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패션디자이너의 '눈물' |
| 2008년 05월 22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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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어른들을 한꺼번에 울린 사연은 이렇다. 1년 전 변씨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30대 초반의 딸을 잃었다. 세상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한없이 쏟아지는 슬픔을 강단지게 정리하고 딸이 생전에 하고 싶어했던 선교와 복지일을 하겠다고 무섭게 치켜들었다. 그날 낭송된 편지의 내용은 슬픔을 이겨낸 어머니가 딸이 못다한 일을 대신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으로 채워졌다.
일곱살배기 손자를 남겨두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린 딸, 그 딸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다부졌다. 딸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떠안게 된 것을 감사히 여겼으며 꼭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슴에 묻은 딸을 생각하면 밥도 먹히지 않았고 잠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더욱이 이태 동안의 암투병 뒷끝이었다. 몸을 추스리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딸의 장례를 치렀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으랴. 정신적, 육체적으로 바닥 모르게 허물어져 내렸다. 생명이 끊어지지 않아 숨을 쉴 뿐, 살아야 한다는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 하느님께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매달리며 퍽퍽 울기를 수개월째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딸 린아가 천국에 갔다고만 답할 뿐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했다.
대신 새로운 사명이 부여됐다. 울다 지쳐 쓰러진 어느 날 문득 신심깊었던 린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 중국 연변엔 북한에서 탈출한 주민들이 도망 다니며 먹고 살기가 힘들어 국경선 부근에다 자기 자식들을 버린대요. 굶주린 아이들은 쓰레기를 뒤져 허기를 채우는데 그것도 나이순으로 해야 한대요. 정말 불쌍해요. 패션사업 수익금 중 절반을 그 아이들에게 쓰고 싶어요." 그 말이 귀에 쟁쟁거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먼저 먹을 것을 챙겨 먹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린아가 그런 말을 하던 당시엔 그냥 대견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 일을 자신이 감당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딸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사느라고 바빠 뒤로 밀쳐둔 일을 자신에게 시키기 위해 린아가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다. 그동안엔 못나게도 린아가 그리워서 울었다. 청춘에 먼저 간 딸이 불쌍해서 울었다. 남겨진 손자가 불쌍해서 울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그게 지난 해 여름이 끝나 갈 무렵의 일이었다.
서둘러 딸애의 이름으로 선교원 개원을 준비했고 우선 가까이에 있는,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부터 도울 방책을 꾸렸다. 광주지역의 결식학생 지원사업을 치켜들었다. 우산초등학교 결식아동 후원을 비롯해 남양주광산교회, 노인복지교회, 여수열림교회, 금화여성회 장애인장학기금 제공 등 여러가지 후원사업을 함께 벌이고 있다. 그렇게 후원사업으로 들어가는 금액이 한달이면 수백여만원에 이른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면서 이런 저런 사연을 공개하는 것에 고개를 가로저어 그동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크게 받아본 적이 없다. 그냥 숨어서 하는 것이 좋다는게 변씨의 지론이었다.
그같은 생각이 바뀐 것은 더 큰 일을 위해서였다. 때문에 선교원 개원식을 형식을 갖춰 치렀다. 뜻있는 지인들과 힘을 모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 흔히 부모의 높고도 바른 유훈을 자식이 잇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변씨는 자식이 못다 이루고간 사랑의 대업을 자신이 마무리짓겠다고 나섰다. 지난 20일부터 한달 동안 자신의 매장에서 패션자선바자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수익금을 복지와 선교에 쓰겠다는 뜻에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패션디자이너 변씨가 흘린 눈물은 '모성애'를 '인류애'로 승화시킨 '큰 사랑의 씨앗'이 아니고 무엇이랴.