 행보는 무엇 때문일까. 작업이 작가만의 것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여기는 시대적 소명감 때문이다.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작가적 진지함도 거기에 한 몫 거들었다. 그런 이유들로 미술관 요건을 갖춰 미술관 등록을 마쳤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주변을 정돈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행자부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아 미술관 주변을 정비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동네사람들로부터 동네 분위기를 바꿔놓았다는 찬사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날 듯이 기쁜 것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미술관 공간을 함께 하겠다는 의욕이 어느 정도 먹혔기 때문이다. '행자부 지원 의재로 정비사업 계획'일환이었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인연을 맺은 정영식 당시 광주부시장의 도움이 컸다. 모두 4억을 지원받았지만 부지가격만해서 70여평에 2억5천여만이 들어갔고 거기에 대나무와 소나무 등 조경과 우씨가 최근에 심혈을 기하고 있는 입체작업의 설치품이 전시됐다.
그래선지 증심사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우제길미술관은 겉보기에도 꽤 괜찮은 외관을 갖췄다. 자연히 해지는 노을녘엔 산책겸해서 이곳을 찾는 동네사람들도 늘었다.
"이곳은 생각해보면 참 유서깊은 권역입니다. 의재로가 시작되는 부근에 연진원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의재미술관과 춘설헌이 있으며 증심사가 나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광주의 어머니라 할 무등산이 거기에 있질 않습니까"
최근에 의재로를 따라 작가들이 작업실을 짓는다, 갤러리 카페가 들어선다하는 것들을 우씨는 그런 맥락에서 두손 들어 환영한다.
우씨는 멈추고 싶지 않다. 오는 10월 '우제길의 면과 빛 사이로'란 테마로 대대적인 전시회와 이벤트를 꾸밀 작정이다. 그동안 자신의 작업을 정리해 보여주고 가을이란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작은 음악회를 미술관 뜨락에서 개최하고 싶다.
우제미술관의 기초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마무리될 즈음해서 시작됐다.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참여작가로 작품을 출품했던 우씨가 지역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스튜디오를 계획하면서부터. 운림동에 위치한 현 미술관의 기초공사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때를 기해 건축을 담당했던 모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다. 이때 우씨는 암 투병 중인 부인 김차순씨(50)와 함께 직접 공사를 이끌어 미술관을 완공시켜낸다. 이후 부인 김씨는 최근까지 암 두차례를 비롯해 모두 여덟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하면서 우씨와 함께 미술관을 정돈한다.
그렇게 해서 지난2001년 미술관 1종으로 등록된다. 이때 심사나온 오광수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잘 정돈된 자료실에 깜짝 놀라는 눈치더라는 것. 우씨의 작품이 중고등학생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리지널 작품과 함께 모두 슬라이드 처리돼 정리돼 있었고 그 이외에도 다른 이들의 작품도 상당 수 소장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미술관으로서의 격을 갖췄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쯤해서 그의 작업 여정을 살펴보자. 전체적인 컨셉은 빛. 그러나 그는 적잖은 변화를 겪어 오늘에 이르렀다. 현대에포끄란 추상미술의 선두그룹의 초창기 멤버로서 당시엔 잘 팔리지 않은 추상미술의 대열에 끼였다. 70년대를 전후로 그는 빛을 추상으로 표현해낸다. 다소 예리하고 날카로운 빛을 띠고. 첫인상이 차가울 뿐 한없이 들여다보면 거기엔 정감이 흘러넘친다는게 전문가들의 평. 그에 대해 작가 우씨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손바닥으로 물감을 쳐 발랐다"고. 그래서 외관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냉담한 분위기였지만 실질적으론 정이 담긴 작품들이었노라고 덧붙인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11년 재직한 바 있는 우씨는 괜한 억눌림, 저항감 등으로 우울한 블루톤의 빛을 발산해낸다. 그러나 그 빛이 이제 와서 빛고을 광주의 컨셉과 맞아 떨어지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이드 라인이 되고 보면 인생유전인 셈이 아닌가.
90년대 후반 그 예리함은 노랑색과 주황색의 발호로 온화함으로 바뀐다. 직선이되 한없는 부드러움의 발산은 바로 색상에 기인한 바 크다.
우씨가 최근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입체다. 그동안 평면에 쏟아넣었던 빛을 이젠 입체로 변화시켜 우제길미술관 뜨락에 세우기도 하고 환경조형물로 내놓기도 한다. 그가 최초로 입체작업을 한 것은 98년 '5·18현황 조각공간 및 추모 승화 공간'의 공모작 '아! 광주의 빛이어라'가 당선되면서부터. 이 때부터 평면에 그렸던 빛을 입체화했고 이젠 여기저기에서 입체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의재 선생의 예술정신과 무등산이 뿜어내는 자연의 숨결이 흐르는 운림동, 거기 우제길미술관에서 우씨는 오늘도 어제처럼 붓을 내리 그으며 그의 평생 테마인 빛을 형상화하느라 쉴틈이 없다. 글^김영순기자yskim@kj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